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4일차
필요한 프로그램 까는 동안 써 볼까…
세 시까진가 일을 마치고, 자축(?)하는 기분으로 맥주 두 캔을 마신 뒤 잠을 청했으나, 낮에 마신 커피의 카페인과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다섯 신가 랩탑으로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기분 좋게 10:1로 앞서는 것까지 보고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10:12로 뒤쳐지는 대참사가… 잠깐 들었던 잠이 확 달아나고, 더러운 기분으로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열한 시, 강원도에서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패미리마트의 구운계란과 사과 따위로 아침을 때우고 길을 나섰다. 비가 정말 구질구질하게 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날씨에 바다가 있는 관광지 비스무리한 곳을 빠져나가는 기분은 뭐랄까, 모모 민족이 모모 나라를 빠져나가는 기분이 이랬을까 싶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아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휴게소에서 무슨 에너지 드링크 따위를 사 마셨는데, 맛은 직장생활할 때 애용하던 레드불과 거의 똑같았다. 뭐 레드불도 박카스랑 별 다를 바 없지만… 내가 즐겨 마셨던 건 칼로리 없는, 다이어트 레드불이었는데 코스트코에서 사다가 박스로 마셨더니 또 그 당시 나름 스스로를 내 조언자라고 생각하시던 M씨 께서 혼자만 먹는다고 불만을 토로… 그에게도 가끔 하나씩 주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레드불 좀 비싸기는 했다(나도 혜성꼬리처럼 뒤끝 긴 사람이라, 그렇게 조언자랍시고 맨날 뭔가 부족하다는 멘트만 날려 대시다가 회사 잘리자 마자 연락 끊어버린 데는 아직도 굉장히 불편한 심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하니까 좋습디까? 진짜 기분 더럽게 나쁘던데). 레드불을 계속 마시면 몬스터로 넘어간다던데, 나는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회사를 잘려버려서… 기억하기로 몬스터로 넘어간 여자애 하나도 같이 회사 나갔는데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걸 마시니까 형광등이 짜짜짠- 하고 들어오듯 살짝 정신이 돌아서, 가까스로 중간 기착지인 횡계에 도착했다. 횡계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도착해서 그 오거리에 딱 들어가니, 내가 거기에 갔던 기억이 나더라고… 역시 내 발로 안 다닌 동네는 기억을 못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개님이 추천해주신 진태원에서 탕수육을 먹었는데, 탕수육도 그렇지만 옆자리에서 주인집 딸과 아는 사람인 듯한 남자 손님이 나누는 대화의 억양에 계속 귀가 갔다. 날이 좋았더라면 양떼목장이라도 잠깐 들르는 건데 이렇게 비오는 날 양들이 털이 젖을세라 밖에서 풀 뜯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차를 다시 몰았다. 오는 길에는 정말 안개가 자욱해서, 중간중간 비상등을 켜고 달려야만 했다. 산에서 차가운 불이 나 그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불이니까 다행이겠지, 산불이 날 염려도 없고…
거의 다 와서 좀 막히기는 했지만, 비교적 편안하게 수원까지 도착해서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경부 하행이 막힐 시간이니 그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건 휴가가 아니었으니까 중간중간 먹었던 음식들 말고는 별로 할 얘기는 없는데, 그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걸 꼽으라면 1)정동진이라는 마을은 대체 얼마나 망가진 건가: 나는 지금 모래시계나 뭐 커다란 배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마을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그럼 그 동네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 여기까지만. 그리고 2)온갖 병신 같은 지자체 마스코트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웬만한 병신 마스코트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만큼 내성이 생겼는데, 양양 동네 입구의 그 커다란 버섯 마스코트에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게 또 돌아가는 것 같던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자세히 써 보기로 하고… 휴가 아닌 여행의 기록은 여기에서 끝.
# by bluexmas | 2010/08/28 05:44 | Life | 트랙백 | 덧글(14)
비공개 덧글입니다.
저도 오늘 밤 맥주는 참고 잘라구요.ㅋ
버섯 마스코트는…스머프네 집이라고 생각하세요.하하하
그 마스코트 배 가르면 스머프가 줄줄 나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