[인사동] 합(合)-떡의 과거, 현재, 미래

과거

돌이켜보면 떡은 특별한 음식이었지만, 지금보다 덜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음식이었다. 명절이나 중요한 행사에는 떡이 빠지지 않았고 지금보다 더 자주 떡을 먹을 수 있었다. 떡이 완성되는 곳은 방앗간이었지만, 그 준비는 집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을 들여 이루어졌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떡이라는 것의 정체성은 ‘푸짐한 것’이었다. 물론 하나씩 만드는 떡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떡들이 많은 양의 쌀가루를 시루에 안쳐 찐 뒤 잘라서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떡의 이상적인 기억은, 할머니를 따라 간 방앗간에서 갓 나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시루의 떡을 손으로 크게 뜯어 먹는 것이었다. 푸짐하고 따뜻한, 그리고 쫄깃한 것. 그것이 떡이었다.

현재 

집에서 준비해서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닌, 떡집에서 사먹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떡은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을 정도의 크기나 양으로 잘라, 스티로폼 팩에 담은 뒤 랩으로 싸서 담은 것이다. 떡은 여전히 쫄깃거리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따뜻하거나 푸짐하지 않다. 전자레인지로 손쉽게 덥힐 수 있기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떡이라는 것이 지니고 있던 푸짐함은 부담스러움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떡 케이크와 같은 현대화의 시도도 많이 대중화가 되기는 했지만, 떡이라는 것의 밀도를 생각해보았을때 케이크와 같은, 또는 케이크를 따라하는 시도는 일종의 난센스라고도 생각한다.

미래

지난 주, 인사동의 <합>에 다녀왔다. 말만 듣고 조계사 근처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낙원떡집>에서 맥도날드 가는 사이에 있는 그 새로 지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떡의 미래에 다른 어떤 것들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 이면에는 떡이 딱히 꼭 미래의 어떤 것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 또는 회의가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요즘은 떡보다 더 즐겨 먹는 케이크 같은 것들이 딱히 미래형이거나, 아니면 과거에 비해 진화한 형태라고는 할 수가 없을텐데, 우리 것인 떡에게 진화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새로운 시도의 반죽 속에 어떠한 소가 들어 있는지 내 입에 넣고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합을 찾았다. 굉장히 작은 공간에 몇 가지가 벌써 떨어져 대여섯 종류의 떡이 있었는데 그걸 전부 싸왔다.

일단 가장 두드러지는 성질은, 떡이 작다는 것이다. 개별 포장된 여섯 쪽의 떡이 합쳐서 만 천원이었는데 그 크기는 전부 보통 크기의 마카롱만했다. 내가 마카롱과 떡을 비교하며 작다고 언급했으니, 누군가는 양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정확하게 ‘질 대 양’의 시각에서 언급하려는 양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니다. 혹시라도 마카롱과 같은 양과자에 비교해서 합의 떡이 작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불공평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익숙하거나 또는 익숙하다고 믿고 있는 음식을 사람들은 다른 가격 기준으로 평가한다. 만원 넘는 냉면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2만원이 넘는 파스타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원 짜리 냉면을 만드는데 어쩌면 2만원짜리 파스타보다 더 좋은 재료나 많은 공이 들어갈 수도 있다. 또한 요즘 세상에 맛있는 냉면이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인가? 차라리 2만원짜리 허접한 파스타집을 찾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냉면과 파스타를 다른 잣대료 평가한다.

합의 떡도 마찬가지이다. 마카롱과 비슷한 크기지만, 그러한 측면에서 양이 적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떡들의 경우, 양이 너무 적은 나머지 떡 본래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마카롱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그러한 양과자의 맛은 대부분 작은 크기에도 절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되어있다. 계란 흰자의 식감에 설탕의 단맛, 아몬드 가루의 고소한 맛, 크림이나 잼 등의 단맛이며 향까지, 여러가지 요소가 한데 뭉쳐 한두 개만 먹고도 만족하도록 만든다. 기본적으로 포만감을 느끼도록 설정된 음식이 아닌 디저트라는 특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에 반해 떡에는 아주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며, 그 맛은 은은하다. 간식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끼니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며, 후식으로 먹을 수는 있지만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양 음식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떡의 식감은 사실 후식의 식감에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전채나 주요리는 많이 씹으면서 먹더라도 디저트는 그러한 수고와 입안에 남는 잡맛을 씻어주는 역할을 하도록 맛이나 식감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때 합의 떡은 그 양의 측면에서 아쉽다. 너무 빨리 입 안에서 사라지고, 그 여운이 짧기 때문이다. 가져온 떡들 가운데 두 세가지가 속에 밤이나 과일 같은 것이 든 증편이었는데, 그 자체의 맛만 보면 은은하고 깨끗했다. 요즘 들어 단맛이 강해지는 경향을 십분 활용해 떡의 단맛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경향을 싫어한다.

그렇게 맛은 좋았지만, 그 양이며 속에 든 재료가 주는 차별성을 주는 설정 방식을 생각했을때 그 증편들을 한데 묶어 보았을때 다양성이 미덕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또한, 이러한 떡의 크기에 ‘우리 음식의 현대화=작고 예쁘게 만드는 것’외의 의도가 있는지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정된 양이 일반적인 떡들에게는 그러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약과와 같이 보다 더 단맛이 두드러지고 더 후식같도록 설정이 된 한과 종류에게는 딱 적당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맛도 적당했고, 보통의 약과가 가지고 있는 기름기 쩐 맛이 없었다(튀긴 음식에 민감한 요즘 사람들을 위해 오븐에 구웠다고 한다).

