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전국은 일일 생활권

알람이 7시 15분에 울렸고 나는 한숨을 한 번 길게 쉬고 일어났다. 먹다 남은 기주떡과 꿀빵 한 개의 아주 건강하지 못한 아침을 먹었다. 자다가 엉겁결에 주워 먹은 상태여서 바로 씻고, 차에 짐을 실어 목표했던대로 8시 30분에 출발했다. 펜션 주인 내외가 생각보다도 더 친절하고 인심이 좋아서 인사라도 하려고 했으나 사무실/매점 문이 닫혀 있었다. 설겆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를 몰고 나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특산물인데, 라는 너그러운 심정으로 꿀빵 두 상자를 더 사고, 중앙시장 근처, 거북선 앞의 백만 군데 할머니 김밥 가운데 ‘오리지날’ 뚱보 할매 김밥집을 간신히 찾아 1인분은 안 판다고 해서 2인분을 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1인분일 수 밖에 없는 김밥을 사서 챙겨들고 바로 고속도로를 탔다. 그리고는 눈치껏 속도 위반을 해가면서, 그리고 정확히 1시간에 한 번 정도 화장실만 잽싸게 들러서 출발한지 정확히 네 시간만에 오산에 도착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새 길에 차도 없고 또 경치마저 좋아서 즐겁게 운전했는데 경부고속은 타자마자 온갖 트럭에 버스가 미친 듯이 차선 바꾸기 운전을 해서 덜덜 떨면서 차를 몰아야만 했다.

오산에 들러서는 막간을 이용해 이마트에 들러 아주 잽싸게 장을 보고, 두 집에 나눠서 내려놓고 잽싸게 사온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모종의 일이 있었는데 그건 정확하게 노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열심히 노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하여 몇 군데를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홍대 앞에 들러 막차 시간 전까지 모종의 일을 하다가 막차를 타고 오산으로 퇴근했다. 언젠가부터 감색 트렌치 코트를 비교적 세련되게 차려입은 처자가 내 앞에 서 있었는데, 역시 비교적 세련된 화장에 비교적 단정하게 뒤로 넘겨 묶은 머리며 비교적 얌전한 구두가 승무원이나 뭐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비교적 물씬 풍겼다. 얼굴을 보니 ‘으음 내가 시선은 좀 받는 편이지’라는 분위기를 비교적 풍기길래 더더욱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 윗쪽으로 정차역을 알리는 전광판이 있어서 때로 그쪽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음악을 크게 들었기 때문에 안내방송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얌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굽이 높은 구두여서 피곤했는지, 여자는 가끔 한 발씩 구두에서 발을 빼서 아주 잠깐씩 반대쪽 종아리에 발등을 문질렀다. 역시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살기에 두 다리로는 때로 부족한 모양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열 두시에 오산을 찍으니 당연히 버스는 없고 택시는 타고 싶지 않아서 결국 집까지 걸어왔다. 그러면서 아, 역시 전국은 일일 생활권, 우리나라 좋은 나라 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다. 아침에만 해도 우리나라 남쪽 끝에 있는 펜션의 딱딱한 침대에서 뒹굴다가 오후에는 서울을 헤매고 다시 경기도 남쪽 끝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뭐 이렇게 말하니까 바쁜 비즈니스맨이라고 되는 것 같지만 나는 무명작가 코스프레(드립이라고 생각했으나 코스프레가 맞는 것 같다)를 며칠 했던 평범한 30대일 뿐이다.

 by bluexmas | 2010/04/17 00:59 | Lif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JuNe at 2010/04/17 01:17 

아니 충무김밥도 1인분은 안 파는건가요 그럴거면 어째서 1인분으로 가격이 정해져있는걸까요 2인분에 얼마라고나 써놓지ㅡ_ㅡ;

김밥은 1인분은 절대 1인분이 아닐거에요, 1인 간식분이면 몰라도!!!

하긴 예전에 어느 곱창집에서는 이거 1인분 저거 1인분 주문하려니까 그렇게도 주문이 안된다고 해서 그냥 나가려다가 그냥 먹었던 적도 있네요’3′;;;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5

그러니까요. 저도 조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1인분에 8천원인 셈이잖아요. 좀 이해가…-_-;;;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4/17 03:20 

돌아오셨군요. 뭔가 일을 들고가셨더랬나요. 그랬다면 좋은 성과 있으시길…(몹시 상투적인 인사말 -.-) 새우 먹고 싶어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6

아, 지금 하는 일을 좀 들고 가서 깨작거리다 왔습니다. 정말 저도 새우 먹고 싶어지는데요? 곧 새우로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 한 가지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squamata at 2010/04/17 09:35 

오리지날 충무깅밥은 뭔가 스페샬한 게 있나요?

세상에서 화물트럭이랑 택시가 제일 무섭지요ㅠㅠ 운전은 피곤해요. 평안한 주말 되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7

아뇨, 특별하다기 보다는 그 자체가 그런 음식이지요. 그래도 김도, 밥도 좋고 반찬도 대강 만든 것들은 아니어서 맛은 있더라구요.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에서는 140정도로 가는 차가 제 바로 뒤에 순식간에 달라붙어서 비켜달라고 해서정말 깜짝 놀랐어요.

 Commented by 러움 at 2010/04/17 10:06 

‘으음 내가 시선은 좀 받는 편이지’에서 대폭소;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가끔은 그런 분들이 지나다니면서 보여요. 신기하더라구요.. 한편으로는 당당한 매력이 화사해서 좋기도 하구요. 🙂

그런데 2인분인데 1인분 사이즈는 뭔가요 흑흑 이건 배신이얏.ㅠㅠ

엄청 바쁜 하루를 보내신듯 합니다. 잘 챙겨드세요. 1인분 김밥이라니ㅠㅠㅠㅠ 눈물이.. 김밥은 2인분 정도 먹어야 먹은거 같다구요! <-꿀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7

원래 생각했던 표현보다 조금 순화해서 썼어요. 잘못하면 여자분들한테 미움살까봐-_-;;; 그런 분들이은근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_-;;; 정말 그 김밥은 1인분으로는 절대 배를 채울 수가 없어요. 원래 김밥이 사실 그렇잖아요.

 Commented by SF_GIRL at 2010/04/17 10:48 

지금은 집이신 거군요. 저는 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편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지만 – 그러면서도 객지생활은 하고 있지만 – 여행의 묘미는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와서 즐기는 나른함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8

네, 정말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잤어요.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네요. 나른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참 좋지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4/17 11:04 

중국에서 며칠이 걸리는 이동을 보고 난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났구나 싶었죠

노는 것도 일이다가 적용되는 블루마스님..히히

그녀의 착각은 자유지만 이유야 어쨌든 봐버린 순간 어쩐지 ‘졌다!’ 패배한 느낌이 들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8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런 걸 보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는 것도 일이다가 아니고, 정말 일 때문에 서울에 급하게 올라갔어요-_-;;;

 Commented by 해피다다 at 2010/04/17 11:44 

아무리봐도 바지런하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17 23:49

에이 별말씀을요. 저 바지런하지 않답니다…-_-;;;

 Commented by 고선생 at 2010/04/18 15:16 

한반도가 통일이라도 되면 일일생활권이란 얘기는 없어지게 될까요. 전국 어디든 하루에 왔다갔다가 가능한게 편하긴 한데 말이죠. 남한 땅 안에서 가장 먼 도시간 거리가 고속철로 서너시간이면 가는 수준이니.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4/20 02:22

아, 그래도 더 빠른 교통수단이 생기지 않을까요. 항공편이 조금 더 대중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