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구멍가게 마케팅
(사진은 글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래도 뭔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어제 밤, 열 시 반쯤에 문자가 하나 왔다. ‘##와서 @@먹으며 **하세요’라는, 전형적인 레스토랑의 홍보문구였다. 가본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언젠가 길거리를 지나가다 들어가보고 명함을 주고 나왔지만, 그 뒤로 다시 가서 먹어본 적은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핸드폰이었지만, 찾아보니 매장 전화번호가 있길래 걸어서, 왜 하필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느냐고 얘기했다. 그 생각없음에 기분이 나빴다.
일단 밑도 끝도 없이 문자를 보낸 것부터 기분 나쁘기는 했다. 일수 대출이나 도박 사이트 같은 스팸문자가 역병처럼 창궐하다보니, 사람들은 웬만한 문자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레스토랑 홍보를 위해서 문자를 보내는 것 자체가 대체 얼마나 먹힐지 일단 그것부터 의문이었다(일시적인 가격 할인 행사 같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문자를 보내면 비용이 가장 적게 먹히니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싼 게 비지떡일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로 메일도 안 먹힌다. 차라리 관제 엽서라도 사서 손글씨로 안내나 초대의 글 같은 걸 썼다면 어땠을까? 디지털이 넘치면 아날로그가 인기를 다시 얻게 된다. mp3 세상에 LP가 다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일까? 인쇄물이라도 디자인이 깔끔하다면 눈길을 끌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좋은 마케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요즘 세상에 덮어놓고 문자 하나 보낸다고 사람들이 몇만 원씩 쓰려 레스토랑에 갈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칼국수집도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문자를 보낸 시기가 생각없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밤 열 시 반에 그런 문자를 보내면, 대체 언제 오라는 것일까? 당장 그날 밤? 아마 그 시간대라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영업을 마무리 할 것이니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레스토랑에서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아마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왜? 그런 홍보 문자는 넘쳐나니까. 만약 그런 문자로 사람들의 방문을 이끌려면, 오히려 점심 시간 이후, 사람들이 배고픔을 느낄법한 시간인 서너시쯤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도 지루하고, 배도 출출해진 직장인들이 저녁 약속에 대해서 생각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하긴 일요일 밤 열한 신가 열두 시 다 되어 홍보문자를 보낸 레스토랑도 있기는 했다… 전혀 그런 것 안 할 것 같은 곳이라 더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홍보 수단을 꼭 써야 되겠다면 친구한테 문자 보내듯 아무 때나 괜찮겠지, 생각할 게 아니라 보다 더 상황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나는 그 레스토랑이 얼마나 손님을 끄는지도 모르고, 또 내 명함이 거기 섞여서 그런 것이지 사실은 단골을 위한 문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즉 차별화하는 것이 생존의 제 1전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이 남들 다 하는 방법에 자신의 정체성을 심으려 하는 시도를 보면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들을 수 있는 녹음된 여성의 목소리이다. “저희 @@@레스토랑에서는 정성을 다한 음식과 서비스로 고객의 만족을 위해 최선…” 솔직히 나는 ‘레스토랑이 무슨 치킨집도 아니고…’라는 표현을 들먹여서 치킨집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조차도 없다. 기본적으로 그냥 그게 싫어서 치킨집에서도 안 했으면 좋겠는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면 그런 건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걸면 정말 십중팔구는 저 안내를 듣게 되는데, 그럼 가기도 전에 실망해서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어진다(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지만, 저게 안 되어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족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음식을 생각해보았을때 그런 게 싫기 때문에 안 넣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 그런 안내 문구를 넣고 싶다면 셰프가 직접 녹음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손님들도 요즘은 성질이 급해서 신호가는 소리 듣는 걸 못참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좀 참아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레스토랑들은 정말 두 세 번 정도 신호가 가는 동안에 전화를 받는다. 그게 서비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뭐 어제 그런 문자를 받고 생각하던 걸 정리해서 써 봤다. 스스로의 정체성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알아서 수준 깎이는 홍보 전략은 좀 안 썼으면 좋겠다. 비난 또는 배설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족 삼아 덧붙인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글 쓴다고 시간과 열량 소비하지 않고 그냥 혼자 욕하면 그만이다.
# by bluexmas | 2010/10/29 22:49 | Tast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