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번 기념 가상인터뷰(1)-오비이락은 사자성어
닫힌 블로그와 맞닥뜨렸을 때,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가 그동안 이런저런 푸념들을 늘어놓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블로그마저 닫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1,500개를 바라보는 글 수를 감안한다면 닫는답시고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리는 것도 ‘게으른데만 부지런한’ 그가 할 짓은 아닐테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느 동네의 블로그에서는 그가 블로그를 닫은 것을 비아냥거리는 글도 올라왔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최근에 번역해서 내놓은 책의 오류와 관련된 것일거라는, 일종의 서투른 억측과도 같은 글이었다. 내가 바로 그이기 때문에 돌아가는 속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따라서 해명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어차피 1,500번째 글을 위한 특집도 필요한 마당이니 그를 불러다가 입을 열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실로 오랜만의 인터뷰가 성사된 것이다.
해명 따위 할 가치도 없지만, 기분이 나빠서 언급한다
문: 뭡니까?
답: 네?
문: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블로그까지 닫아버리고 난리를 치는 겁니까? 게으른 위인이 그 글들을 전부 비공개로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소문대로 진짜 그래서 블로그를 닫은 겁니까?
답: 그럴리가요…(웃음). 책 때문에 속으로 좀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솔직한 사정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말마따나 게으른 제가 블로그를 닫아버릴 정도로 영향을 받지는 않죠. 게으름이 모든 것을 이기는 세상인데요. 일단 책 얘기는 조금 있다가 몰아서 하기로 하구요. 블로그를 닫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건, 몇 가지 큰 이유가 있기는 한데 일단 신령님과의 약속은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죠. 파워 블로거 흉내 한 번 내보려다가 어째 속으로 개망신 당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나 할까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약속을 지켜 일주일동안 절필은 해도, 블로그를 아예 닫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 그랬겠죠. 게으른 인간이니까…
답: 네, 당연히 그렇죠. 그러다가 아주 갑자기, 연재 말고 2주일 안에 끝내야 되는 큰 기사를 기획하고 쓰게 되었어요. 이런 일을 오래 하신 분들한테야 사실 그렇게 긴장할 일은 아닐텐데, 저는 아직 이런 일을 시작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고 글은 어떻게 어떻게 써 내겠지만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의뢰를 받고 나니 긴장도 좀 되고,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이왕 이렇게 되는 것, 일주일 동안 절필도 하기로 했겠다, 아예 신경쓰지 않도록 딱 닫아버리고 열심히 좀 해봐야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죠.
문: 그게 다인가요?
답: 아뇨, 솔직히 말하면… 최근 얼마동안 술을 마실때마다 개주접을 떨고 다닌 것 같아서, 아침만 되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요. 어느 순간 그게 좀 쌓여서 내폭이 좀 있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부끄럽고 민망한 것 같은 기분 있잖아요. 세상 나쁜 짓은 마치 어젯밤 나 혼자 다 하고 돌아다닌 것 같은 그런 기분… 그게 좀 쌓였던 것도 있습니다. 그게 정확하게 어떻게 블로그를 닫아버리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문: 알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군요. 제보는 받으셨는지?
답: 네, 뭐 그 얘기는 G군을 통해 우연히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사실 이런 얘기도 블로그 다시 열면서 어쨌거나 하려고 했던 이야긴데요, 졸지에 무엇엔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 것 같은 상황이 되어서 그 자체로 기분이 나쁩니다.
누구의 책임이든지 간에 오류에 대해 이야기 듣는 것은 뼈아프다
문: 그렇다면 그것도 이야기할 겸,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화제로 넘어가도 되겠네요.
답: 네. 우선 “이미 낸 책” 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문: (찔끔)이미 낸 책이요? 어쨌든… 잘 알고 있겠지만, 책의 오류를 지적하는 이야기가 여러군데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밝힐 생각은 없으신지.
답: 네, 그건 사실 책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언제나 염두에 두었던 것이에요. 사실 제가 옮긴이 약력이나 이런 것들을 준비할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일부러 블로그에 대한 부분을 빼놓고 언급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랬다면 더 책에 대한 반응을 직접 들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 책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창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준비 기간에도 틈틈히 이야기를 했었구요. 어쨌든 블로그에도 그런 내용을 지적하는 답글이 꽤 많았고, 메일도 받았으며 심지어는 저희 아버지마저도 책에 표시해놓았다고 가져가서 보라고 하셨어요(웃음). 여기까지는 제가 겪었던 사실이 될텐데, 그게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좀 많은 상황이어서 이 블로그를 통해 어떻게든 입장을 표명하는 글을 올릴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제가 이야기를 잘못 꺼내면 우선은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이 책이라는 게 저자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고…”라는 이야기를 자칫 잘못하면 “아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게 만드는 과정에서…”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요. 아무렴 제가 가장 먼저 문장을 만든 옮긴이인데, 저에게 책임이 없을리가 없겠죠. 어쨌든, 제가 원하는 의미와 다른 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이해가 잘 가지는 않지만, 뭐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있겠습니다.
