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달아 올리는 [이태원]교토푸-‘일본풍’이라는 양날의 칼
어떤 분이 교토푸에 관한 글을 올리셨길래, 나도 갔던 기억이 나 사진을 뒤져 올린다. 10월 1일에 정식 개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 직전에 갔다왔었다. 어째 그 분홍색이나 간판의 글자체 같은 것들이 정확하게 우리나라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006년인가부터 뉴욕에 문을 연 디저트 카페였다(물론 간단한 식사류도 파는 모양… 솔직히 나는 관심없지만). 100%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부나 두유를 바탕으로 한, 채식주의풍의 디저트가 주종을 이룬다. 미국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일식 요소의 현대적인 적용-참깨, 두부, 녹차, 미소 등의 사용-은 사실 일본의 이웃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참신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먹은 것 또한 ‘가이세키(19,000)’으로 일종의 테이스팅 코스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디저트 테이스팅 코스를 아주 좋아하는데, 배를 안 불리면서도 다양하게 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나온 건 흑설탕 시럽을 얹은 두부와 참깨(?) 튀일. 두부라는 것을 모르고 먹는다면 젤라틴으로 굳힌 일종의 젤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콩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두부였다. 두부 그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관심을 가지고 먹어보았는데 식감으로 따지면 거의 최고 수준의 연두부였다. 그 연두부를 바탕으로 깔고 흑설탕 시럽의 진하지만 깨끗한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튀일은 아주 얇아 식감 면에서는 감탄할만한 수준이었는데, 정작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3인조’ 구성의 다음 디저트. 맨 왼쪽은 두유 아이스크림. 그 생활 양식은 존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삶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채식주의 음식이나 디저트를 굳이 찾아 먹거나, 맛을 희생하면서까지 지방을 과도하게 뺀 음식을 먹느니 안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래서 두유 아이스크림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적이었으나(예전에 먹어보았던 쌀 또는 두유 바탕의 아이스크림이 비린내만 날 뿐 별로 맛이 없었으므로… 미국의 두유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꽤 다르다. 향을 더하지 않아 콩 비린내가 만만치 않고, 만약 더할 경우 바닐라;;; 같은 향이 아주 두드러지게 들어간다), 식감도 굉장히 부드럽고, 맛도 깨끗했다.
가운데는 초콜릿 미소 케이크에 카라멜, 녹차 크림. 초콜렛과 미소의 조합이 그 의외성을 넘어설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것인가는 조금 재고해보아야할 문제인데,그와는 별개로 두 재료 모두가 무거운 향이나 맛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걸 덜어주기 위해 산이 필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나만의 취향일 수도 있지만, 레몬제스트나 즙을 살짝 곁들였더라면 마지막 느낌이 훨씬 더 가벼웠을 것이다. 케이크 자체에도 좋고, 녹차 크림이나 카라멜 어디에도 괜찮았을 것이다.
마지막은 말차 크림 브’휠’레. 커스터드는 많은 음식(디저트든 아니든)의 기본인데, 잘 만들기는 은근히 어렵다. 끓는 점이 낮은 우유와 크림을 은은하게 끓이는 것도 어렵고, 그걸 계란 노른자와 섞어서 멍울이 지지 않게 익히는 건 더 어렵다. 체로 걸러서 마무리하는 것도 기본이고… 물론 익히는 것 또한 물 중탕을 써서 온도차를 최소화 시켜주어야 한다. 또한 너무 익혀도 뻣뻣해질 뿐이고(셰프들은 평범하지만 조리하기 어려운 재료로 주저없이 계란을 꼽는다. 계란을 적당히 익힌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집에서 먹는 계란 ‘후라이’는 거의 100% 너무 익힌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맛은 그렇다고 쳐도, 야들야들한 커스터드와 아주 얇고 균일한 두께로 태운 설탕의 식감은 맨 처음에 먹은 두부-튀일의 대조와도 비슷했다. 잘 만든 크림 브’휠’레였다.
코스의 마지막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왼쪽의 것은 화이트 초콜렛(정말?), 오른쪽은 피낭시에와 쿠키와 뭐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은데, 깔끔하고 맛있었다는 정도로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인상적이지 않았다.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맛은 그렇다쳐도, 메뉴에 에스프레소가 있는데 전용 잔이 없는 집은 이해가 잘 안 간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에도 대부분 전용 잔은 있지 않던가?
밖에서는 물론 안에서도 분위기가 나름 묘해서 뭘 먹게 될까 좀 궁금했는데, 솜씨도 좋고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깔끔한 맛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 취향에는 몇몇 디저트에 산뜻함이 좀 더 깃들었다면 그보다도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참신함은 떨어지는 맛이므로 일본에 있는 디저트와 직접 단순 비교가 가능하고, 그래서 ‘맛은 있지만 일본에는 흔한 맛’,’여기에서 이 돈 주고 먹느니 일본에 가서 비슷한 걸 먹겠다’라는 식의 평가가 나올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가격까지 더한 상황이 승부(?) 또는 만족도의 관건이 될 것이다. ‘앗 뉴욕에 있던 교토푸가!!!’라며 좋아할 층도 물론 있겠지?
아, 그리고 덤으로 개그라고 생각되는 이야기 하나. 보통 디저트는 그냥 ‘디저트’라고 부르고 그 반대 개념의 보통 음식은 ‘savory food’라고 지칭을 한다. 모 신문에서 이 집을 소개했는데, “메뉴는 디저트와 savory(허브의 일종), 음료가 있다’라는 구절을 썼더라. 그게 그 savory가 아닌 것 같은데… 보니까 다른 분이 올리신 메뉴에도 savory로 만든 차는 없던 듯. 으음, 기자님…
# by bluexmas | 2010/10/07 09:38 | Taste | 트랙백 | 덧글(20)
외국에서는 제법 알려진 곳인가 보네요
개인적으로 테이스팅 코스 좋아하는 편이라 호감이 갑니다
게다가 bluexmas 님의 호의적인(?) ^^; 리뷰를 보니 더 궁금해지네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여태 치칼리셔스도 그 건너편 집도 안가봤으니…
본문에서 약간 벗어난 질문이지만 이럴 때 savory를 우리말로 뭐라고 옮기면 좋을까요? 어감이나 의미는 알고 있으면서도 딱 떨어지게 뭐다!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얼마전에 Top chef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던데… 이 디저트는 거의 savory 같네요…라는 식으로.
savory는 저는 그냥 ‘짠맛 나는 음식’,’보통 음식’ 정도로 하고 싶으나…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허브는 절대 아닙니다;;;
토마토도 아니고 도마도도 아닌, 토마도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