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라 꼼마-B급 구르메 지역의 꽃?

굳이 비유하자면 같은 자동차 회사를 위해 일하는 협력업체들이라고나 할까? 일면식도 없기는 하지만 그 존재는 알고 있는… 모르지만 알고 있는 것 같고,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관계랄까. 그래서 사실 그의 레스토랑에 가는 걸 한참 망설였다. 조금 넓게 보자면 한 지붕 아래에서 일하는 사이나 다름 없으니(물론 그는 내가 누군지도 모를 확률이 더 높기는 하지만;;;)… 그러나 매달 내 칼럼 몇 페이지 뒤에 나오는 그의 셰프 칼럼을 읽다보니, 그의 음식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홍대 주차장 골목에 있는 건물 3층인데,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된 느낌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인테리어의 건물이 1층에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딱히 밖으로 보여주기 위한 인테리어는 또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의 큰 등이 그야말로 매력’포인트.’

단품들이 있고, 코스는 파스타 위주로 된 것(A)이 17,000원, 주요리가 나오는 것(B)이 29,000원이었다. 일단 안심(?)이 되는 가격대. B 코스를 주문하고 메뉴를 들여다보니 4~5만원대의 포도주들이 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B 코스의 구성은 전채-단백질-파스타-후식이었다.

빵은 작은 하드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간이 조금 센 편인 것이 내 취향의 빵. 빵이 맛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맛없는 빵을 만드는 빵집은 그럼 뭔지 모르겠지만.

전채는 모듬 카르파치오. 방어와 한치, 거기에 저온조리한 삼치가 생선이었고 올리브를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과일과 야채, 캐비아, 톳에 쌀가루를 섞어 오븐에 말린 “종이”까지, 사진으로 봐도 알겠지만 화려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만한 차림새였다. 방어와 한치는 좋았는데, 저온조리한 삼치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치라는 생선의 기본적인 식감도 그렇지만, 온도 또한 너무 차가웠다. 온도와 식감이 손을 잡자 방어와 한치 사이에서 자리를 못 잡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반적으로는 재료의 신선함만으로도 훌륭했다. 삼치를 뺀다면 방어와 한치를 위해서 산과 소금이 조금 더 두드러졌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물론 올리브나 캐비아 같은 재료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날재료로 만든 카르파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는 음식을 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맛을 위한 계산 아래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시각적인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들어간 것인지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

고기는 돼지(스페인산)와 소(호주산, 5,000추가) 가운데 고를 수 있는데, 소고기와 다른 단백질 사이에서 고르는 거라면 나는 거의 절대 소고기를 고르지 않는다. 왜? 지겨우니까(농어?-_-). 그보다는 다른 고기, 또 쇠고기라도 다른 부위를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별 갈등이 없었는데, 돼지고기는 아주 익힌 정도나 간도 아주 훌륭했다(전채가 내가 좋아하는 수준보다 싱겁다고 생각했는데, 주요리는 그보다 간이 더 셌다). 예전에 그란 구스토에서 먹었던 목살도 좋았지만, 라 꼼마에서 먹은 돼지고기가 더 훌륭했다. 야채도 간이며 익힌 정도가 뛰어난 수준이었다. 능이버섯 소스가 촉촉함이며 간의 균형을 마지막으로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데, 사진 가운데에서 볼 수 있는 옥수수 “종이”의 역할은 솔직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옥수수의 맛이냐 향을 요리에 불어넣고 싶었다면 그 존재감이 부족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전채에서 나온 톳 종이는 향이나 맛, 아울러 바삭거리는 식감도 준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경우는 그 의도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마지막은 뇨끼. 한 면을 바삭바삭하게 지진 느낌이 꼭 우리 음식인 떡(특히 가래떡)을 구운 느낌이어서 재미있었고, 그 컨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에 달라붙을 정도로 지나치게 끈적거려서 아쉬웠다. 바로 앞의 주요리도 그렇고 소스는 절제한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로 쓰기 때문에 누군가는 촉촉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지나친 소스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소스는 바질크림이었는데, 바질의 존재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클… 그냥 맛만 한 개 봤다. 무슨 유세떨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피클이 필요 없다. 어차피 파스타도 한 입 수준의 양인데다가, 너무 달고 셔서 맛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에서 1cm도 안 떨어진 바로 그런 피클이었다. 셰프는 원치 않지만 먹는 사람들이 원해서 나오는 듯한…

후식은 크림 브륄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탈리아식이라면 젤라토?), 즉 커스터드와 커스터드였다-_- 둘 모두 나무랄데 없이 잘 만든 디저트였지만 앞의 음식들에 비해서 컨셉트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박찬일식 티라미스’ 같은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디저트에도 라 꼼마만의 색깔을 넣으려는 시도는 하는 것 같지만, 이것 하나만 놓고 본다면 컨셉트 면에서 아쉬운 후식이었다. 그나마 나무랄데 없이 잘 만들었으므로 실망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단, 아이스크림 밑에 깔린 초콜렛 조각은 입에서 녹다가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면 이에 달라붙으므로 차라리 소스 형태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이왕 평범한 느낌이라면 그냥 끝까지 평범하게 가도 나쁘지는 않았을듯.