답: 네, 이 자리를 빌어 그런 부분을 지적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류에 대한 지적이 뼈아픈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건 제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책에 관심이 있으시고, 또 이 책의 잘못된 부분이 고쳐지기를 원하신다면 이런 말이 어떻게 들를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사 주시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자세한 숫자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는데, 아직까지 이 두 권의 책이 재판을 찍을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판을 찍게 된다면 여러 분들께서 지적하신 내용들을 다 모아서, 꼼꼼하게 확인한 다음 수정해서 담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그러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만은 제가 밝힐 수 있겠죠. 그리고, 이 책의 반응이 좋다면, 작가의 두 번째 책 역시 언젠가는 소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돈이고 뭐고를 떠나 제가 맡아서 마치고 싶은 것이 제 순수한 바램이기도 하구요.
문: 네, 알겠습니다. 책에 대해서 다른 하실 이야기는 없으신지.
답: 없을리가 없지요, 말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전데요(웃음). 책을 나눈 것 역시 내부의 결정이라 사실 드러내놓고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는 생각하는데 혹시라도 그런 부분에 민감하신 분들이 있을까봐 밝히자면, 아마 한 권으로 내게 되더라도 분량을 고려한다면 책 값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정도만 언급하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책을 나누기로 한 것이 누구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문: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벌써 나온 책” 이라고 언급하시는 걸 보니 나오지 않은 책도 있는 모양이죠?
남들은 다들 잘만 말하고 다니는데 나는 왜 쓸데없이 말을 아끼나
답: 네, 그 정도 알아먹을 눈치는 있으신 모양이네요, 다행스럽게도. 운이 좋아서, 거의 바로 다음 책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 축하합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괜히 법석떠는 것 같아서… 그냥 멍석이나 깔아줄테니 이야기해보시죠.
답:네. 솔직히 아직은 말을 아껴야 할 단계인 것 같아서 여기에 공공연히 떠들기에는 좀 부담을 느끼는데요,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건 이번에는 번역이 아니라 제가 직접 쓰는 책이고,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아니, 가까운 곳에 있는 주제를 다룬다고나 할까요.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가까운 곳에 있는 주제를 마치 멀리 있는 것처럼 다루는 이야기라고 말하면 보다 정확한 묘사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은 거기까지만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문: 남들은 다들 잘만 말하고 다니는데 쓸데없이 말을 아끼시는군요.
답: 네, 제가 뭐 워낙 쓸데없는 곳에서 쓸데없는 짓 하고 돌아다니는데 능한 인간이니까요.
문: 뭐 어련하시려구요. 그거 말고 다른 계획은 없으신지요?
답: 없는 건 아닌데, 그것들 역시 여기에다가 드러내놓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것은 아직 없습니다. 일단 건축에 관련된 글은 지금 하고 있는 연재 하나만으로도 제 능력의 100%이상을 발휘해야 쓸 수 있으니 취재 다니고 쓰는 것 외에 계속해서 충전이 필요하고, 사실 건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 바닥의 주류매체는 저 같은 하급인력이 별로 필요 없는 상황이라 아마 그 쪽과는 인연이 닿을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쉬운 이야기도 어렵게 해야 되는데, 제가 그럴 재주가 없고 또 학위도 없어서(웃음)… 그래서 그쪽으로는 일단 그걸 계속해서 하고, 또 그 덕분에 관심도 열정도 잃지 않고 책도 보고 건물도 들여다보도 생각도 계속해서 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식에 관련된 일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음식 그 자체에 대해서 신경 쓰시는 분들, 또 그런 분들 가운데에 글이나 기획과 같은 것들이 필요한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할 기회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저는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정확하게 프로는 아니니까요. 하루 종일 빵만 만드시는 분과 저는 솜씨도 다르지만, 생각의 구조 자체도 다를 것입니다. 저 역시 ‘어떻게 하면 이 빵을 잘 만들까’와 같은 문제를 놓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저의 목적은 그러한 문제의 답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빵을 만드시는 분들은 궁극적으로 그걸 빵으로 표현하는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죠. 그러한 차이를 잘 조합하면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 네…
답: 그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계속해서 일거리가 손에 들어오는 거에요. 아직 안정된 단계가 아니니까요!
문: 크, 역시 초보 프리랜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것이었군요.
답: 아 네, 역시 먹고 살려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졸리므로 1부는 여기에서 마치고 곧 2부로 이어진다)
# by bluexmas | 2010/04/12 01:50 | — | 트랙백 | 핑백(1) | 덧글(18)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0/04/23 23:00
… 일보 직전이군요. 이봐요, 나 블로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요.을: 무슨 일이죠? 짜증나는 일이 생겼다니 안타깝네요.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갑: 이 인터뷰, 기억나시죠?을: 네, 기억나죠. 그때 누군가 블로그 닫은 것과 책을 엮어 비아냥거려서 기분이 나빴는데 직접 응대할까 하다가 그럴 가치도 없어서 그냥 에둘러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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