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맛본 우리 명절의 진수

1. 간신히 일어나서 본가에 가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는데 양복입은 남자들 한 무리에 가족으로 보이는 20대(추정)여자가 섞여 있었다. 보니까 나이 먹은 남자와 그 아들뻘이 두 명 있길래 전부 가족이고 남매고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남자 가운데 한 명이 여자한테 “너 시집 안가냐?”고 잽을 날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명절의 진수. 난 정말 명절이 싫어서 거의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이런 찰나에 진수를 맛보고야 말았다. 역시 우리 명절은 정말 지독한 모양. 결혼 적령기의 짝없는 남녀들이 오늘 전국 각지에서 저렇게 짜증나는 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명절이란 것은 결국 우리 민족의 강박관념이 전부 농축되어 한 자리에 펼쳐지는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차례같은 거에 대한 격식을 얼마나 정당화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조상님 은덕…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내가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걸? 물론 그런 걸 바란다는 의미도 아니다. 조상님 은덕 같은 거 없어도 이 삶은 이 삶 답게 살아야 한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한꺼번에 차로 넘치면서 그 모든 차들이 뿜어내는 배기가스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니 끔찍했다(물론 환경보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중국인 전체가 오줌을 싸면 지구가 홍수에 잠기고… 뭐 그런 농담도 있지 않았나?). 자식노릇한다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모두 굴레에 얽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거의 100% 감사하지만(감사 못하는 부분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만 올라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너무 부정적일 자세를 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절대 가족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나?

1-1. 아, 머리가 덥수룩한 나를 끝까지 쳐다보며 내리는 아저씨의 양복 뒷자락이 날리며 풍기는 진한 아저씨 냄새. 좋았어요^__^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안 좋은 남자냄새는 질색이다. 더위가 막바지였던 어느 날 저녁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남자는 베레모도 쓰고 나름 ‘내가 다른 남자들과 달리 옷입는데 신경 좀 쓰지’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부류였는데 뭔가 알싸spicy한 향수를 뿌렸는데 그 냄새가 좀 괴상했다. 뭔가 체취랑 섞인 듯. 여자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라서 남자냄새는 별로… 너무 진하게 나서 두 정거장인가 남겨놓고 다른 칸으로 옮겼다.

2. 선물로 받은 드라이 피니시 맥주를 위해 보은 포스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한 캔 사다 마셔봤는데 글쎄…

3. 향미증진제나 발색제가 들지 않은 비엔나 소시지를 그것도 한 봉지 통째로 덤을 얹어 팔길래 혹해서 사다가 구워 먹어보았다. 정말 그 두 가지가 없는 느낌이기는 했는데, 가공햄을 먹으면 꼭 가래가 낀 듯 목구멍이 답답한 느낌이 몇 시간동안 간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번에 이마트에서 파는 스팸 종류도 조미료, 색소 없다고 해서 먹었는데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직 한 700그램 정도 남았다.

4. 추석이니 기념으로 콧털이나 깎아야 되겠다. 콧털 깎는 것이 무슨 의식처럼 되는 이유는, 면도기가 110V 용이라 잊고 있다가 가끔 충전시키는 처지기 때문이다. 옷 잘 입고 뭐 이런 거 다 필요없다. 콧털 같은 거 안 깎아서 삐져나오고 그러면 세련된 남자는 절대 될 수 없다. 그런데 보면 옷 잘 입었는데 콧털 삐져나오게 그냥 두기도 힘들 걸?

4-1. 이왕 기를거면 당당하게 기르는 게 좋다. 그러나 콧털을 당당하게 기르는 사람은 없겠지. 콧털을 길러 땋거나 양갈래로 묶어나 뭐 이런 수준으로 당당하게 기르는 남자가 있다면 칭찬해주리. 어깨 뒤로 막 넘기고…

5. 비님이 오지 않으셔서 달리기(5km)를 했다. 길거리에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책임져주시는 고마운 외국인 노동자님들로 가득했다.

6. 쌀쌀하고 눅눅하면 최악이다.

