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
오늘 오후엔 기분이 불안하리만큼 느긋하고 평화로왔다. 아마 어제 잘 놀아서 그랬으리라. 잘 놀았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친하고 편한 상대를 만나서 적당하게 먹고 마시고 논 다음 그걸 모두 기억했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마지막의 기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그 비참한 기분은 굉장히 오래 간다. 쉬면서 책을 읽다가, 밥을 안쳐놓고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한 다음 바뀌는, 집의 아늑한 느낌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일을 하셨던지라 주말에는 짤없이 청소만 했다. 물론 그게 싫었지만 청소를 마친 다음의 그 느낌은 싫지 않았다. 아마 그 느낌 때문에 그래도 그럭저럭 청소만 해야 했던 상황에 불만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서야 나가봐야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네 수퍼에 가서 물어봐 가장 비싼 계란을 사다가 ‘후라이’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묘하게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먹던 그 계란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잠시 놓아 먹이던 닭을 생각했다. 본가에 가서 황금 불고기를 보며 잠시 너스레를 떨다가 집에 돌아와서 지나간 탑 셰프를 한 편 더 보고 잠깐 일을 했다. 손에 더 많은 평화를 쥐고 살았으면 좋겠다. 손에 쥘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안고 머리에도 이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면 더 좋고. 아니 먼저 나눠주는 것부터 생각해봐야 하나?
# by bluexmas | 2010/10/15 00:02 | Life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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