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아주 자세한 복습, 바나나빵

자급자족을 기치로 삼아 베이킹을 시작한지 어언 5년(;;;), 그동안 만든 것들을 빈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바나나빵이 1위를 차지할 것 같다. 바나나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언제나 집에 쟁여놓게 되는데, 혹시 껍질을 까기 귀찮아 안 먹고 쌓인 바나나를 처리하기에 빵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바나나의 개인사를 추적하자면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바나나를 그냥 뭉터기로 사는 것이 훨씬 싸기 때문에, 못 먹는 상태까지 남는 바나나가 너무 많아지므로 예전보다 더 자주 바나나빵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자주 만드는 바나나빵이기는 하지만, 그 식감이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촉촉하지 않고 뻣뻣한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는데, 그걸 해결해보고자 최근 유료회원에 가입한 아메리카스 테스트 치킨의 비디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냉동실에 보관했던 바나나를 해동해서 쓴다. 이 경우 바나나가 형체를 유지하지만 완전히 곤죽이 되어 있는데 이를 거품기로 한참 휘저어 완전히 액체화시키고 거기에 계란과 나머지 “젖은 재료”들을 넣은 뒤 밀가루를 섞었다. 그러나 이번에 비디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나나를 완전히 으깨지 않아야 전분이 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나나를 고무주걱을 써서 적당한 수준까지 으깨고, 거기에 계란과 나머지 재료들을 섞었다. 예전에는 습관적으로 계란도 그냥 깨넣고 함께 거품기로 저었는데, 다른 그릇에 깨서 따로 푼 다음 섞는 편이 빵이 뻣뻣해지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반죽을 섞을 때에도 늘 좁고 높은 그릇을 썼는데 그보다는 넓고 얕은 그릇이 더 좋다. 반죽을 조금 휘젓고도 잘 섞을 수 있어 글루텐이 발달되는 것을 막기 때문인가(이런 얘기는 너무 당연해서 할 필요가 없는 걸까;;;).

비록 작은 차이지만 주의깊게 따라해보니 식감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보다 훨씬 낫길래 단독 포스팅으로 대접해주는 차원에서 글을 올린다.

사족

1. 이런 종류의 퀵브레드에도 경우에 따라 사워크림이나 요거트를 구분해서 쓰는데, 솔직히 우리나라의 사워크림은 조금 고급스러운 요거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모시는 의미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이런데 쓸만한 플레인 요거트가 많으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암울한 현실. 덴마크의 플레인 요거트가 유일하게 이런 용도에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젤라틴과 펙틴로 점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최근에 상하의 상표를 달고 플레인 요거트가 새로 나왔는데, 신맛을 덮으려고 꿀과 포도즙을 썼다. ‘퓨어’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꽤 달아서 베이킹용으로는 맞지 않는다. 나머지 올리고당이나 요거트향이 들어간 것들은 물론 언급할 가치도 없다.

2. 레시피는 여기를 참고하면 되는데, 이걸 두 배로 뻥튀겼을 경우에 덴마크 요거트 두 통 반을 쓰면 된다. 머핀팬에 넣었을 경우 열 두 개로 나누면 좀 작고, 두 배로 뻥튀긴 건 너무 커진다(몇 번 올린 미친 머핀이 바로 그것). 아홉등분 하거나 1.5배해서 열두 개로 만들면 딱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크기가 될 것 같은데 아직 시도는 안 해봤다.

3. 또한 아몬드가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데, 그보다는 확실히 호두같이 향이 더 짙은 종류의 견과류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호두가 아니더라도 견과류를 쓸때 조금 향이 짙을 때까지 구워도 될 듯.

4. 퀵브레드에 관해 쓴 김에 베이킹 파우더 이야기도. 쓰던 것이 다 떨어져 최근 아주 700원짜리부터 1,700원, 3,200원짜리까지 세 종류의 베이킹 파우더를 사서 써 봤는데 700원짜리에는 알미늄이 들어갔는지 금속의 뒷맛이 너무 진하게 남았다. 1,700원짜리는 괜찮았고, 3,200원짜리는 아주 만족스럽다. 외산처럼 생긴 포장을 하고 있었는데, 국산이었다.

5. 어디선가 카레향을 더한 레시피를 봐서, 강황과 계피, 클로브 등을 넣어봤는데 확신이 없어 조금만 넣었더니 바나나향에 묻혔다. 다음에는 더 넣어봐야 할 듯.

6. 바나나빵으로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식당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by bluexmas | 2010/10/27 09:12 | Taste | 트랙백 | 덧글(26)

 Commented by minx at 2010/10/27 09:36 

바나나를 이용해서 만든 빵은 막상 먹어보면 반하게 되요. 그 부드러움도 그렇고 달콤함도 그렇고. 부드러움이 포인트인거 같기도 하고…하지만 만들기는 쉽진 않겠죠? 자급자족을 기치로 하신다니 대단하세요. 전 카페 하시려고 하는줄 알았어요. 사진도 예쁘고 하니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4

카페는요^^;;; 그럴 돈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소비자에 머무르는 게 좋아요.

