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팝콘을 자작하다
거듭 말하듯이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8년 만에 보는 월드컵인데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있던 런던 프라이드에 짝을 맞춰줄 안주거리를 사러 산책 겸 밤에 마트에 갔다. ‘맥주+닭날개’라는, 사실은 축구는 축구지만 미식축구에 어울리는 짝맞춤을 생각했으나 귀찮아서 건너뛰고 옥수수 알갱이를 샀다. 직접 팝콘을 튀겨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살았던 5층 짜리 주공아파트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었는데, 거기에 냄비를 올려서 아버지께서 가끔 만들어주셨던 팝콘 생각이 났다. 언젠가부터 먹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팝콘에는 빼놓을 수 없던, 녹색 무늬의 기름종이에 싸인 오뚜기 덩어리 마가린을 녹여 알갱이를 한 움큼 넣고 타이밍을 적절하게 맞춰 뚜껑을 덮고 냄비를 흔든다. 뚜껑을 덮어 놓으면 냄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팝콘을 튀기는 건 순전히 감에 의존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일찍 불에서 내리면 덜 튀긴 알갱이들이 많이 남고, 늦게 내리면 타버린다. 어디에서 어떤 동기로 팝콘을 처음 튀기셨는지에 대해 들은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는 팝콘을 꽤 잘 튀기셨던 걸로 기억한다. 안 튀겨진 알갱이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아파트에 가스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팝콘을 오히려 더 적게 튀겨 먹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은박지 프라이팬에 미리 포장된 것을 거쳐 전자 레인지 팝콘이 대세를 장악했으나 단 한 번도 전자레인지 팝콘에게 사랑을 주었던 적은 없다. 뭐랄까, 그 때 팝콘에 대한 추억이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어 전자레인지 팝콘 따위에게는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먹을 수 있는 과자도 많았으니 굳이 팝콘까지 먹게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회사에 다닐 때는 주로 인테리어 디자인 쪽의 여직원들이 팝콘을 하루가 멀다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댔는데, 버터 대신 버터향을 첨가한 팝콘의 냄새는 자연환기가 되지 않는 사무실에서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조금만 타이밍을 놓쳐 더 돌렸다간 그 버터향 팝콘 타는 냄새가 한데 어울려 짜증나도록 느끼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팝콘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몇몇은 “Oh popcorn, not again!”과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추억에 젖어 팝콘을 직접 튀겨봤는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적어도 1/4정도가 안 튀겨진 것 같고, 버터를 너무 많이 넣었는지 좀 쩐 느낌이 났으며, 버터를 녹이면서 직접 소금간을 했는데 너무 많이 했는지 좀 짰다. 결국 내 팝콘 튀기는 솜씨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반 정도 먹다가 남겼다. 남은 팝콘을 해치울 수 있는 방법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카라멜을 입혀서 ‘크래커 잭’을 만드는 것.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라고, 야구장에 가면 7회인가 부르는 노래에 등장하는 바로 그 크래커 잭은 별 게 아니라, 그저 카라멜을 입힌 팝콘에 땅콩을 곁들인 것이다(처음 미국에 가자마자 찾아서 먹었던 과자가 바로 크래커잭이었다. 911테러 다음이었나, 여러나라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나왔던 CF에서 돌아가며 각 나라 말로 불렀던 노래가 바로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었고 바로 박찬호가 ‘땅콩과 크래커 잭 주세요’라고 그 부분을 우리말로 불렀다. 거의 낭송에 가까운 수준이었지-_-;;). 그나마도 양키 스타디움에서는 안 팔게 되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마쉬멜로우를 녹여 팝콘에 엠엔엠 초콜릿을 조금 섞은데 부어서 굳혀 우리나라 튀밥과자 같은 걸 만드는 것인데, 이건 아마 마쉬멜로우를 설탕+물엿 정도로 대체하면 될 듯? 이것도 결국은 카라멜이 되는 건가…?
# by bluexmas | 2010/06/23 10:08 | Taste | 트랙백 | 덧글(8)
박찬호 선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니. 으핫.
걔들은 팝콘을 사다가 버터를 주르륵 받아서 절여먹더라구여… 블루마스님은 그곳식 팝콘을 만드신듯함;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