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관련 서적 몇 권
최근 이런저런 곳에 글을 쓰느라 음식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미리 밝히건데, 이 책들은 내 취향은 전혀 아니다. 일과 상관없다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소문난 옛날 맛집> 황교익 저 / 랜덤하우스 코리아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음식 관련 책들을 보면 금방 두 가지 공통점을 추출해낼 수 있다.
1. ‘추억의 맛’으로 대변되는 감성마케팅
2. 우리 음식의 우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발효 음식이 어쩌고저쩌고
“(전략)전채로 탕평채가 나왔네요. 맛과 모양새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탕평채 만드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청포묵의 은은한 때깔을 살리려면 간장을 많이 넣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금으로 간을 더하면 쓴맛이 나구요.(중략)우리 음식은 장맛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정식집 중에 직접 간장, 된장, 고추장 담그는 데가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 식초 담그는 집은 아예 생각도 못하겠지요…(후략)”
-99~100쪽
“(전략)나는 항상 ‘음식은 머리로 먹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니 말이 많다. 맛 칼럼니스트 맞느냐는 것이다. 나를 설핏 아는 사람들은 더하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데다 담배도 장난 아니게 피운다.(중략) 고백하던대, 나는 음식을 가려 먹는 미식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미각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후략).”
-84쪽
필자가 얼마나 대단한 미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관심도 없고, 또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저 상반되는 두 가지 내용을 읽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절대미각 같은 걸 떠나서, 음식에 대해서 말하고 쓰는 것이 직업이라면 무엇보다 담배는 안 피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대한 객관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그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최선을 다해서 만든 음식을 먹고 싶다면, 먹는 사람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그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만드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될지도 모른다. 만드는 사람은 감을 통해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음식에 관련된 사람이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한다). 어떠한 명칭으로든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담배 피운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던가. 그래봐야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릴 분이다. 머리로 먹는다는 말의 의미는 헤아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혀가 쓸모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믿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다들 찬사를 보낸 가운데 한 사람이 ‘대부분이 필자의 신변 잡기적인 글’이라는 이야기를 했던데 거기에 한 표 던진다. “1980년대 이후 출생세대의 미각은 믿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착잡해진다. 그 이전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책 전반을 통해 스스로를 미식가인 것처럼 설명하면서 한 편으로는 미식가가 아니라고 하니, 읽는 사람은 참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한국음식 오디세이> 정혜경 저 / 생각의 나무
원래 여기에 올렸던 글.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 재미없다. 일단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전제로 깔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음식을 우수하지 않거나, 한술 더 떠 열등하게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음식 문화를 무시하거나, 논리의 비약을 범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우수하다고 하는 음식들은 까놓고 말해 요즘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음식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는 우리 음식 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한식의 세계화든 양식의 한국화든 균형잡인 의견을 내놓는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의견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한국음식 오디세이>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단 제목부터가 난센스라는 느낌이다. 왜 꼭 ‘오디세이’어야 하는가? 책이 다루는 내용은 사실 오디세이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로 길고 깊이가 있는 정도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 음식, 그것도 이제는 먹기 힘든 전통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면 차라리 ‘길라잡이’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까? 사소한 부분이지만 일단 이 책은 제목부터 스스로가 짊어지기를 원하는 권위에 흠집을 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 또한 일단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선언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필자는 우리가 서양의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식생활에서는 전통을 대부분 고수하고 있는 주장을 펼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정의하려는 전통적인 음식이 현재 우리의 식생활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바쁜 직장인이 회사 앞 도시락 집에서 밥과 김치가 나오는 돈까스 도시락을 사 먹는다면 이 식생활은 전통적인 것인가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필자가 책을 통해 펼치는 논리로는 아닐 것이다. 돈까스는 필자의 기준을 따르자면 우리 음식이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자가 이 책을 통해서 시도하는 작업은 거의 철저하게 과거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 참고 문헌들을 수합해서 이제는 슬프게도 구경조차 하기 힘든 음식들의 이야기를 읊는다. 전문가인 필자도 이름이나 사진으로만 접했을 음식이 대부분일 것이다. 눈으로만 맛을 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과거를 잘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도 현재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함께 엮였을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필자는 그러한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필자는 ‘최근 ‘한국음식의 세계화’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이야기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함을 느낀다’라는 논리로 오히려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음식의 세계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를 꺼려한다. 이렇게 우리 음식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그리고 해당분야의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권위자가 이런 식이라면 과연 누구의 의견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맨 위에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 언급했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료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필자는 발효식품으로서 장류가 가진 위대함을 부각시키고자 <규합총서>를 인용한다. ‘(전략) 담근지 삼칠일 안에는 상가나 애를 출산한 집에 가지말고 생리 중에 있는 여자나 잡인을 근처에 오지 말게 해야 한다.’ 설사 정말 우리 장류의 우수성을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사료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성차별적이며 또한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또 인용하는 것이 전문가의 자세인 것일까?
