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21)-말 많고 탈 많은 드라이피니시와 돼지목살 조림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마음만은 수입맥주…였으나 예산의 문제로 요즘 선풍적인 인-_-기-_-를 끌고 있는 드라이 피니시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마침 쓸데없이 아끼고 있는 대동강이 몇 병 있어서 그것과 같이 마시기로 했다.
사실은 드라이 피니시가 처음 나왔을때, ‘박철수(파워블로거-_-)’라는 딱지가 붙어 내 앞으로 홍보 꾸러미가 배달되었었다(물론 박철수는 가명). 바로 그 전에 어제 올린 기사를 위해 처음 마셔보고서는 음…그냥 그렇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런 꾸러미가 배달되니 마음이 약해졌다. 이렇게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포스팅이라도 하나 모셔주는 것이 인지상정은 아닐까… 해서 그때 마침 먹고 싶었던 닭날개를 구워 감자튀김과 먹으려고 부랴부랴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게 또 대 실패였다-_-
한참 뭘 만들어서 개한테도 안 먹이고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맛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포스팅 계획은 흐지부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드라이 피니시를 마시게 되었다. 첫 번째 안주는 대구전. 명절 때문에 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는데, 식생활 다양화 전략을 좀 실천해보고자 대구살을 사왔는데 결국 부쳐먹는 길 밖에 없어서 만들게 된 것이었다. 전이라는 음식은 원래 만들기가 어렵다. 조금만 불이 세거나 오래 익히면, 계란이 완전히 뻣뻣해지기 때문이다. 재료도 완전히 익는 와중에 계란은 뻣뻣하지 않게 부치려면 할머니의 40년 노하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구살 자체도 재난이었다. 처음 사 보는 것이었는데 냉장실에서 해동시키고 실온에 꺼내놓으니 과장을 조금 보태 물이 반이었다. 물기가 다 빠지고 남니 두껍지도 않은 살은 뻣뻣했다. 대구살이 뻣뻣할 수 있다니, 놀랐다. 저질제품인듯. 그래서 이 두 가지 요소가 손을 잡아 나온 건 저질 대구전. 생생한 느낌을 더해줄까 간장과 레몬즙, 올리브 기름을 버무린 무 싹을 얹었으나(마치 어설픈 한식의 세계화를 시도하는 요리연구가 또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처럼-_-), 개성공단에서 만들었다는 메주와 소금만으로 만든 간장의 맛이 너무 어려워서 이 또한 실패했다.
돼지 목살 샌드위치를 만들 생각을 한 건, 냉장고에 뒹굴고 있는 제주 보리빵 때문이었다. 어머니한테 얻어왔는데, 멀쩡한 빵에 단맛이 좀 많이 두드러졌다. 단맛-짠맛 조화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기름기 많은 부위의 돼지고기를 약한 불에 오래 조려 끼워 먹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 번 만들어 본 적 있는 삼겹살 조림 샌드위치 생각이 났다.
어디에 고기를 조릴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집에 들어와서야 기네스와 같은 맥주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싹수 있어 보이는 동네 편의점으로 갔으나 늘 있던 기네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드라이 피니시를 속는 셈 치고 써 보기로 했다. 굳이 ‘속는 셈’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 맥주에는 단맛이 많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 단맛을 원하지 않는다면 음식만드는데는 안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마셔도 두드러지는 단맛을 농축시킨다면 그 결과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목살을 덩어리째 지진 뒤, 양파를 볶고 마늘과 생강을 아주 넉넉하게 더한다음 카르다몸 약간을 넣고 맥주를 부어 팔팔 끓인 뒤 불을 줄여 세 시간 정도 졸였다. 일부러 금요일 밤에 조려 하룻밤을 묵혔다. 다음날 아침, 굳은 고기를 일단 썰어놓고 남은 국물을 한 번 거른 다음 다시 끓이고 밀가루로 점성을 더한 뒤 레몬즙으로 맛에 액센트를, 버터로 두께를 더해 소스를 만들었다. 목살이나 삼겹살에 지방이 많으니 하루 종일 끓여도 될 것 같지만, 그러면 정작 살코기 부분은 다 말라버리므로 소스가 필요하다. 고기를 팬에 마지막으로 살짝 올려 온기를 더한 뒤, 식감의 대조를 위해 싸게 사온 배춧잎을 가늘게 채 썰어 얹었다. 나중에서야 사과도 더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짜고 달며 또 적당히 기름지게 만든 샌드위치에 드라이 피니시를 곁들여 마셔보았다. 좁지 않은 것을 억지로 좁게 만드는, 아니면 그렇게 느끼도록 만다는 것 같은 느낌이 마시면 마실 수록 더 진하게 들었다.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표현은 좀 억지같지만, 정말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운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데, 그것도 일부러 빨리 끊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 마시고 나면 홍보문구대로 “샤프”한 것이 아니라, 뭔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든다. 늘 두드러지는 우리나라 맥주의 단맛 또한 그 자취를 아주 감추고 있지는 않다.
맛은 그렇다고 쳐도, 내가 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그 의도와 시기이다. 왜 드라이인가,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인가? 사회 분위기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에 따라서 특정 술의 선호도가 유행을 탈 수는 있지만, 주종 그 자체가 유행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달리 말하자면, 특정 맥주의 선호도가 어떠한 이유에 따라서 시대를 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맥주라는 술 자체는 결국 클래식한 ‘아이템’이 아니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네스 맥주 같은 건 백 년이 넘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나라의 술 문화를 들여다 보면 몇몇 큰 제조업체들이 만성적인 다양성의 부재라는 환경에서 유행을 만들어서 소비자를 지나치게 선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테면 늘 불만을 느끼는 도수 낮은 소주의 열풍이다. 원래부터 소주는 소주가 아니지만, 도수가 낮은 소주는 더 소주가 아니다. 어설픈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드카를 적게 마신다고 해서 보드카 회사가 도수를 낮춘 보드카를 내놓나? 도수를 낮추면 보드카의 정체성이 사라지므로 그런 고려를 하지 않는 건 아닐까? 드라이 맥주 자체의 맛을 논하기 이전에, 드라이 맥주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출연한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은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맛은 어쩌면 가격과 더불어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식의 휘둘리기는 그렇게 달갑지 않다. 소비자가 그렇게 봉인가?
어제 올린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주는 대로, 습관적으로 받아먹는 우리나라 소비자 문화도 문제다. 지금 대중적으로 살 수 있는 술들 가운데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진정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나? 문제는 주종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맞는답시고 개발된 술 자체의 맛이 문제다. 매운 주꾸미 볶음 같은 것과 소주의 궁합은 습관적인 것이지, 맛의 조화나 균형을 따진다면 그저 난센스일 뿐이다. 불에 불을 더하는 격 아닌가? 맥주도 그렇다. 재료보다는 양념맛으로 먹게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음식에 그 정도의 “바디감” 이며 단맛을 지닌 맥주는 어울릴 수가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우습게 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맥주도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나은데, 그 맛의 면면을 보면 기후며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나라 맥주에 그런 고려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고 탄산이 있다는 점 말고, 정말 그 맛으로 김치찌개와 찰떡 궁합인 맥주가 있나? 이렇게 하나마나한 이야기 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낮술, 드라이피니시, 닭날개, 감자튀김, 목살, 대구전
# by bluexmas | 2010/11/04 11:57 | Taste | 트랙백 | 덧글(11)
잘 읽었어요 ^^ 더불어 고기조림 대목에선 입을 쩍..! 대단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