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급식 및 취사에 관한 기억(1)-부식 보급
(사진을 곁들이고 싶은데 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거라서…)
어떤 계기로 군대 급식이나 취사에 관한 글들이 올라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글들을 읽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취사병은 아니고, 취사병들에게 재료를 공급하는 1종 군수계원이었다. 사실 일반 대대의 군수계원이라면 아무래도 물자를 관리하니까 힘이 좀 있는 편이겠지만, 소속부대가 사단에 그러한 군수품을 보급하는 대대(보급 및 수송대, 뭐 줄여서 보수대라고 하는 사단 직할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황이 좀 다르기는 했다. 솔직히 나는 별 힘도 없었고, 약간의 잉여 인력취급을 받아서 사수도 취사병 출신이었으며, 나중에 받은 부사수 역시 취사병이 되었다. 결국 그 일을 취사병과 겸임하지 않고 했던 건 내가 유일했던 듯. 이게 정확한 군대식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공급부대를 ‘시설부대’, 피공급부대를 ‘편성부대’라고 분류할 때 나는 시설부대의 편성계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보직이 왔다갔다 하던 시절을 빼놓고 지냈던 20개월 동안의 경험담을 기억나는대로 더듬어보자면…
매일 아침마다 부대로 트럭들이 들어온다. 당연히 공급자들의 트럭이 먼저 들어오는데 어류와 육류는 군납으로 냉동 가공되어 상자에 들어있는 것들이었고, 야채류는 민간인 업자들인데 원칙적으로는 입찰을 통해서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부는 근처의 군용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는데, 아침마다 대대에서 트럭을 끌고 수령하러 나가곤 했는데 겨울이면 그 공장에서 콩나물도 나왔다. 소속 사단과 그 근처의 기생부대(?) 들이 먹는 두부의 양이 군대의 표준 트럭인 2.5톤 짜리라고 하나 정도 되었었다. 이렇게 물건들이 들어오면 시설 1종 계원(일명 창고병), 즉 사단에 물건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하역을 하고, 그게 끝나면 각 부대의 부식 수령차가 들어온다. 각 부대에 나가는 부식의 양은, 국방부나 군수사령부 같은 곳에서 정하는 표준량에 인원수를 곱하는 단순 산수라고도 할 수 있으나 아무래도 부식의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그 전체를 계산하는 건 좀 삽질에 가까운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건 시설 1종 계원들 가운데 행정병의 몫이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야근을 해서 기나긴 불출 목록을 작성한다. 이를테면 그날 저녁 반찬이 가자미 조림이라면 각 부대별로 할당량이 기록된 목록이 나오는 것이고 그걸 창고병들이 각자의 담당 항목별로 나눠서 각 부대에 내보내는 것이다. 보통 계급에 적당한 차이를 두고 다섯 명 정도가 부식 불출을 담당했는데 처음에는 쉽게 나눌 수 있는 두부나 콩나물, 우유 같은 것들로 시작해서, 계급이 올라갈 수록 쪼개서 나눠줘야 하는 고기나 생선 종류를 맡는다(이건 단위 포장이 10kg으로 되어 있어 그때만 해도 도끼로 쪼개서 나눠줘야만 했다). 이러한 부식량 산출의 근간이 되는 식단 관할 군수지원단 산하부대인 급양대에서 ‘영양’을 고려해서 짠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의 군무원들이 많은 영향을 미칠 듯.
이렇게 기본적으로 나가는 부식들 외에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니’의 코코넛 도넛과 같은 빵이나 기타 간식 종류가 있었는데, 이건 남들과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수당을 받는 병력을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정비병에게 나오는 정비 수당이나 뭐 폭발물이나 위험물 같은 것들을 다루는 병력에게는 기본 부식비 외의 예산이 지급되는데, 이게 빵과 같은 형태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IMF를 겪고 난 다음에는 굉장히 많이 삭감되어 심지어 그 물건들을 다루는 나나 시설 계원들조차도 빵 구경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때는 우유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었던, 참으로 암담했던 기간이었다.