발효식품의 우수성은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동네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자세에도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장류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효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기다려서 만드는 음식 또는 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어떠한가? 심지어 빵만 하더라도 발효를 통해 그 특유의 식감을 얻는다. 필자는 밥이 빵보다 우수하다면서 빵은 반드시 발효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밥보다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어 밥이 더 우수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장류를 우수한 식재료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원리 또는 기술인 발효가 빵이 밥보다 열등한 음식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근거일 수 있는가? 미생물을 이용하는 발효는 그 자체로서 어려운 기술이고 또한 발효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음식은 그 기원을 막론하고 우수한 음식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빵과 밥은 정확하게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 둘의 특성이 전혀 다르고 장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루를 내어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대신, 빵은 밥처럼 밀도가 높지 않으며 특히나 우리의 쌀로 만든 밥처럼 끈적거리지 않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 없고 휴대가 간편하다. 요는 밥이 빵보다 우월한 음식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편향된 시각으로 밥의 편을 들어줄 필요까지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이 책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탁상공론이다. 이러한 탁상공론은 한식의 세계화에 아무런 영양 공급도 하지 못한다. 현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과거를 좇느라 바빠 이 책은 현재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음식의 현주소다. 그 많은 전문가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 첨가물> 아베 쓰카사 지음, 안병수 옮김 / 국일미디어
11월 한달 동안 경향신문의 <착한 시민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지난 달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의 이번 달 주제는 ‘식품 라벨 잘 읽기.’ 언제나 생활의 일부로 하고 있는 일이라서 망설임없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 세상에 우리가 만드는 음식 속에 이런 것들이 들어간대요!!!’라며 호들갑을 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기에는 이러한 식품첨가물에 대한 내용들이 알려진지도 꽤 되었고, 또한 그걸 안다고 해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냥,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글로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고른 것 뿐이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식생활의 문제는, 결국 ‘지나친 양적 팽창’이 그 원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상식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시간의 순리를 거스르려는 시도에서 대부분의 식품 첨가물이 그 빛을 발한다. ‘까라면 까라’ 또는 ‘안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다분히 군대의 냄새가 풍기는 구호들이 현대의 식품 공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비밀리에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책의 저자는 식품첨가물 영업사원으로, 직업적인 사명감에 젖어 열심히 영업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반인류적인” 행위의 해악을 깨닫고 완전 반대의 진영으로 전향, 열심히 팔아먹던 첨가물들의 유해성에 대해서 또 열심히 팔아먹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호들갑’의 맛보기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그렇다, ‘호들갑’이라고 했다. 딱히 더 건강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나도 뭔지 모르는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이에 몸에 집어넣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라벨이며 열량 표기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이 책은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의 내용이 호들갑이라기 보다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원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안 제목 또한 선정적이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재료에 대한 경계심은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강박적으로 ‘라벨’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습관은 영어로는 더더욱 읽기 어려운 첨가물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 음식들에 둘러싸여 있던 유학 시절, 25kg을 감량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1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이번 한달 동안의 캠페인을 통해 일부 쏟아 놓고자 한다. 기본적으로는 라벨 읽기와 식품 첨가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겠지만, 그에 연결지어 보다 다양한 주제로 가지를 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소비자의 위치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다들 건강해지기 위해 사먹을 떠먹는 요구르트 하나의 라벨만 놓고 보아도 생각해보아야 할 많은 문제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우유에서 나오지 않는 젤라틴이며 펙틴의 역할은 무엇인가? 100그램이 채 되지 않는 1인분에 당이 10그램 이상 들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거트에는 왜 요거트 향이 들어 있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손만 뻗으면 살 수 있는 요거트의 라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 괜찮을 것 같지만, 그러기에는 요거트의 원료인 우유가 걸린다. 우리가 먹는 우유는 안전한 걸까? 우유의 라벨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나?
11월 한 달 동안, 이러한 사안들을 주제 및 소재로 삼아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로 예정하고 있는데, 매거진 X 및 개인 블로그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꾸준히 다뤄왔고 또 앞으로도 다룰 예정이므로 그쪽 또한 참고 가능하다.
착한시민프로젝트, 경향신문, 황교익, 소문난옛날맛집, 정혜경, 한국음식오디세이, 식품첨가물
# by bluexmas | 2010/11/01 12:05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0/11/05 12:07
… 다. 주제는 식품 딱지(라벨) 들여다보기. 식품 라벨 들여다보는 건 사실 나에게 생활이기 때문에 별 주저없이 참여하기로 했다. 그 소개하는 글이 바로 며칠 전에 올린 이 글에서 언급한 식품 첨가물에 관련된 글이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식품과 그에 붙은 라벨에서 볼 수 있는 성분에 대해 이야기할 계획이다. 이번 글은 요거트에 관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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