7. 아직도 우리나라에 ‘동물농장’ 같은 크래커가 남아 있나?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반죽은 똑같이 만들어도 동물 모양으로 찍기가 어려우니까.

8. 시나몬 롤 조리 비디오를 여러 종류 들여다보고 있는데 만들 수 있을만큼 만만하게 생긴 걸 발견했다. 예전에 브리오슈를 만들면서 느낀건데 계란이나 버터가 많이 들어간 건 아마츄어가 제대로 발효시키기가 쉽지 않다.

9. 제발 눈치좀.

10. 근데 나도 별로 눈치 없는 것 같다-_-

11. 나는 하루 종일 밖에 딱 두 시간 정도 나갔다 왔는데 이렇게 잡담을 뿜어내고 있다. 전생에는 잡담 못 뿜어내 환장하다가 죽은 누에 아니었을까..

11-1. “뽑아내고 싶은 건 잡담인데 고작 실 따위를’ㅅ’ “

12. 황금<불>고기는 의도한 것이었는데 한 분이 지적을 해 주셨다. 역시 날카로우셔요. 일이 읽고 쓰는 것에 관련되면 확률이 높은 듯.

13. 취재가야 되는데 날씨가 더러워서 내키지 않는다.

14. 팔 떨어질 때까지 음식 만드는 지옥도 있으면 좋겠다.

15. 집에서 다른 건 하나도 안 가지고 왔다. 밤만 한 보따리 받아와서 텔레비젼 보면서 스무 개 정도 깠다. 상태가 안좋아서 그냥 먹기는 좀 힘들고 밥에 넣던지 아니면 몽블랑 흉내나 한 번 내 보던지… 명절이라는 것 자체에 심기가 불편해서 송편 두 개 먹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16. 남들이 멋있다고 추켜세워주는 사람을 보면 질투가 막 나는데 정작 왜 멋있어 보이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때도 있다. 허세 떠는 것도 유전인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자식 낳고 싶은 생각 없다. 나 닮았으면 사는 게 뻔할테니까.

17. 무슨 신경을 끊으면 팔다리가 따로따로 움직여서 드럼치는데 좋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18. 탑 셰프 지난 시즌의 끝을 오늘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시즌은 외전으로 디저트편인데, 이게 재미있어 보인다.

19. 소원 같은 거 빌지 않는다. 굳이 빌자면 “모두들 소원 같은 거 빌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게 해주세요.”

20. 이왕 쓰는 거 20번까지 채우려는데 막상 그러려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by bluexmas | 2010/09/23 00:08 | Life | 트랙백 | 덧글(24)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9/23 00:16 

그래서-지금은 지웠지만- 제가 젊은이들 도움되라고 추석연휴에 문여는 음식점,카페들 적고 그러는겁니다;; 추석당일엔 역시 쓸만한 곳은 많이 닫아서…결국 이태원으로 날아갔습니다.비싼것 먹었어요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3

그러게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태원에는 문 연 곳들이 많이 있었겠죠 아무래도 동네 분위기가 그러니까요… 요즘 한강진역 가는 길에 있는 집들을 탐색차 가 보고 있습니다만…

 Commented by 숙성식빵 at 2010/09/23 00:19 

“모두들 소원 같은 거 빌지 않고 잘 살 수 있게 해주세요.”라니, 여태까지 살면서 본 소원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3

네 뭐 소원을 빌어도 잘 안 이루어지잖아요… 소원 비나 안 비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기대 안 하면 실망도 하지 않잖아요.

 Commented by settler at 2010/09/23 01:36 

명절레파토리는 결혼 하면 애 안 낳냐 애 낳으면 공부 잘 하냐 좀 더 크면 쟤들은 결혼 안 시키냐 등 의외로 자가발전하더라구요 우우 지겨워

잔소리하는 어른들이 명절의 주최측이며 수혜자일지도. 그 분들은 명절이 재미있을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3

제가 어떤 분 덧글에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_-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JuNeAxe at 2010/09/23 01:51 

평소 사이가 안좋은 친척이 결혼 관련 질문을 할때마다 그 친척과 관련있는 사람 들먹여 “**같은 남자 만날까봐”라고 대꾸해버렸더니 저거 성질 고약하다고 찍혀서 그후 아무도 그 관련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

