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잡담

1. 카메라. 계속 카메라가 걸렸다.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평소의 1/2배속으로 밖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나왔는데 언제나 습관적으로 챙겨 나오는 카메라가 가방에 없길래 어디에서 떨궜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정신이 너무 없다.

2. 어제의 동선은 남부터미널-서울역-연남동-홍대앞-고속터미널-예술의 전당-가로수길-압구정동(을지병원 뒷쪽 평양냉면)-강남교보-집 이었다. 부산에서 귀한 손님이 오셔서 거의 처음 토요일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토요일에는 기차도 별로 없고 해서 궁여지책 끝에 수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올라가서 거기에서 기차로 서울까지 올라가는 동선을 생각해냈으나 아침에도 살 수 있겠지 생각하고 놓아둔 기차 좌석은 매진이었다. 수원에서 삐대면 입석도 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도 없다면 약속에 너무 늦게 될 것 같았다. 그냥 전철을 타고 쭉 올라가면 될 것을, 한 시간 이상 전철을 타는데 알 수 없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남부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충무로에서 한 번만 갈아타도 되는데 두 번이나 갈아타는 건 내 식의 병신같은 삽질. 그래봐야 5분 절약할까말까한데 나는 이 버릇을 대체 버리지 못한다.

3. 사람이 없는 거리를 잠시 걷고 싶었으나 금방 버스가 왔고 나머지 길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4. 요즘 같은 날씨에는 걷다 보면 멈추지 않고 걷는데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땀이 너무 많이 난다.

5. 어제는 처음으로 가로수길의 ‘커피스미스’에 가봤다. 늘 지나가기만 했지 거기 앉아서 사람 구경은 처음… 그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줄은 몰랐다. 다들 ‘간지’가 장난 아니어서 그런 장소에 가면 움츠러드는 내 자신을 발견…?

6. 결국 저렇게 돌아다니고 너무 피곤해서 오자마자 뻗어, 월드컵 3-4위전은 보지 못했다.

7. 내일까지 잡지 마감…(…)…

8. 며칠 전, 타임 스퀘어에서 주차비 안 내려고 딱히 내키지 않는 샤도네이를 사왔는데, 누워서 마시다가 잠이나 자면 좋겠다.

9. 나는 계속 ‘피노 그리지오나 소비뇽 블랑 같은 걸로 없어요?’라고 물어보았는데 뭘 물어보나 들이미는 건 샤도네이였다. 백화점 포도주 매장의 직원들이 쓰는 ‘바디감’,’산도감’과 같은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외국말을 쓸거면 차라리 ‘풀 바디, 미디엄 바디’와 같은 말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산도감이면 그냥 시다고 해도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시다는 게 그렇게 신 걸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 여자들 화장품 선전 문구에 나오는 ‘발림성’과 같은 말들도 멋지다. 잘 발리는 것도 아니고 ‘발림성’이 좋다고 한다.

10. 무엇을 얼마만큼 바래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 기준에는 못 미친다.

11. 가로수길에 페이스샵인가가 들어선 것을 보았다. 전면부 디자인을 교묘하게 무슨 부티크처럼 했지만 뭐 별 차이는 없었다. 빈스빈스 매장도 어느 건물 2층에 자리잡는다고 한창 공사중… 인사동은 간판만 한글로 그럴듯하게, 그러나 꼴보기 싫기는 마찬가지인 화장품 매장들로 인해 보기 싫어졌다(그런 걸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는 거겠지). 결국 모든 것은 똑같아진다. 지역이나 장소성 같은 건 이제 없어진다. 우리 모두는 기시감이나 그로 인해 생기는 익숙함을 원한다. 낯선 장소에 대한 설레임 같은 건 이제 없다. 어디를 가나 적어도 한 두 개 정도는 익숙한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걸 싫어하는 나도 어딘가 가면 그저 싼 값에 공간을 빌리려고 싫어하는 장소에서 맛도 없는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있게 된다.

12. 커피를 입에 담고 나니 커피 한 잔 내려 마셔야 되겠다… 설겆이도 쌓여있고 집은 난장판이고 내일까지 해야 될 일도 있고, 내일 저녁에도… 물론 바빠야 사는 것 같기는 하다.

 by bluexmas | 2010/07/11 12:58 | Lif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absentia at 2010/07/11 14:47 

바빠야 사는 것 같기는 하다, 에 한표. 아우, 그런데 꼭 그렇게 늘 바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왜 이렇게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 저는 쇼비뇽 블랑을 한잔. 🙂 참, 책 ‘출산’하신 것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cleo at 2010/07/11 17:17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유쾌하고 즐거운 서울나들이였어요.^^

부산에 내려오시면, 제가 모실께요.

해운대를 중심으로 반경 30km 안, 그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친구분들과의 만남은 ‘신세계 스타벅스’에서 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 신세계5층에 교보문고도 있고,

–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스타벅스는 너무 정신없고 산만할 듯-.-

– 찾아오기도 더 쉬울 것 같아요.

스케줄 잡히면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SF_GIRL at 2010/07/11 21:18 

힉 저도 자주는 아니지만 집에 놓고왔나 하는 강력한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하루 바쁘셨군요!

서울의 타임스퀘어는 Time Square일까요 Times Square일까요. Times 건물이 있으니까 타임스퀘어인데 서울엔 왜? 그리고 도쿄에도 미드타운이 있대서 아니 길쭉한 지형이 아닌 고구마모양 도쿄에서 왜? 하고 그냥 혼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어요.

 Commented at 2010/07/11 21: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7/11 21:53 

7번이 짧지만 강력하네요

잠시 얼굴 비추는 것일 뿐인데 히키코모리라 두근두근하네요 와우와우

 Commented by 꿀우유 at 2010/07/11 22:39 

그 집 커피를 먹어본건 아닌데 암만 맛있다고 해도 무슨 인력시장도 아니고 발들이기조차 꺼려지더라구요 ㄷㄷ 와인 살 땐 뭣도 모르니까 드라이하든 달든 맛있는 걸로 달라고 하고 뭐든 잘 마셔버리죠 ㅎㅎ

 Commented at 2010/07/11 23: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quamata at 2010/07/11 23:46 

마감 응원! 합니다.

 Commented by  at 2010/07/12 03:41 

전 이상하게 ‘집은 난장판이고…’에 꽂혀서

몇 번을 소리내서 읽었네요

우리집도 난장판이라 그런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