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일을 하며 오전을 보냈다. 아틀란타의 이번 시즌은 오늘부로 막을 내렸다. 아쉽지만 아쉽지 않다. 올해는 그래도 정말 즐겁게 정규시즌 경기들을 보았다. 내셔널리그 쪽은 응원할 팀이 없고, 아메리칸 리그는 양키스만 아니면 된다. 바비 칵스(또는 보비 콕스)의 은퇴가 아쉽지만 요 몇 해는 막말로 노망난 노인네처럼 운영하는 경기가 너무 많아서 보기 괴로왔다. 새 감독이 프레디 곤잘레스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점심을 먹고 잠시 빈둥거리다가 부엌을 치우며 베이킹을 좀 했다. 그러는 동시에 세탁기를 두 번 돌렸다. 같은 레시피로 식빵을 한 열 번 정도 구워보기로 마음먹고 오늘 첫 번째 빵을 구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식빵다운 식빵을 구워본 적이 없었다. 항상 반죽 탓을 했지만 그것보다 온도라는 생각이 들어 대폭 낮추고, 시간도 레시피에서 얘기해주는 것보다 훨씬 적게 구웠다. 45-50분을 구우라고 했지만 온도계를 찔러보니 35분만에 원하는 온도까지 올라갔다. 지금까지 구웠던 것들 가운데 가장 식빵다운 식빵이 나왔다.조미료 안 들어간 햄만 있다면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비싼 한경햄 같은 상표도 버젓이 인류의 친구 글루타민산 나트륨을 넣어 햄을 만드신다). 식빵이 구워지는 사이 동네 수퍼마켓에 밀가루를 사러 갔는데 잘 익은 토마토를 개당 천원 꼴에 팔길래 집어왔다. 바나나도 싸게 팔길래 사왔다.

식빵 다음에는 사과머핀을 구웠고, 그 사이 아이스크림 베이스를 만들었다. 크림과 우유를 사다놓은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팩을 뜯어보니 둘 다 고맙게도 멀쩡했다. 굵은소금을 뿌린 버터쿠키가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생각을 한지가 꽤 오래 되었다. 아이스크림 베이스는 오늘 만들었으니 쿠키는 모레쯤 구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사과머핀은 굳이 머핀으로 굽지 않고 업사이드 다운 케이크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과는 달아서 미국사과보다 포장을 덜 해도 된다. 때로는 장점이고 때로는 단점도 된다. 음식재료로 쓴다는 측면에서는 단점이 될 때도 꽤 많다. 너무 달아서 균형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운동도 못가고 저녁까지 베이킹을 마치고는 저녁을 먹고 본가에 빵을 가져다 드렸다.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다며 드린 것의 반 이상을 두 분이 앉은자리에서 드셨다. <황금불고기>가 아직도 방영중인지는 몰라서, 소파에 널부러져 보며 어머니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롯데마트에 운동 삼아 계란을 사러 갈까 생각하다가 접고는 아침에 청소기를 돌리기 좋은 상태로 집을 정리하고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왔다. 음악이 미친듯이 크게 나오는 와중에 트레드밀에 올라있는 서너명이 각자 가장 큰 소리로 <동이>와 <성균관 유생들(제목 이거 맞냐? 관심없다)>을 보고 있었다. 악마가 고요함을 좋아하는 존재였다면 니들은 한꼬치에 꿰어서 지옥불에서 영원히 구워질 거다, 물론 비명도 못 내고. 악마가 고요함을 좋아하니까 라고 혼자 생각했다. 고통스러운데 비명을 못내는 것이 아마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대화의 속도가 예전보다 1.5배 정도 빠르게 느껴졌다.

 by bluexmas | 2010/10/13 00:27 | Life | 트랙백 | 덧글(1)

 Commented at 2010/10/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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