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뭐길래
업으로 글을 쓴다. 그러나 밖에 나가 나를 소개할 일이 생겼을 때 ‘작가’라는 명칭을 써 본 적은 없다. 조금 길지만 ‘글을 쓴다’ 라고 말하거나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싶으면 프리랜서라고 말을 하지만, 그것도 너무 허울 좋고 반짝거리는 게 내 현실하고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냥 ‘자영업자’라고 둘러대고 만다. 누군가는 결국 그게 그거일텐데, 굳이 그렇게 의식적으로 ‘작가’라는 명칭 쓰기를 피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게 딱히 이성 또는 논리적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 그냥 ‘글을 쓰는 사람’과 ‘작가’의 사이에는 지구와 달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제주도까지의, 그러니까 편하게 차를 타고 한 번에 달려 갈 수 있는 것보다는 조금 번거운 감정 또는 인식의 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리고 그건, 내가 스스로의 업에 대해서 떳떳하게 내세울만한 건덕지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럼 나는, 이 소심한 인간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1. 생계의 문제: 어찌 되었든 벌이를 하고는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이 충분한 것의 기준이 사람들마다 다를테니 좀 모호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이걸 계속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정기적으로 돈을 받는 일자리를 알아봐야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 글을 쓰는 나의 현실이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부분이 해결되었음을 전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2. 경력의 일천함: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일을 한 기간만 따져보자면. 잡지에 글을 쓰고 번역서를 한 권 냈으며 또 다른 책의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게 전부다. 계속해서 쓰고는 있지만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자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이 없으며(물론 충전은 계속해서 하지만), 아직도 스스로의 생산과정에 대한 노하우나 시스템을 확립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자면 쓰기는 쓰지만 그 쓰는 과정이나 방법(일하는 시간대나 길이의 문제 등등. 제대로 된 작가라면 회사에 다니는 사람처럼 정해놓은 시간에 물리적으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직업이니까)등의 틀이 완전하게 잡혀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열 두 시간도 일하고, 또 10분도 안 하기도 한다. 새벽에 잘 수도 있고, 또 그때 일어나서 쓸 수도 있다. 한마디도 두서도 대중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나는 내가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3. 등단의 문제: 이건 예민한 문제도 될 수 있고 또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지만… 굳이 글쓰기라는 직업마저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결과물에 상관없이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이다.
4. 열린 작업에 대한 두려움: 블로그에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그 전까지 나는 건축을 공부하고 관련업종에서 일을 했다. 건축일에도 끝이라는 게 없다. 마감은 그 순간에 최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한 시간적 제약이지, 완벽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글도 마찬가지거나 아니면 더하다. 완벽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게 내놓을 수 있는 상태인지 없는 상태인지는 거의 대부분 쓴 사람만이 안다. 물론 편집자가 아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편집자는 모르나 쓴 사람은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별 탈 없이 넘어가도 비밀이라도 끌어안고 살듯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열린 작업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그 속성 때문에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어 사람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쉴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생각한다. 자려는 데 생각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내가 좋아서 하지만 가끔은 꽤 고통스럽다. 정말 자기 자신을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러한 특성을 인식하고 그 두려움을 견뎌낼 수 있거나, 아니면 그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 그 두려움을 더 좋은 글쓰기를 위한 생산적인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물론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고,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쓰기는 쓰지만 두려움을 두려움으로만 인식하고 벌벌 떨거나, 아니면 견뎌내지 못하고 포기할 수 가능성이 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5. 선택의 문제: 왜 굳이 이 길을 가고 싶어하는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까지는 언감생심이고, 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글을 쓰는 일이 남에게 내세울만한 구석이 있거나, 소위 말해서 ‘좀 있어 보이는’, 말하자면 허세를 떨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작가에요”라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니면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적어도 내가 생각한 것만큼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것이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은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안에서밖에 머무를 수 없는 것들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건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두려워서 보여줄 수 없거나, 또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최선을 다해 열심히 쓰는 것으로 대신 설명할 수 있는 것이거나…
사실 며칠 동안 굉장히 심기가 불편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존재를 안지는 꽤 되었고 그 다음부터 쭉 심기가 불편했다. 죄 없는 자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셨다고, 나도 허물 많은 인간인지라 남의 허물을 들추기도 내키지 않았으니 하물며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의 진정성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가 부러웠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의 자신감이, 그리고 그가 처한 여건이 부러웠다. 나이가 몇 살인지 단수인지 복수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그가 글을 통해 밝혔듯이 모호하므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작가’ 라고 그렇게 떳떳하게 칭하는 상황이라면, 그는 적어도 내가 위에서 늘어놓은 조건들을 만족하는 진짜 작가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물론 롤랑 바르트를 글에 언급할 수 있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나도 언젠가 그의 책을 읽었던 기억은 나지만 글에 언급할 수 있을만큼 소화를 하지 못했고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한다T_T). 물론 전혀 그렇지 않고 그저 한 마리의 어린 양과 같이 철 없는 학생이나 뭐 그에 버금가는 어떤 존재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가 저렇게 핍박을 받아 가면서까지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마저 부럽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 대해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싶다. 비록 “갈기갈기 찢기”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 굴하지 않고 글을 꾸준히 써 올려서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었으면 좋겠다. 뭐 예술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예전 만큼 못하다는 주장도 있고 나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진정한 예술은 핍박 속에서 꽃을 피운다. 아마 그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길을 부러 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현재에 대한 찬사와 갈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꽃다발처럼 한데 엮어 보낼테니 그 꽃일랑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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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luexmas | 2010/06/27 18:35 | —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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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디선가 페리스 힐튼의 경력에 writer라고 써 있는것을 보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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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셨으니 축하드리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직업’과 결부되는 일이라면,
성취기준도 높아질 것이고…스스로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말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번에 출간될 책은 번역서가 아닌 직접 쓰신 ‘에세이’라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적어도 일 년에 한 권씩은 출간하실꺼죠??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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