설날에 시내 나갔다가 “친구, 전화해. 맥주 마실래?”라고 들이대는 외국인노동자를 만났는데 화를 내자니 인종차별한다고 생각할까봐 웃으면서 피했던 기억이 나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4

아주 훌륭하게 대답하신 것 같은데요? 그런 질문은 누구도 주고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크크…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10/09/23 02:21 

아 그나저나 그 피니시인가 그거… 좀 시큼하다고 해야되나…

취향에 안맞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4

담에 뵈면 그거나 마실까요? 아 근데 언제 뵙죠… 곧 뵙죠 뭐.

 Commented by SF_GIRL at 2010/09/23 06:56 

은덕이라는 말도 있지 싶지만 조상님의.. 할 땐 음덕 아닐까요? ‘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4

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ㅅ'<–이럴 때 꼭 이런 표정을 지어줘야^^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9/23 10:13 

제목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 우리 명절의 진수 ㅠㅠㅠㅠㅠ 구구절절 공감이 되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5

정말 우리 명절의 진수죠 진수… 모두가 진상떠는 우리 명절 좋은 명절 ㅠㅠㅠㅠ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9/23 11:45 

1번 글에 심히 공감.그래서 아직도 미혼인 친구들(남녀 불문하고)에게 시집(장가) 안가냐,빨리가라 oder 최대한 늦게 가라…이런 말은 안합니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그런 말이 별 도움 뿐만 아니라 신경을 긁는 소리라는 걸 잘 알기에.

그래서 약 20년 넘게 명절에는 두문불출하던 시절이 있었어요.다들 무리하면서 명절연휴동안 경부선 길이만큼 이동하는 것도 그닥 좋진 않습니다.조상님,가족님 은덕을 찾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지만 평소때 좀 잘하지-이런 삐딱한 생각을 품고.ㅋㅋㅋ

아아아아…빨리 황금불고기 끝날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제가 극본을 써주고 싶네요.전화 한통이면 끝날 일을…점점 표독스런 뺑덕어멈상이 되어가고 있는 조윤희도 못보겠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6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으면 가만히 있어야죠 그걸 걱정이라고… 그렇죠 평소에 잘 해야죠.

황금불고기 극본 저도 쓰고 싶어요. 그래도 조윤희는 예쁘던데요? 소@진은 나이 서른 하나에 왜 그렇게 망가진걸까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9/24 13:01

미스 소는 너무 젋은 나이부터 판에 박힌 역할을 맡아서 그런가보다-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처럼 드라마,영화를 사랑하시나보죠.끼끼

미스 소의 어깨에 들어간 힘 좀 경락맛사지로 풀어주고 싶어요.

자격증은 없지만.:D

조만간 윤여정의 만행(?)이 드러날 것 같아서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조윤희가 왜 마담 뺑덕처럼 보이나 했더니…약간 치열이 알흠답지 못한 영향인 것 같아요.

입술이…그 치열을 덮기에…(이 웬 잡설…내 외모는 거기의 발에도 못미치면서…)

 Commented at 2010/09/23 14: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7

앗 그러셨군요!! 당연히 기억하구 말구요~ 별 일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꼭 사인 해 드릴게요. 저 그 동네 근처에 자주 간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한강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내일 가야 되나…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9/23 17:36 

닮은 아이가 나오지 않게 솔로 지향이요 흐흐…저도 슬슬 결혼 뽐뿌 들어오는 나이네요ㅜ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7

앗 그렇군요 친척 모임 절대 피하셔야 합니다 ㅠㅠㅠㅠ

 Commented at 2010/09/23 22: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24 00:27

옛날엔 그런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어요. 아버님께서 배려를 해 주네요. 한우 광고에 대해서는 오늘 글 썼습니다…

 Commented by turtle at 2010/09/27 15:50 

뒤늦게 생각났지만 ‘밤밥’ 지어 보시면 어떠세요? 흑미 약간 넣고 찰밥으로 해서 지으면 가을 풍미 물씬 날 것 같아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