 Commented at 2010/10/27 09: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4

그렇죠 아메카노와 같이 먹어야지 어린쥐 주스와는 아닙니다-_- 그냥 오븐으로 뭘 만드는 게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두근두근하잖아요. 이번에도 잘 될까? 이런 기분이요.

 Commented at 2010/10/27 10: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5

네 향이 거슬리죠… 요구르트에 요구르트 향이 들어갑니다. 사워크림은 발효시킨거라 굉장히 오래가기는 하는데 맛이 별로에요.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Commented at 2010/10/27 10: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5

감사합니다. 11월 중순까지면 되겠죠? 오시면 집으로 한 번 모시겠습니다…

 Commented by spodery at 2010/10/27 10:40 

어떤 맛일지 궁금해요ㅋㅋ

파운드케이크 종류인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6

아, 바나나 맛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파운드 케이크는 아니구요. 걔는 버터가 많이 들어가지요…

 Commented by settler at 2010/10/27 10:48 

빵도 너무너무 좋지만 빵 사진들 색감이 언제나 좋아요

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씩이나)

바나나빵으로 만든 프렌치토스트 T-T

햇살이 촉촉히 스민 첫 사진이 특히 심금을 울리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6

앗 사진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실은 햇빛에 안 내놓는 사진을 저는 더 좋아하는데, 오후 시간에는 짤없거든요. 피하느니 그냥 노출시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진이 나올지 궁금해서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0/27 12:02 

껍질까지 귀찮으셔서 안드시고 쟁여놓은 바나나라…

그 비슷한 과일에 포도가 있지요.ㅋ

어떨땐 껍질 뱉기 귀찮아 껍질까지 씹어먹어 버립니다.

블루마스님이 만든 바나나빵은 바나나향이 아주 찐~할 것 같진 않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7

저는 이제 이가 나빠서 씨를 먹을 수 없어서 껍질도 열심히 뱉습니다. 바나나 빵도 잘 만들어야 바나나향이 풍기는 것 같아요. 못 만들면 벽돌로…;;;

 Commented by Cheese_fry at 2010/10/27 12:39 

바나나 빵~~ 촉촉한 바나나 빵에는 저런 과학이 있었군요.. 베이킹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천은 어째 잘 안되고;; 미국 수퍼에서 파는 바나나 빵류은 촉촉함을 버터..등으로 상쇄하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 그래서 바나나 넛 머핀 탑만 먹는다고 하면 변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7

버터면 다행인데 대부분 쇼트닝 같은 걸 써서…엄청 촉촉하죠;;; 머핀 탑만 먹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바삭바삭하잖아요^^

 Commented by 해밀 at 2010/10/27 13:47 

아메리카스 테스트 ‘치킨’! <황금 불고기> 같은 건가요? ㅎ 보면서 치킨?키친?치킨? 어느 말이 맞는지, 이게 트릭인지 아닌지 긴가 민가 한 걸 보면 영어 공교육에 문제가 많긴 한가 봅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8

네 맞습니다!! 크크. 우리나라 영어 공교육 너무 훌륭하죠~ 외국 나가도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영어선생님의 전설을 아실지도…

 Commented by 알렉세이 at 2010/10/27 16:01 

으아니 제가 생각했던 바나나빵이랑은 조금 차이가 있군요. 전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학교 후문에서 3개 천원에 팔던 노랗고 따끈따끈한 바나나빵을 상상했더랬지요. 하읅

근데 이것도 침넘어가긔. 어떤 바나나의 맛이 날까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8

아 그거 알지요. 어릴적 외가가 있던 동네에는 제과점에서 그걸 팔기도 했어요. 틀 만들어서 구워보고 싶네요. 파운드케이크 반죽 같은 거면 괜찮을텐데…

 Commented by 빠다 at 2010/10/27 21:35 

보기만 해도 촉촉촉 바나나빵이네요 그런데 바나나빵으로 프렌치토스트를 하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해지네요 참 요거트는 덴마트요거트가 제일 낫군요 ^_^ 좋은 정보예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9

그냥 먹기엔 어떨지 몰라도 베이킹에 쓰기엔 그것 한 가지 밖에 대안이 없어서요. 나머지는 향이나 단맛도 그렇고…

 Commented by absentia at 2010/10/28 09:56 

저도 보통 넛맥과 시나몬은 넣어요. 그런데 적당히 넣는 것이 바나나 향과 충돌하지 않는 듯. 한번 시험삼아 시나몬을 많이 넣었다가 실패한 기억이……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00:19

이번에 시나몬을 넣었는데, 반죽이 큰 걸로 두 개짜리라 별로 표는 안 나더라구요.

그나저나 잘 지내고 계시죠?^^

 Commented by absentia at 2010/10/29 06:45

으허허허…… (애매한 웃음만)

그나저나 양지훈 쉐프 인터뷰, 재밌게 잘 읽었어요. 마지막의 ‘치고 받는’ 부분에서 빵 터졌습니다. 하하.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29 23:01

으음 헛웃음 속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요…;;; 인터뷰 잘 읽으셨다니 기분 좋습니다. 이런 인터뷰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거든요. 외국 셰프들 인터뷰 읽으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