커피는 뭐… 1분 거리에 맛있는 커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으므로 아무런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많이 내린 느낌.

몇몇 만족스럽지 못한 점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은 분위기며 음식을 합당한 가격에 내놓는 레스토랑이었다.그가 홍대 앞에 레스토랑을 연다고 하니 지인들이 ‘B급 구르메’ 지역에 레스토랑을 연다는 말을 했다던 대목을 그의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뭐 그렇다고 압구정동/청담동이 얼마나 A급 구르메 지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음식이라면 어떤 급의 지역에서라도 두드러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실행(execution, 즉 조리)도 나무랄데 없었지만, 컨셉트가 더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단품 주문한 걸 보니, 서너명이 와서 각각 단품 하나씩 시키고, 가격대 괜찮은 포도주를 한두병 시켜서 나눠 먹는게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인 듯 보였다.

만약 홍대 앞이 정말 B급 구르메의 지역이라면 라 꼼마가 거기에 핀 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그와 내가 같은 ‘협력업체’의 처지에 있어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어차피 그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셰프라면 나의 홍보 따위는 필요없을테니까(뭐 그렇다고 잘 되기를 응원하지 못할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그가 나의 존재를 모른다는데 500원 걸겠다.

 by bluexmas | 2010/11/02 12:44 | Taste | 트랙백 | 덧글(20)

 Commented at 2010/11/03 00: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2

네 여기에요. 주로 이 근처에 계시니까 다음엔 압구정까지 안 가셔도 되실 것 같아요.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0/11/03 02:59 

전반적으로 시각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아래 초컬릿 알갱이들은 자갈같은 느낌이라 시각적으로는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견과류를 깔면 안 녹고 좋을 것 같은데.. 전채도 굉장히 색감이 화려한 점이 마음에 듭니다.

크렘 브륄레가 은근히 짝 맞추기가 까다로운 것 같아요. 초컬릿 무스나 케잌은 너무 무겁고, 음..블랙 베리나 라즈베리를 와인에 절인 거(이름이 가물가물;;) 정도면 대략 균형이 잡히려나..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3

사실 재난에 가까운 플레이팅을 보여주는 곳도 많은데, 그래도 신선했어요. 크림브륄레는 정말 짝 맞추기 쉽지 않아서 차라리 그냥 크림 브륄레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베리류 살짝 곁들이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싶구요.

 Commented by 불별 at 2010/11/03 16:51 

가격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나오는게 저게 다라면 배는 부른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4

음 아주 빵빵하게 배부르지는 않겠죠. 저는 만족했습니다.

 Commented at 2010/11/03 17: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4

글쎄요 그럴까요… 500원 드릴게요 하하;;; 청담동도 뭐 그렇게 고급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아니면 그렇게 고급으로 꾸미는 방법이 싫은 건지도 모르죠 뭐.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1/04 02:47 

<파스타>에서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이선균 쉪께서 그러시잖아요.

피클은 파스타에게 지장만 준다고…(맞나?)

암튼 맛있는 파스타를 먹다보면 피클 먹고 싶은 열망이 안나긴 해요.

드물어서 그렇지.

오늘도 눈으로 커피 후루룩!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5

너무 달아서 정말 더 먹고 싶지 않더라구요. 가끔 반찬도 너무 달게 만들면 별로 먹고 싶지 않아져요-_-

 Commented by coin at 2010/11/04 18:18 

저도 박쉐프가 님을 모르는데 500원 걸겠습니다.

(협력업체 인지도때문에 그러시는건지 하도 강조하셔서 농담한번 해봅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05 00:25

네 감사합니다. 500원 벌면 100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바보양 at 2010/11/26 16:41 

두 번 다녀왔습니다. 두 번 다 일요일이었는데 박찬일 셰프는 일요일 쉰다고 들어서 그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런치로만 갔고요.

B코스의 돼지고기에서 튀일이 말 그대로 튄다는 느낌을 저도 받았습니다.

