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요리 4부작(1)-가장 기본적인 안내
분자요리가 대체 뭐냐고? 사실은 그에 대한 설명을 가장 먼저 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몇 달 전 <에스콰이어>에 썼던 분자요리 관련 기사를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몇 년 전, ‘슈밍화’가 떴을 당시 많은 매체에서 분자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닳도록 다뤘다고 해서 그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전제를 하고 그저 빈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우리나라 분자요리의 현실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 기사 이후, 분자요리가 딱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생각보다 많이 들어서 게으름을 이길 무렵이 되면 그 전에 썼던 기사까지 다 묶어 한꺼번에 정리하는 자리를 만들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 게으름을 이길 무렵이 다가온 것 같다(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귀찮다…-_-;;;). 대체 분자요리는 무엇인가?
페란 아드리아, 그랜트 아케츠, 헤스톤 블루멘탈, 엘 불리, 알리니아, 팻 덕… 뭐냐고? 요즘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몇 년 전부터 명인 취급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분자요리’를 하신다는 셰프들과 그 레스토랑이다. 다들 잘 나가시는 분들이기는 하지만, 이 분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분자요리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럼 그 길을 택해보자.
대체 왜, ‘분자’ 요리인가? 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것들 또한 하나하나 들먹이지 않고도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려면, 조리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조리와 짝을 지은 과학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있는, 우리가 딱히 인식을 하지 못하고 덕을 보고 있는 종류의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가스불을 켰을때, 우리는 대체 가스가 무엇으로 이루어졌길래 불이 붙는지, 아니면 왜 불이 붙는지 즉 연소라는 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물이 끓는데, 뭐 섭씨로는 숫자가 딱 떨어지는 100이기 때문에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잠시잠깐 기억하면서 면과 스프를 물에 넣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온도계-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리 없는-을 물에 담가 확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분자요리라는 것은, 그동안 그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과학이라는 것을 앞으로 끌어 당기고 또한 재조명해서 주방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이해에 대한 근거로 삼는 데서 시작 또는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물과 기름은 어떻게 섞일 수 있는가? 고등학교 과학의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유화(emulsion) 현상이 바로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마요네즈가 바로 이 유화의 원리로 만들어진다(식물성 기름+노른자의 물에서 노른자의 레시틴이 유화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만 번 정도 주방에서 계란 노른자와 유채기름으로 즉석 마요네즈를 만들었던 셰프든 쿡이든 누군가 있다고 가정하자. 아마도 그는 그 마요네즈 만드는 법을 주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를 통해 배웠을지도 모르는데, 그 레시피에는 재료의 분량이나 섞은 방법 같은 것들이 나와 있을 수는 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계란 노른자와 유채기름이 섞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9,999번 동안 생각없이 마요네즈를 만들어 오던 그는, 그러한 주방에서의 조리 현상 뒤에 숨어있지도 않지만 숨어있다고 느끼는 과학에 대해 설명한 책(따로 글을 써서 설명 예정)을 읽고 유화제로서의 레시틴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는 만 번째 마요네즈를 만들면서, 계란 노른자에도 레시틴이 있지만 콩에서 뽑은 대두 레시틴이 상용화된 제품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레시틴을 써서 얻어낼 수 있는 유화현상의 응용 가능성에 대해서 확인한다.
뭐 이런 것이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는 ‘분자요리’라는 것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의 이해. 많은 부분, 과학이라는 것이 말도 말이지만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간단한 ‘분자식’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에서의 설명과 이해가 사람들로 하여금 ‘분자’라는 단어를 요리 앞에 붙여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숭상-아니면 남용이든 뭐든-하도록 만든 것이다.
앞으로 쓸 글에서 따로 소개할 몇몇 책들은, 꽤 많은 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지식을 전수받은 셰프들에게 보다 체계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그 영향으로, 전해 내려오던 많은 종류의 주방 지식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임이 밝혀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가 늘 언급하는 ‘고기 겉면을 지져 육즙을 가두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식 만들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공부를 안 하는 거니까.
세월이 흘러흘러, 그렇게 조리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보다 더 보편적인 것이 되니 다른 사람들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음식을 만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람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나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료나 맛에 대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아주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만 할 이해는 뒷전으로 한 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기술들이 사람들에게 보다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왜? 그건 재료나 맛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하니까.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캐비아(둥근 공/구슬 모양의 알갱이로 겉이 굳은 액체)’를 만들려면 액체 A에 물질 B를 중량 또는 부피 대비 얼마만큼 섞어서 또 다른 물질 C를 섞은 액체 D에 떨어뜨리면 된다.’ 라는 식이다. 어차피 잘 나가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으니까 요리책도 많이 내고, 그 책들에는 공식처럼 그러한 조리법들이 나와 있으니 다들 그걸 열심히 보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와 저런 걸 <분자요리>라고 한대.’ 거기에 딱히 그런 쪽으로 인프라스트럭쳐가 넓지 않은 현실의 우리나라다 보니, 적은 수의 사람들이 저런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단지 그런 것들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추켜 세워주기 바쁘다. 마치 도탄에 빠진 국내 다이닝계를 구할 성인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그러나 그러한 일이 거의 절대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1. 기술을 기술만으로 쓴다, 2.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쓴다 라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가장 기본적인 재료나 맛에 대한 이해나, 보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의 음식에 대한 ‘컨셉트’를 세울 능력 또는 시도는 없다. 그러나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다, 적어도 오늘의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것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눈 앞에서 ‘캐비아’ 만드는 법을 시연하면 사람들은 ‘액체에 뭘 섞어서 다른 액체에 떨어뜨리니까 알갱이가 돼’라는 그 사실에 열광하면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바쁘지, 어떤 액체로 만든 무슨 알갱이가 자신이 먹을 음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캐비아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신기해하기 바빠서 그렇겠지? 요는, 그러한 이해 없이 들이대는 젤리며 캐비아며 저온조리 삼겹살이며, 이 모든 건 그냥 전통 조리 방법으로 만든 음식보다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혹시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연재 예고를 좀 하자면,
분자요리 4부작(2)-분자 요리가 뭐길래
분자요리 4부작(3)-아무개 레스토랑 시식기
분자요리 4부작(4)-국내외 관련서적 소개
가 될 것이다.
# by bluexmas | 2010/08/19 10:57 | Taste | 트랙백 | 덧글(23)
분자요리는 요리의 원리를 연구해서 체계화하는 거로군요. 앞으로의 포스팅이 기대됩니다 +_+
허세가 승리하는 세상이잖아요. 분자요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