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맛과 감자탕, 질보다 양
공중파에서 나오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믿지 않는다. 물론 요리프로그램까지 포함해서다. ‘요리 전문가’라면서 나오는 사람이 ‘튀김은 몇 도에서 튀기시면 돼요’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온도계 같은 걸 기름에 꽂아 보여주는 걸 본 기억은 없다. 다른 악기는 잘 모르겠는데, 기타를 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튜너를 가지고 다니면서 줄을 맞춘다. 그 사람들한테 음감이 없어서 그런가? 예전에 학교 선배는 베이스 세션을 가끔 했는데, 튜너를 안 가지고 세션하러 갔다가 직업 세션맨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이건 다른 이야기고…
아까 저녁 먹으면서 보았던 프로그램에서는 ‘추석에 고향에 돌아가서 먹고 싶은 엄마의 손맛’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 지역의 세 음식이 나왔다. 나는 무슨 된장찌개 백반 같은 걸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부산 어느 동네의 국수와 호박죽을 파는 집. 4천원인데 반찬이 스물 몇 가지고 국수는 부페처럼 양껏 먹고… 그걸 보면서 나도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왠지 그 수십 가지의 반찬 모습에 식욕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국수 몇 그릇 먹는데 그렇게 많은 반찬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그게 뭐인지를 떠나 다 똑같아 보여서 그렇기도 했다. 전주에서 무슨 돌솥밥을 먹었는데 각각 다른 나물을 같은 초고추장 양념으로 무치니 그 맛이 다 똑같았던 기억이 났다. 물론 초고추장 맛이었다.
그래도 거기는 정말 ‘엄마의 손맛’이라는 제목에 그렇게 비껴가는 음식을 낸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두 번째 나온 음식은 성북동 어느 시장의 감자국(그러니까 감자탕이다. 식당에서 이름을 감자국이라고 붙였음). 나도 가끔 돼지뼈 사다가 국물을 내서 감자탕을 끓여먹기는 하는데, 정말 감자탕이라는 음식이 그런, 엄마 느낌의 음식인가? 돼지뼈 국물을 내는 절차 때문에라도 나는, 언제나 감자탕은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게다가 돼지뼈 국물은 소뼈 국물처럼 많은 사람의 입맛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은 간장게장. 뭐 간장게장이야 집에서도 많이들 하지만, 이게 단순히 게에 간장을 붓는다고 되는 음식은 아니다. 그말인즉슨, 모든 엄마가 성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 집에서는 간장게장보다 주인이라는 할머니가 더 ‘엄마의 손맛’ 이라는 제목을 무색하게 만들었는데, 연세가 굉장히 많은 이 주인 할머니는 ‘어머니 같다’면서 오는 손님들의 온갖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인데 시어머니라서 그런지, 또한 꽤 나이 든 며느리가 간장을 달이는 바로 옆에 의자를 놓고 지켜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도 ‘음식은 정’이라는 식의 자기 철학을 되풀이해서 읊는다. 나는 손님에게 쏟을 정은 있으면서, 환갑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 며느리에게 간장 달이는 정도도 믿고 맡길 정은 없어 보이는 그 할머니에게서 무슨 엄마의 손맛 따위를 느낄 것 같지 않았다. 시엄마의 손맛이라면 또 모르겠다. 아, 그리고 홈쇼핑이든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든 제발 좀 게 짜는 화면은 좀 안 보여줬으면 좋겠다. 게에 살이 아무리 많아도, 생물의 특성상 게는 중량대비 살의 비율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보여주는 건가?
뭐 어쨌든,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양식 아니면 ‘파인 다이닝’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외식=양’이라는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 정확하게 선이 그어진 만큼을 먹는 것보다, 설사 배가 부르고 또 부르더라도 더 먹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더 인심 좋게 장사하는 방법이고, 또한 제대로 대접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기있는 음식점이 각종 부페류인 것 아닐까? 요즘은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도 고기 부페집은 그럭저럭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밸리를 들여다보면 ‘시푸드’ 부페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다. 뭐 비싼 호텔의 부페라는 곳에서 내놓은 왕게다리살 이런 것들도 딱히 그 질로 먹을 수 없는 정도라는 인상을 받았으니 그런 시푸드 부페에서 내놓는 건 어떨지 나는 잘 모르겠다(나는 정말 웬만해서는 부페에 가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무의식 속에서는 ‘질보다 양’ 또는 ‘견물생심’의 괴물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질과 양은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참으로 어려운 덕목이다. 그래서 질을 추구한다면 양이, 양을 추구한다면 그 질이 희생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하는 가는 개인의 자유인데, 가끔 그렇기 때문에 큰 그림을 보았을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걸 더 빨리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 by bluexmas | 2010/09/17 00:36 | Taste | 트랙백 | 덧글(16)
비공개 덧글입니다.
보통 방송을 보면 항상 양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죠. 가게의 컨셉을 ‘푸짐하게 주는 가게’로 하는것이 그렇게 보편적으로 먹히는 세상이니.
이번주엔 삼상동의 오라지게 비싼 보쌈, 퍽퍽하고 몇번을 데웠는지 모를만큼 푸석한 보쌈을 비웃을예정인데 우리 팀장님이 맛있다고 극찬한 집이기도 하죠.
국수에서 반찬 많이 나오는 것은 별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