전채도 거의 같은 구성이었는데(한 번은 한치가 나왔고… 한 번은 거의 똑 같았습니다)

하나하나가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은 좀 없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당근 튀일은 그래도 괜찮았네요.

돼지고기도 좋았습니다.

코스에서 선택 가능한 파스타 중에서 까르보나라는 좀 별루였습니다. 너무 크림범벅이라 좀 놀랐고, 수란을 얹는 식으로 나오는데 크림이 뻑뻑해서 수란이 잘 섞여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갔는데 두번째 갔을 땐 첫번째 방문의 고등어 스파게티가 굴 스파게티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고등어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생각보다 파스타류에서 면 삶기가 약간 불규칙한 것 같았고 좀 더 딴딴한 취향이라 아쉬웠습니다.

약간 플레이팅이 산만한 거 아닌가 싶었고 뭔가 최고급은 아니지만 가격대 성능비 좋고 정성이 느껴지고, 친절하고 아늑해서 홍대에선 정말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가격에 지독히 시끄럽고 서비스는 불친절하며 음식은 무성의한 곳들을 생각해 보면…

그러나 뭔가 특색이 부족하단 느낌이었고 독특하고 강렬한 음식을 잘 하신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플레인하고 담백한 느낌이라 아쉽기도 하고 좀 난감했습니다.

‘홍대에서는’ 아주 메리트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1/26 23:27

그러셨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그 이후에 굴 파스타랑 이것저것을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혹시 지역을 떠나 ‘메리트’ 있는 곳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는 1주일에 한 번 꼴로 찾아가는데 솔직히 별로 가고 싶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기는 합니다만…

 Commented by 바보양 at 2010/12/01 17:35 

추천해드릴 능력이 부족합니다만… 추천할 곳도 없구요, 홍대에는…

아시다시피 저도 폴앤폴리나나 르쁘띠뿌 같은 곳은 좋아합니다. 또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하카다분코도 여전히 약간은 홍대 밖에서도 올만한 것 같구요(애매하지만). 이제 라꼼마도 그런 애매한 정도로 추가된 것 같고.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갈만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 자체가 몇 군데 없어서…

벨라 또띠아 라고 또띠아랩 하는 곳이 있는데 가보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당연히 정통 멕시칸은 아니고 텍스멕스도 아니고 아리까리한 미국식인데 가격도 나쁘지 않고 비좁은 가게와 과묵한 주인이 맘에 들어서요.

살사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살사는 빼구요 ㅠㅠ 하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어제는 합정동쪽 ‘카페 이누’ 앞의 ‘자리’ 카페 뒷편의 이름 모를 술집에 가봤는데 괜찮았습니다.

… 정말로 집이 홍대 아닌데도 갈만한 곳은 없는 것 같네요……

예전에 파올로 데 마리아 셰프가 디비노에 좀 정성을 쏟던 때에는 디비노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진짜 괜찮았는데…

그런데 이제는 (강남에 비해)싸고 부담없다는 지역적 메리트를 빼면 정말 봐줄 만한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네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3 10:34

아, 굳이 홍대일 필요는 없습니다. 홍대에서 밥 먹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럴 경우는 그냥 연남동 가서 순대국을 먹거나 하지요. 멕시칸은 집에서 그냥 엉터리로 해 먹고 맙니다 슬프지만… 폴앤폴리나나 르 뿌띠뿌는 이제 안 가구요(어차피 자주 먹지도 않으니까요. 빵값 너무 비쌉니다). 강남쪽도 괜찮은 곳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Commented by 바보양 at 2010/12/01 17:39 

아, 어제 가본 술집은 5, 6000원 정도로 그라땅 도피누와를 비롯한 몇 가지 나름 독특한 감자요리 등등을 안주로 내놓고 맥스 생맥주가 3000원이었습니다. 거품이 아주 부드러웠는데 이게 꼭 좋은 건진 전 잘 모르겠지만… 오늘의 메뉴로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커리 향의 오징어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괜찮은 향이었습니다. 향신료를 잘 썼더라구요… 양은 많지 않았지만 5천원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여기는 다음에 또 가볼 것 같습니다. 술집 이름도 모르면서 말씀드려서 민망하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2/03 10:34

맥스 생맥주도 그 가격에 신선하면 좋지요. 다음 번에는 이름도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푸디 at 2011/01/07 02:16 

가격대비 꽃이라 생각됩니다. 저녁 코스로 먹었는데 사실 그날 최고의 아이템은 빵이었다는. 바사삭 쫄깃 따끈!! 악 먹고 싶네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1/18 01:05

“응 우리 빵 대강 만드는거야” 라고 하시던데요. 그러기에 너무 훌륭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