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터미널]에디스 카페-스타셰프와 섬세하지 못했던 신맛
지난 주에 신세계 강남점의 ‘에디스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솔직히 모순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프랜차이즈 매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유명한 셰프들이 프랜차이즈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반감이 없다. 아마도 그 프랜차이즈화가 기업형이 되면 그때는 싫어하게 되겠지?
사실, 아주 잘 나가는 셰프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해서 엄청나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concept와 execution면에서 그 스타셰프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관리를 하고 있는지, 그 정도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하에 있는지도 모르고 꼭대기 식당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나서 받아본 메뉴에는, 컨셉트 면에서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다(뭐 딱히 그래야 되는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다만, 판자넬라 샐러드를 낸다는 음식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면 상대적으로 신선하다고는 생각했다. 주문을 받은 웨이트레스는 어떤 것이든 한 접시를 시키면 한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았고 가격이 그만하면 지나친 수준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므로 예의 판자넬라 샐러드와 추천을 받아 돼지고기 룰라드를 시켰다.
먼저 나온 판자넬라 샐러드는, 무엇보다 토마토와 오이의 신선함이 믿음을 주었다. 아직까지도 토마토는 제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신맛이 굉장히 강한 편인데, 단맛이 두드러지는 것들을 끓는 물에 데쳐 껍데기를 벗겨낸 것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판자넬라 샐러드의 기본 개념이 먹고 남은 것을 쓰는 것인데다가 빵이 주 재료가 된다는 걸 감안했을 때 마치 토마토와 오이 샐러드에 빵을 얹어 내는 듯한 설정(“빵을 부숴서 드시면 더 좋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도 덧붙여주었다)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음식이라는 것이 원래의 컨셉트를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판자넬라 샐러드에서 주인공은 먹다 남은 빵에 샐러드 드레싱이 스며든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퍼를 바탕으로 한 비니그렛은 신맛이 너무 강해서 가뜩이나 달기보다 신맛이 강할 확률이 높은 요즘의 토마토와는 너무 강한 조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샐러드에서 드레싱의 역할은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고, 특히나 비니그렛의 지방(올리브 기름과 같은)이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셈일텐데 재료가 따로따로 논다는 느낌이 좀 있었다.
샐러드를 채 다 먹기도 전에 돼지고기 룰라드(=말이)가 나와서, 샐러드와 고기를 같이 먹으라는 배려일까 아니면 그냥 시기를 못 맞춘 것일까 궁금했는데 어쨌거나 돼지고기 룰라드는 그 자체로서 잘 만든 음식이었다. 위에서 컨셉트와 함께 실행/조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는데, 빵가루를 입힌 기름기 없는 돼지 안심은 딱 적당하게 익었고 간도 잘 맞았으며, 안에 들어가 있는 치즈 역시 싸구려 이마트 모짜렐라가 아닌 멀쩡한 것이었다. 다만 바닥에 흥건하게 깔린 소스가 거의 100% 싸구려의 느낌이 나는 허니머스터스 드레싱에다가, 접시 주변에 두른 농축된 발사믹 식초 역시 지나치게 신맛을 강조해 불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포도즙을 원료로 한 발사믹 식초는 그 상태 그래도 신맛이 강한 편인데 이를 불에 끓여 조리면 그 신맛이 더욱 강해져 일단 냄새부터가 코를 찌르는 상황이 된다. 거기에 음식의 바닥에 흥건하게 깔린 싸구려 허니머스터드의 풍미가 합쳐지면 그 전에 먹은 판자넬라 샐러드까지 생각했을 때 신맛이 지나치게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룰라드를 2/3정도 먹었을 정도가 되니 너무나도 잘 조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신맛이 두드러졌다. 결국 꿋꿋하게 다 먹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두바이의 “칠성급 호텔”에서 근무한 스타셰프라면 이렇게 두드러지는 신맛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런 종류의 음식에 덮어놓고 나오는 새싹채소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요소이기는 해도 각 음식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언제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목한 접시보다는 평평한 접시에, 소스를 밑에 조금만 깔고 룰라드를 얹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후식도 먹어볼까 망설이던 가운데 옆 식탁에 나온 걸 보니 딱히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건너 뛰었다(딸기와 크림치즈 , 뭐 그런 것이었다). 샐러드가 11,000원, 돼지고기 룰라드가 15,000원이니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약 비슷한 가격대의 음식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그것을 비교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섬세함이나 깔끔함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게다가 ‘스타셰프’의 브랜드 파워를 생각한다면 내 뒤로 줄서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이 카페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정말 칠성급 호텔에서 근무한 주방장의 입김이 서린 음식이라면 돼지고기 룰라드에서 지나치게 두드러졌던 신맛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전체적인 음식의 질은 재료나 조리상태 모두, 그 정도라면 못마땅한 구석이 없었다.
# by bluexmas | 2010/05/10 09:28 | Taste | 트랙백 | 덧글(10)
비공개 덧글입니다.
왠지 저랑 느낀 점이 비슷하네요.
전 메뉴 이름이 기억나지도 않지만 여튼 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었는데(정기적으로 메뉴가 바뀐다는 듯?) 신맛이 도드라져서 어라 했던…
섬세하지 못한 접니다. ㅋㅋ그래도 맛나게 잘 먹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