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상으로 만든 음식점(2)-홍대앞 피자집

이 글에는 사진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가보지 않은 음식점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대체 가보지도 않은 음식점이 어떻게 사람을 진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나도 몰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럴 수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그 피자집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좀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어서 행동에 옮긴다.

요즘 계속해서 홍대앞에 새로 생겼다는 피자집의 홈페이지가 리퍼럴로 찍혔다. 나도 어디에서 주워들은 바는 있어서, 한번쯤 가 보려고 마음은 먹고 있던 곳이었고, 지지난주엔가는 정말 거의 갈 뻔 했다가 마지막에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 그런 집이었다. 가지도 않았으니 그에 대한 글도 쓴 적이 없는 피자집이 리퍼럴로 찍힌다는 걸 나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어제, 임시 저장된 글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트랙백 현황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예전에 이태원의 피자집에 간 다음 올린 글에 바로 그 피자집이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그것도 같은 글을 두 개나 트랙백해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날짜는 5월 4일. 그러니까 무려 20일도 넘는 동안 조금 과장을 보태 내가 쓴, 그것도 그 집과는 상관도 없는 글이 단지 피자를 주제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간접 광고에 쓰인 셈이었다(물론 트랙백은 지웠다). 보통 트랙백이 되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이글루스의 트랙백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랐다는 점도 웃겼지만. 이런 식으로 블로그 주인에게 알리지도 않고 힘들게 써 놓은 글, 즉 지적 재산을 대가도 없이 광고에 쓰고(물론 광고나 대가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무슨 비아그라 광고하듯 막무가내로 트랙백을 걸어 홍보하는 건 좀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가게로 전화를 걸어 따졌다. 음식이나 음식점에 관한 글을 쓰기는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내 글이 사람들을 그 음식점에 가거나 가지 않게 만드는 상황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거기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내 글이 그런 생각으로 쓰이는 것들인데, 단 한 명이 그 링크를 통해 갔을지라도 그런 생각으로 쓰인 글이 어딘가의 광고에 무단으로 쓰인다는 점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가게 주인인 듯 보이는 여자분과 나눈 대화를 여기에 하나하나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나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1. 트랙백이 광고를 목적으로 있는 기능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트랙백을 걸어놓고 주인에게 알리지도 않은 건 중국집에서 전화번호가 찍힌 스티커를 문에다가 몰래 붙이고 가는 것과 비슷한 경우 아니냐(물론 트랙백의 경우에는 바로 지울 수는 있다는 점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거기에 여자분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쓸 수 있는 홍보 방법이라서 우리도 여러 가지 홍보 방법 가운데 하나로 그걸 택한 것이다’라고 대답했고, 나는 거기에 2. 남과는 다른 피자를 선보인다면서 홍보 방법은 아무나 쓰는 방법을 쓴다는 건 모순이 아닌가?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여자분은 그렇게 기분 나빠할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니 미안하고, 남들과 다른 피자를 만들려고 하는 것과 남들 다 쓰는 홍보 방법을 쓰는 것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 번 꼭 가보겠다고 생각한지가 오래인데 바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에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관련 업종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할때면, 언제나 화제는 결국 한 가지로 압축이 된다. 과연 제대로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넘쳐나는 블로그와 맛집 타령과 말도 안되는 음식의 범람 속에서 타협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도 가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냐고… 자신들이 정말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또 그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알리고 싶다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 제대로 피자라는 것이 단지 피자 그 자체만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감히 생각 좀 해 보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념이 없으면 피자도 별로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확인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하다.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아마 나는 이번 주 내로 피자를 먹으러 그 집에 내 발로 찾아갔을 것이다. 그 피자집이 이런 식으로 잃은 잠재적인 손님이 나 하나 뿐이기만을 바란다.

UPDATE:  조금 전에 피자가게로부터 메일을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음식점 측에서 트랙백을 건 글은 내 글 하나 빼놓고 모두 자신들의 음식점을 언급한 것이었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 글에 굳이 트랙백을 건 이유는 그 글이 피자에 대해 실망한 것이기 때문에 트랙백을 통해 내가 자신들의 음식점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렇게 실망한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는 것이다. 이 메일의 내용이 어제 내가 들었던 것과 같고 다르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내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아도 트랙백의 특성-이제 밝힌 것처럼 내 글만이 자신들의 가게와 상관없는 것이라는-때문에 어제 이미 내가 어떤 블로그의 주인인지 곧 알아차리는 눈치였다), 나는 피자 자체에 대해 실망한 적도 없고 실망해야 할 이유도 없으며 그거에 대해서 왜 피자가게 측에서 나에게 정보를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취지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건 오지랖 넓은 거 아닌가? 또한 어제 듣지 못한 이야기기는 한데, 트랙백을 며칠 지나지 않아 취소했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내 블로그에 트랙백이 계속 걸려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상황은 상황대로 전달해야 될 것 같아서 업데이트. 내 스타일도 아니고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메일 전문을 올리지는 않겠다. 같은 이유로 밸리에서 내리거나, 글을 비공개로 돌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둔다. 내가 오해를 한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에 대한 의견 교환은 당연히 여기에 올릴 것은 아니고, 시간 나는 대로 가게측에 답메일을 보내서 할 생각이다.

