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빌라 소르티노-쿠폰과 본토 입맛
건축이론을 공부한답시고 미국애들 사이에 끼어서 세미나를 듣던 시절,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건축이론이라는 것이 결국 서양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일텐데, ‘철학=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동양인으로 태어나 그 사고방식을 가지고 지금까지 산 내가 암기과목 외우듯 받아들이는 것 외에, 진정으로 이런 이론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아예 이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곤 했다.
음식 이야기에 웬 건축이론까지 들먹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가끔 다른 문화권의 음식을 완벽하게 조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입맛의 차원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만약 ‘외국에서 먹어본 그 맛’을 재현하는 것이 외국 아니면 서양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전혀 다른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 입맛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이 그걸 따라 무의식적으로 조리의 온갖 세세한 부분을 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부정적인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음식을 제대로 조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외국인 셰프가 조리의 기술적인 측면 말고 어떤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지난 달에 양지훈 셰프를 인터뷰하면서 고유의 입맛이라든지 그에 관련된 조리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물론, 외국인 셰프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못 만든 음식은 누가 만들어도 맛이 없다.
지난 번에 ‘데일리픽’에서 산 쿠폰으로 이태원의 빌라 소르티노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곳 말고도 여러 곳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셰프가 주방에 언제나 붙어 있지는 않겠지만, 결국 주방의 맛을 좌우하는 사람이 셰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무엇인가 다른 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과연 쿠폰을 통해 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또 어떨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지하인 내부는 굉장히 넓었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다면 먹고 이야기 나누기에는 괜찮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고 눅눅한데 사람이 가득찬 토요일 저녁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먼저 빵이 나왔는데, 간이 굉장히 세다는 첫 인상을 받았다. 내 입맛이 아무래도 좀 짠 편이고 밖에서 먹는 서양 음식의 경우 짠맛, 기름맛, 불맛 모두가 두드러지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짠 편. 하지만 ‘짜서 못 먹겠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껍질은 딱딱하고 속살은 부드러운 빵이었는데, 올리브 기름이든 뭐든 지방이 많이 들어간 빵이었다. 가장자리가 마른 느낌이 단지 구웠기 때문만은 아니고, 잘라놓은지 조금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잘 만든 빵이었다.
전채는 카프레제 샐러드와 리코타 치즈를 얹은 버섯이었다. 좀 정신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두 치즈의 부드러움을 바탕으로 토마토의 단맛이나 역시 좀 짭짤하게 된 간, 토치로 지진 불맛 등이 잘 어우러졌다. 별 불만이 없는 음식이었다.
다음은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였는데 눈으로만 보아도 ‘음, 잘 만들었군’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면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알 덴테였다. 알 덴테의 알 덴테랄까… 면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이태리에서 이랬던가?’라며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으나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본토에서는 이 정도일지도…?
솔직히 나는 스테이크에 별 미련이 없다. 스테이크를 싫어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코스에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코스에 스테이크가 나와야 구색을 갖추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더 좋은 선택들이 있는데도 결국 식당들이 스테이크를 내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람들도 그냥 간단하게 ‘응, 스테이크를 먹었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뽀대가 난다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사실 스테이크라는 음식은 조리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스를 곁들이기도 하지만, 좋은 재료와 아주 기본적인 양념, 감으로 익힐 수 밖에 없는 조리 상태 등등을 생각한다면 만만한 음식이 아닌 것이다. 하여간 그래서 스테이크에는 별 기대가 없었고 따라서 딱 그만큼이었다. 잘 구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딱히 감동은 없었고, 곁들여 나오는 야채에는 소금 간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밋밋했다. 그 전까지 나온 음식들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간이 되어있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아예 소금의 흔적조차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하는, 구색을 맞추는 격이라는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 왜 브라우니여야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더구나 차가운 브라우니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라면 나는 따뜻한 브라우니+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조합을 생각하게 된다. 접시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으로 보아 브라우니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손님에게 나갈때 아이스크림을 얹어 내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가끔 밖에서 브라우니를 먹게 되면 대부분 밀가루의 흔적은 별로 없는, ‘퍼지 fudge’ 아니면 딱딱한 무스와 비슷한 느낌의 것들이었다. 부스러기가 좀 생기는 식감의 브라우니가 오히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기에는 식감의 대조 덕분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맛은 괜찮았지만 차갑고 딱딱해서 끝까지 먹기는 힘들었다. 아이스크림은 평범무난했는데, 역시 바닥에 깔린 피스타치오는 습관적으로 곁들인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가격까지 생각한다면 만족도는 불만의 여지 없이 높았으나, 그런 가운데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역시나 입맛. 전반적으로 간이 센 이유가 결국 외국인 셰프의 입맛 때문이냐는 것. 만약 그런 부분에 있어서 셰프가 ‘내 입맛대로 가겠다’라고 해서 그걸 고수했다면 전반적인 코스의 구성은 절반은 습관에 의해, 또 절반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잘 나가니까’라는 이유로 꾸민 것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했다. 내가 외식을 하는 경우는, 부득이하게 끼니를 때우는 것 말고 크게 두 가지이다. 전자는 우웬만한 곳에서 먹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아주 잘 만든 음식을 먹고 싶을때, 후자는 웬만한 곳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고 싶을때이다. 빌라 소르티노의 음식은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어느 정도는 저 메뉴가 쿠폰용으로 고안되어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을만한 부분만 골라서 꾸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태원, 빌라소르티노, 이탈리안레스토랑, 파스타, 스테이크
# by bluexmas | 2010/10/06 09:52 | Taste | 트랙백 | 덧글(13)
뭐 음식도 문화의 일부니까 쓰다보면 다 쓰게 되겠죠…?^^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