아무래도 음식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가 많다보니, 종종 빼먹고 재료를 수령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로 인해 큰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은 늘 있었다. 예를 들어 수백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어느 날 저녁이 가자미조림이었는데, 계원이 정신이 없어 가자미를 빼놓고 수령한다면 그 부대의 저녁상에는 생선이 안 올라가고, 그 대가로 계원은 영창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 부대로 물건을 내보내는 계원들은 중간중간 재고 점검을 하면서 물량을 맞추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빼먹고 수령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한들, 재수령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본적으로 그날 들어온 물건은 보급대에도 저장할 공간이 없으므로 다 내보내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물론 양념류는 어느 정도 장기 보관이 가능하므로 대대의 창고에 보관하면서 일정기간에 한 번씩 모든 부대에게 불출한다). 심지어는 시설부대의 편성계원이었던 나 같은 경우도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느 날 가자미조림이 저녁 반찬이었고 수령량이 15킬로그램, 즉 한 상자 반이었는데 딴 생각을 하다가 반 상자만 가져왔던 것. 무를 아무리 많이 넣고 조린다고 해도 10킬로그램의 차이는 메울 수 없는 터라 영창가야 되나 싶었는데, 바로 옆의 공병대 계원에게 SOS를 쳐서 5킬로그램을 얻어다가 무를 평소보다 더 많이 넣고 조려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생선조림류는 병사들이 가장 안 먹는 음식이어서 끝까지 줄지 않는다는 점도 영창행을 막는데 한 몫 거들었다.
오차를 줄이기 위해 각 부대의 편성 1종 계원들은 취사병들에게 매일 부대 인원 현황을 파악해서 쌀이나 보리와 같은 주요 품목의 소비량을 알려줘야할 의무가 있다. 항상 적정한 인원이 휴가 등으로 부대에 없기 때문에 이 인원은 비슷한데, 절차상의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에 이 목록을 매일 작성해서 취사장에 붙여주어야만 한다. 간혹 부대원들이 업무 때문에 다른 부대를 방문해서 밥을 먹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때는 일종의 식권과 같은 ‘지급정지’를 끊어줘야 하는 것도 1종 계원의 업무이다. 지급정지란 말 그대로, 어느 시간동안 어떤 병력의 부식 지급을 정지하고 다른 부대에 이관한다는 증명이고, 이걸로 이를테면 파견을 나간다든지 할때 머무르게 되는 부대에서 자신들이 먹여 살려할 인원으로 추가하는데 증빙자료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원소속 부대에서는 그만큼 그 병력은 빼고 소비량을 집계해야만 한다.
요즘은 당연히 군수품목을 전산으로 관리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1종 품목들은 전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말년에 무슨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메뉴가 데이타베이스에 들어있고, 인원을 쳐 넣으면 그에 맞춰 소비량이 자동으로 계산되고 장부정리가 되는 뭐 그런 시스템이 있으니 그걸 쓰라고 했지만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를테면 튀김을 위한 기름 같은 경우는 사람 수대로 계산한 양으로 기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만큼을 반드시 솥에 넣어 두어야 튀김이라는 음식 자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령에서 더 이상 진급이 안 되어 보이는 고지식한 대대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압력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버텼고, 결국 대대장이 먼저 부대를 떠나서 전산시스템에 발을 담그는 불상사 없이 제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만 해도 각 부식의 재고를 손으로 쓰는 장부로 관리했는데, 다른 품목은 몰라도 쌀이나 보리 같은 경우는 국방부에서 정한 일일 소비량대로 다 먹기가 힘들었다(잘 기억나지 않는데 끼니당 300그램 정도였나?). 그래서 일정기간마다 한 번씩 재고를 파악해서, 실제 소비와 표준량에 의한 이론적인 소비의 차이를 다시 장부에 일종의 수입처럼 기입해 재고로 포함시켰는데, 그걸 ‘소비절약’이라고 불렀다. 물론 먹는 양이 불규칙하므로 소비절약은… 장부상에서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했다. (여기에서 오늘의 돌발퀴즈!)뭐 이를테면 보급대대장 대대장이 불교신잔데 초파일에 사단 절에서 떡을 해서 병사들에게 돌렸다고 한다면 그 쌀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보급 이야기만 했는데도 글이 긴 것 같아서, 취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눠서 담아야 될 것 같다.
# by bluexmas | 2010/07/16 18:57 | Taste | 트랙백 | 덧글(15)
군대밥이라고 해봤자 꼴랑 20일 먹었지만 그래도 그 밥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볼만 한 곳이었던거같습니다.
다음을 기대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