그리고 식감. 우리나라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야심을 가지고 있다면 떡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식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번 양지훈 셰프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 떡의 식감은 외국,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환영받지 않는 종류다. 그들은 씹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많이 해 질긴 근육이라면 반드시 오랜 시간 조리해 부드럽게 먹는 습관을 가진 그네들이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었을때, 위에서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했지만 발효되어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증편이 대표주자(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인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에 걸쳐 발효시킨다고 주워들었는데, 그 식감이 굉장히 훌륭했다. 굳이 한 가지 언급하자면, 이런 종류의 떡에서 전통적으로 쓰는 참기름의 마감이 과연 그 맛이나 식감 면에서 습관을 따르는 것 외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정도(우리 음식에 두드러지는 그 참기름 맛이 너무 압도하기 때문에 다른 맛을 죽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반면 감자를 넣은 단자는 이에 살짝 달라 붙을 정도로 끈적거렸다.

맨 위에서 언급했지만, 합에서 채 백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낙원 떡집이 있다. 사실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나가다 보면 합에서 파는 떡의 두 배도 더 되어 보이는 떡들을 개별 포장해서 판다. 아마도 대부분의 고급화된 떡집들이 이런 식으로 현대화를 해서 팔텐데, 그보다는 조금 더 다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합의 떡들이 그 이미지로 과거나 현재의 떡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아니면 그러한 떡들과 어떻게 경쟁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 성공 여부가 사람들이 합의 떡을 미래형으로 인식하는지 아닌지를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현재와 같은 크기를 고수한다면(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 보다 더 다양하면서도 ‘임팩트’가 보다 더 두드러지는 맛을 집어넣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노파심에서 덧붙이건데, 떡이 마카롱의 flavor profile을 닮아야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미래를 가장한 허세다’라고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

 by bluexmas | 2010/11/12 11:35 | Taste | 트랙백 | 덧글(22)

 Commented by 아스나기 at 2010/11/12 11:41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두리뭉실한 생각뭉치가 글을 읽다보니 뚜렷해졌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49

사실은 저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써서 여전히 두리뭉실한 구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와 떡의 궁합은 어떨까요? 요즘 넘치는 단맛이 없다고 가정하면 좀 연한 커피가 좋을까요?

 Commented by SM♡ at 2010/11/12 11:50 

그냥 단순하게 증편이 맛있어보여서 덧글. 남겨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49

네 잘 하셨어요^^;;; 잘 만든 증편이기는 하더라구요.

 Commented by 시울 at 2010/11/12 11:5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은 크기를 고수한다면 임팩트 있는 맛을 집어넣는 게 관건이라는 말에 무척 공감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0

네 감사합니다^^

이러한 설정의 뒷면에 있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데 또 사실은 그게…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0/11/12 12:58 

자연스래 합으로 읽어놓고…..

한참 생각하니.. 슴 으로 봐도 무방하잖아~ 라는 생각이..ㅠㅠ;;;

참~ 마포에 괜찮은 안주나오는 막걸리집 하나 알아 뒀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0

슴 도 좋네요.

괜찮은 안주는 뭘까 궁금해지는데요? 참새 구이 이런 건 아니겠지요-_- 요즘도 여전히 바쁘신지-_-

 Commented by guss at 2010/11/12 15:11 

파는 떡은 너무 달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1

그러게요 단맛으로 먹는 게 아닌데 너무 달지요? 언제쯤 달라질지 모르겠어요.

 Commented at 2010/11/12 17: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2

그러게요^^ 말씀하시는 것들 다 공감합니다^^ 전문가… 되면 좋겠죠?

 Commented by ck333 at 2010/11/12 18:24 

맛있어보여요…. 잘보고갑니다 ㅠ

배고픈오후.. http://www.couponk.co.kr/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6

꺼져. 스팸신고했다.

 Commented at 2010/11/12 20: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7

네 좀 작지요^^;;; 그게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라서요.

 Commented at 2010/11/12 22: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7

네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10/11/13 08: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3 10:58

으아 정말 그렇네요 믿을 수 없습니다.

떡집은 아니지만, 그 시대가 그렇듯 저도 명절 잔치때마다 떡 엄청 많이 먹었는데요. 이제는 그냥 그래요. 전반적으로 소식으로 가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저에게도 떡은 그냥 떡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떡의 식감 자체가 저에게는 간편하게 다가오지 않더라구요. 끈적거려서 그런 걸까요? 떡은 휴대성이 떨어지기도 하지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1/13 12:54 

아.앙증맞기도 하여라………….!!!!

요즘은 떡도 김밥처럼 세트화되어 나오죠?

예전에도 그랬었는지 살짝 잊어버렸었어요.

인사동에 있나요?저도 한번 들르고 싶네요.

떡처럼 보이기보단 하나의 공예품처럼 보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14 00:37

네 요즘은 떡도 작고 예쁘고 그렇게 가고 있나봐요. 저도 사실 아주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떡이라면 어릴 때 물릴만큼 먹었어요(꼭 명절이면 먹다가 토하던 비만 어린이-_-). 인사동 낙원 떡집과 맥도날드 사이, 새로 지은 건물의 안쪽 귀퉁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