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DENTAL deja vu

어느 치과든 처음 가서 ‘파노라마’를 찍고 의사가 보기까지의 순간을 가장 싫어한다. 그건 치과적인 완전 탈의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들 앞에서 옷을 벗는 셈이다. 응, 난 이렇게 살았어 치과적으로 라고 구석구석 보여주는 셈이다. 문신도 두어 개 있고, 누구랑 싸웠는지 칼자국도 몇 개 있고, 담배빵 정도는 기본이다. 아 뭐 북두칠성도 그려보려고 했는데, 여섯 개째 찍고 나니 요즘 다들 너무 유행이라고 해서 그만 뒀지.

1997년인가 8년에 씌웠던 ‘크라운’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은 또 달랐다. 이건 뭐랄까, 내 안에 있는 반 이상 죽은 나를 끄집어 내어 그 시체를 쿡쿡 찔러 얼마나 더 죽거나 썩었는지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의사는 처음 죽었을 때보다 더 많이 죽지는 않았다고 했다. 솔직히 아주 기쁠만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거기까지 가서 의자에 몸을 눕히고 그 녹색 보를 뒤집어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우니까. 게다가 난 약간의 폐소공포증도 있어서 눈 가리는 걸 싫어한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라서,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만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괜찮다. 그렇지만.

알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간, 10년 전에 부모님이 사시던 동네의 치과 의사는 아주 잘 만났다는 듯 나를 초등학생처럼 야단쳤다. 벼르고 있던 사람에게 ‘제가 이를 강박적으로 닦는데도 이가 썩-‘ 따위의 미끼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이를 긁으면서 두어번 정도 그 말을 되풀이했으니까. 그런 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상태가 안 좋다는 의미였다.

어쨌든,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또 나의 이들은 말도 안 되는 견적의 황금 망토를 짠- 두르고 나에게 간만에 고통다운 고통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앞으로 적어도 한 달 동안 육체와 재정의 고통이 샴쌍동이처럼 나에게 찾아오리라. 물론 난 두 팔 벌려 영접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거 아니라도 요즘 버거운 나날들이라구.

야구팀 두 개랑 풋볼팀 두 개 있는 미국 북동부 도시에 사시는 아무개님 여유 있으면 메일이라도 한 통 주세요. 블로그에 덧글을 못 달게 해 놓으셨으니 안부가 궁금한데 찾아보니 예전에 한 번 보내주신 메일을 찾을 수가 없군요.

 by bluexmas | 2010/09/14 00:08 | Lif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10/09/14 01:49 

아아 저도 어금니 빠진거 채워넣을게 필요한데 큰일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5 00:29

어금니가 빠졌다면 임플란트!!! 고통을 한 번 맛보시는 것도…^^

 Commented by mako at 2010/09/14 09:24 

씨익 웃으시면 윗니 8개가 반짝반짝 보이시길래 건강한 이을 가지셨나보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면이 있으셨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5 00:29

네 뭐 별로 건강하지 못해요. 요즘 생각하기를 저는 그냥 별로 건강하지 못한 것 같네요. 슬프던데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0/09/14 11:50 

병원에 가는 게 싫은 이유는 치료받을 때의 고통보다도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왜 내 돈 내고 호통을 들어야 하는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5 00:30

오늘도 또 혼났어요… ‘선생님한테 채찍으로 맞아가면서 이 닦는 법 배우는 꿈을 꿨다니까요’ 라고…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9/14 16:44 

치과에서 나는 여러가지 불쾌한 소음들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연구도 있다더군요.

치과의사 자체의 평균수명도 높지 않구요.

어떻게 보면 참 복잡미묘한 데다 전문적인 그 스킬도 의사의 솜씨에 따라 세분화된다는 것이 놀랍죠?!

아…스켈링하러 가야 하는데 치과는 넘흐넘흐 싫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5 00:31

수술도 그렇지만 치과 의사도 완전히 다른 레벨의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두 시간 넘게 있다 왔습니다… 이 선생님은 뭔가 완벽주의자 같아서 좀 무서운 구석이 있어요. 그 전에 간 병원이 헐렁했다는 생각이 막 들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꼬마들 충치고민도 만만치 않으시겠어요.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9/15 10:43

뿌핫.

첫째는 이를 잘 닦진 않지만 아직 충치는 없는 것 같고

둘째는 이가 여섯개 났어요.

그래도 미리미리 예방해야 하는거죠?흐흐흐흑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6 14:07

저는 어릴 때부터 치과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요… 이가 그냥 그런가봐요ㅠ ㅠㅠ

 Commented by 아스나기 at 2010/09/16 07:11 

그래서 저는 치과에 갈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지요.

히포크라테스가 훈장질을 하던 시대에는 치과는 없었기 때문에 이녀석들이 이 모양일거라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9/16 14:07

으음 그 시절의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치과 질환을 해결하고 살았을까요? 양치질은 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