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당의정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느린 노래를 들었다. 언제나 빨리 달릴 때에는 빠른 노래를 듣곤했다. 그러나 오늘은 빠른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는 것이 불안했다. 그러게요, 저는 대체 왜 불안할까요? 낮에 가졌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모든 이유를 다 까놓고 보면 결국 남는 이유라는 건, 어떻게 해도 불안함을 완벽하게 덜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한 거라는 생각 뿐이에요.

사는 건 당의정을 씹어먹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겉을 감싸고 있는 건 달콤한 기쁨이고, 속에 들어있는 건 쓰디쓴 슬픔이나, 나의 친구와도 같은 불안함이다. 사실은 씁쓸함을 느끼더라도 나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느 누구도 그걸 씹어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오른손에는 당의정을, 왼손에는 물컵을 쥐어주었는데, 물은 반만 담겨 있었다. 그렇다, 문제의 그 반만 담긴 물이었다. 나는 언제나 반’만’ 담긴 물이라고 말했고, 물컵을 쥐어준 사람들은 반’이나’ 담긴 물이라고 했다. 물이 반만 담겨 있기 때문에 나는, 물로 당의정을 삼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쓴맛을 가져내는 데에는 반의 반컵이면 충분했으니까, 적어도 처음 몇 번 복용할 때에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당의정의 크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 속의 쓴맛은 점점 더 심해졌고, 이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담수를 모두 들이켜도 절대 가셔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 되었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들 서로 달라야 하느냐고 현실에 대해 힐난하지만, 시간이 약이라서 결국 우리는 모두 다 같아질 수 밖에 없다는 복선이 깔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by bluexmas | 2010/10/07 01:57 |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at 2010/10/07 08: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07 10:00

저는 ‘shades of gray’를 은근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라는 사람은 굉장히 흑백론자인 것 같기도 하구요. 양비론적인 사고도 만만치 않은데… 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요 ‘ㅅ’

 Commented by Nobody at 2010/10/07 12:57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그나저나 당의정 씹어먹는 건 상상하기도 싫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09 02:08

별 말씀을요, 읽어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

그러게요 당의정 씹어 먹는 건… 좀 무모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