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과 돼지바의 금요일 밤

타임 스퀘어(이 이름 진짜 싫다-_-;;;)에서 수납함을 바꾸었을 때, 시간은 세 시쯤이었다(알고 보니 나는 이 수납함으로도 중급 정도의 삽질을 한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설명하기 귀찮으므로 다음을 기약하자-_-;;; 아무리 내 블로그라지만 ‘나는 병신!’을 줄창 외치는 것도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설사 진짜 병신이라고 해도…ㅠㅠ). 그대로 곱게 집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소파에 누워서 비비적거리다가 잠들어버리고, 그러다가 일어나 시리얼 그릇을 배에 올려 놓고 주워 먹다가 냉장고를 열어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잠이나 자다가 일어나서 짜증을 낼 게 뻔했기 때문에 어디엔가 가서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 무엇인가는 조금 정확하게 말하면 쓰는 것이 되겠지만, 딱히 특정한 목적까지는 없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목적이 있는 일은 또 때가 오면 다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뭔가 다른 걸 좀 해야 될 필요를 느꼈다. 어차피 방향을 제시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나 혼자라도 방향을 정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장소를 홍대 앞 모처로 옮겨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노트북으로 무엇인가를 했다. 금요일에 강변북로가 얼마나 막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한 번 차를 몰아 거기까지 간 다음에는 일찍 집에 가려고 노력해봐야 소용없었고, 따라서 그냥 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것을 꺼내서 좀 들여다 보다가 차를 멀지만 싼 곳에 쳐박아 놓고 연남동까지 걸어가 순대국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먹고는 배도 꺼질 겸, 지하철로 시청까지 가서 오랜만에 정동길을 걸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돼지바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하드’는 단 한 번도 사 먹어본 적이 없는데, 먹은 게 순대국이라서 그랬을까? 갑자기 돼지바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그럴 때는 편의점보다 50% 할인해서 파는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야 하는데, 눈에 뜨이지 않아서 정동길을 다 돌고 서울 광장 길 건너 삼성화재 건물 뒷골목 들어가는 지점 어딘가쯤에 있는 편의점에 갔을때 사먹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스크림 50%할인’이라고 크게 써 붙여논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왔고, 냉장고에는 다행스럽게도 돼지바가 하나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게 적어도 15년쯤은 된 듯한 돼지바는 역시 번듯한 편의점보다 그런 구멍가게에서 사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질법한 그런 맛이었다. 맛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왠지 지하철까지 들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네다섯입만에 허겁지겁 해치웠다. 그리고 그 맛의 여운은 2호선이 시청역에 다다랐을때쯤엔 벌서 까마득한 기억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는 덥지 않아서, 시립미술관쪽으로 나와서 길을 따라 쭉 걸어 난타 전용 극장까지 걷고, 다시 길을 건너 경희궁의 아침인지 뭔지 하는, 아침 느낌 전혀 나지 않은 오피스텔쪽으로 걷다가 세종문화회관쪽으로 내려와 교보 건물 앞에서 길을 건너 동아일보 건물을 지나 서울 광장을 건너 을지로 입구까지 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으로 돌아와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오늘 술을 꽤 마시고 싶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을 때 마시는 술은 몰라도, 나쁠 때 마시는 술은 독으로 변해 나를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래서 더더욱 마실 수 없었다. 뭐 그냥 그런 거다, 술이 너무 마시고 싶을때 오히려 마시지 않고, 사람이 너무 만나고 싶을때 만나지 않고…  무엇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걸 좀 뜯어보거나 거리를 두고 봐서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건 겉으로는 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거나 부정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술이나 뭐 왁자지껄한 자리 이런 게 아니라.  어쨌든 열 한 시가 넘었는데도 강변북로는 군데군데 막혀 있었고 고속도로는 그럭저럭 달릴 수 있었지만 경계심을 늦츨 수 없을만큼 차가 많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기름 보충을 알리는 등이 들어와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달렸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머리가 주체할 수 없이 엉켜버린다. 다이소에서 사온 500원짜리 도끼빗은 대체 어디로 도망갔나. 그 빗은 사실 엄청나게 뾰족해서 뒷머리를 빗다 보면 목을 찌를 때도 있다. 더 좋은 빗은 어디에서 팔까.

1. 소문을 듣자하니 요즘 탁구가 빵을 좀 만든다던데, 다시 봐 줘야 하나…

2. ‘무지 삽질’은 뭐였나면, 서랍장으로 책상에 붙여놓고 쓸 PP수납장을 깊이가 a인 것 1개, b인 것 2개(참고로 깊이는 0<a<b<c, 세 가지가 있다)를 책상 높이에 맞춰서 사오고서는 b 1개, c 2개를 사온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장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는 다시 고르고 나니,  b 하나만 a로 바꾸면 될 뿐이었는데;;; 나 자신의 멍청함에 대해서 계속 언급하는 것도 지친다. 나의 멍청함을 타박하지 않고 친절하게 처리해 준 무지의 직원에게 감사를.

3.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부상자 명단에 올랐는데, 화이트 삭스의 투수코치 돈 쿠퍼가 팔의 움직임에서 케리 우드나 마크 프라이어를 느낀다며 그가 부상 없이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팀의 투수코치가 다른 팀의 투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투수코치가 돈 쿠퍼라면 상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은근 별 것 없는 것 같은 화이트 삭스가 그래도 매년 그럭저럭 먹고 사는 건 투수코치의 몫도 커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트 삭스의 경우는 팀 차원에서 마이너리그에서 컷 패스트볼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별 빛을 보지 못한 텍사스의 투수 유망주 삼총사 DVD 가운데 화이트 삭스로 트레이드 된 존 댕크스가 잘 나가는 걸 보면, 물론 알링턴 구장을 빠져 나온 덕도 있기는 하겠지만 새로 배운 커터 덕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4. 야구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미국 시간으로 내일이면 트레이드 마감일이다. 아틀란타도 뭔가 좀 보강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지금 전력으로도 90%는 가능한 것 같은데 여름이라 그런지 타격이 또 내리막길이다.

 by bluexmas | 2010/07/31 02:03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7/31 11:10 

갑자기 돼지바 먹고 싶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5:56

뭐 한 두번 먹을만 한 것 같은데요? 여러 번 먹으면 질릴 듯…

 Commented by zizi at 2010/07/31 13:00 

흑, ‘딸기잼 먹여 키운 돼지'(;)가 싫어요.

뾰족한 빗은 위험하군요. 일단은 사포로 문질러서 쓰시다가 좋은 거 발견하면 구입하심이…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5:57

청국장 먹여 키운 돼지랑 어떤 게 더 싫으신지…(…)… 빗이 너무 뾰족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Commented at 2010/07/31 19: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5:57

그 그렇죠… 그래서 아예 안 마셔볼려고 노력합니다. 입이 헐어서 술이 별 맛 없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딸기 돼지바는 좀 엽기스럽습니다…

 Commented at 2010/08/01 02: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5:58

아, 길 건너라고 하시면 광화문쪽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그 동네도 좋아는 하는데 사는 건 또 다른 느낌이겠지요… 뭐 기회 닿으면 그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