 by bluexmas | 2010/05/26 10:29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큐팁 at 2010/05/26 11:20 

글의 무단 도용이야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서도

마지막 문단은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도용으로 인한 불쾌감이 다른 쪽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듯 해서요..

우울성탄절님이 느낀 불쾌함은 사실 블로거가 아닌 손님으로 그곳을

방문할 사람은 별로 경험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오스칼 at 2010/05/26 12:03

음..;; 고민하다가 댓글 답니다.; (난 소심하니까요.)

‘우리 가게 홍보를 위해서 이런거 하는게 어때서? 남의 글 좀 이용하는게 어때서?’ 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재료비 좀 아끼는게 어때서?’ ‘위생상태 좀 안 좋으면 어때서? 맛만 있으면 됐지.’ 라는 마인드로 뻗어나갈수도 있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26 12:11

저 대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이 글에 트랙백을 걸어서 무단 도용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가지를 뻗어나가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저는 이 가게에 가보기도 전에 기대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실망도 느꼈겠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100%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지키라는 건 숨막히게 하는 요구고 인간으로서 따르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자기들이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점이라면 굳이 다른 사람들 다 하는 홍보 방법을 강박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 블로그와 관련된 요즘 홍보 방식들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트랙백을 막무가내로 거는 홍보방식은 정말 시알리스나 비아그라 스팸이 아닌이상, 저는 처음 봅니다. 만약 그런 광고였다면 그냥 지우고 말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냥 어딘가 알 수 없는 쇼핑몰 광고였다면 지우고 말지, 굳이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죠. 그것 역시 관심이 있고, 기대를 했고, 그래서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큐팁 at 2010/05/26 12:41

트랙백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이 누구나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글을 그대로 ‘보이게’ 옮겨다 놓은 것이 아니라

트랙백을 걸은 것은..제 생각에는 정말 순진해서 그랬다..라는 느낌이거든요.

저는 오히려 오스칼님이 예로 들어주신 내용은

조금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네요.

음식점에 대해 재료비를 필요없이 아끼고 위생상태를 소홀히 하는 곳으로

선입견을 가져버리는 것은 음식점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분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26 12:52

트랙백에 대한 개념이 누구나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저의 블로그이고, 그렇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트랙백에 대한 개념이 가장 먼저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글을 가져가는 것과 트랙백을 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 아닌지요. 저는 아직도 왜, 그 집과 상관없는 제 다른 글에 트랙백을 걸어서 홍보하려고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게 순진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제가 어디까지 그러한 점에 대해서 헤아려 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제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려고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오스칼님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데, 그걸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생각하시는 바가 다른데 굳이 납득시키시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말씀하시려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으니까요.

 Commented by 큐팁 at 2010/05/26 13:18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충분히 이해했으나 동감하지 않기에

댓글을 썼을 따름입니다. 남을 납득시키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26 13:24

네, 잘 알겠습니다. 덕분에 이 문제에 대해 저 자신을 돌아볼 기회는 한 번 가질 수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JuNeAxe at 2010/05/26 18:30 

트랙백해서 쓴 글에서 트랙백한 원글과 링크를 없앴어도, 원글에 트랙백은 원글 쓴 사람이 트랙백을 지울때까지는 남아있었다고 기억해요. 트랙백해서 써놓고 나중에 트랙백을 취소하면 자기가 쓴 것에는 트랙백이 안남아있고 원글에는 여전히 트랙백한 글이 보이게 되더라고요.

지들이야 지웠다쳐도 원글에는 남아있는데 그건 보기만 해도 보이는걸 일단 돈을 받고 파는 입장이면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일텐데, 프로가 ‘순진해서 그랬다’고 봐주기에는 곤란하지 싶네요.

이런 일 생기면 잃는 손님만큼 어떻길래 그러나 싶어 가보는 손님도 있을테니 가게 입장에서야 뭐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