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교육과 아이스크림
기다림과 무한반복과 심각한 남초현상, 그것이 바로 군대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요소이다. 네 시간짜리 민방위라고 해서 그러한 요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군대와 연관된 네 시간짜리에는 또 네 시간짜리에 꼭 맞는 짜증이 숨어있다. 거기에다가 선거운동을 나온 사람들까지 더하면 그 짜증은 네시간 짜리 가운데 단연 동급 최강, 역시 우리나라=좋은 나라아.
민방위 계장이라는 아저씨는 무한반복을 담당해서 녹음기처럼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던데, 그래도 안 지키는 남성 어린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교육은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1교시 금연교육(뇌는 역시 두부처럼 썰어야 제맛… 대체 언제 교육자료야? 누가 군에서 쓰는 거 아니랄까봐)을 시작해서 소방이며 심폐소생술, 전기 안전 등의, 알아두면 참 좋지만 군대의 포장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쿡스투어 번역본을 들고 가서 네 시간 동안 다 읽었는데, 중간에 인터넷을 쓰러 1층에 내려갔다가 예비군 참석 확인증을 끼워놓은 채로 책을 두고 올라왔다. 책은 없어져도 민방위 교육은 절대 다시 받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아줌마 공무원에게 확인증을 한장 더 달라고 했더니, 마치 내가 3교시에 와서 교육 다 받은 척이라도 하려는 사람인 것처럼 지금 와서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1층에 다시 내려가니 쓰던 컴퓨터 앞에 책이 그대로 있었고, 가지고 올라오니 아줌마 공무원이 찾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거기에 ‘아니 내가 이따위 교육 몇 시간 떼먹으려고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여요’라며 잠시 소리를 지르며 진상짓을 했다. 아니 정말, 받기 싫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거 몇 시간 떼먹으려고 거짓말 하겠나… 거짓말은 보다 더 중차대한 일들을 하는 순간을 위해 아껴둬야지.
비록 네 시간이기는 했지만 기다림과 무한반복과 심각한 남초현상 속에서 나는 짜증이 나버렸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는 소비자 보호원과 식약청에 전화를 걸어 꿀빵에 대해 물어본 다음 해가 질때까지 잠을 잤다. 중간에 친절한 식약청 직원이 전화를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조금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일곱시도 넘어 일어나서 저녁을 차려먹고 아이스크림 베이스를 만들고 딸기를 조리고 설겆이를 했다. 민방위 교육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건 어째 한 남자가 하루동안 살았던 삶의 울타리 안에 함께 자리잡기에 어색한 한 쌍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업으로 삼지 않은 남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가 민방위를 받고 또 아이스크림도 만들까, 그것도 하루동안.
# by bluexmas | 2010/04/20 02:21 | Life | 트랙백 | 덧글(12)
계장이 게장으로 보이는 걸 보니 제가 지금 배고프기는 한가봅니다ㅠ_ㅠ 얼마나 더 찌려고 이러는걸까요( ..)
전 아직 민방위는 아니지만 말좀 잘 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