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삽질 여행기(4a)-평원에서 헤매다
사실, 돌아보면 이 날의 삽질은 그렇게 큰 삽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고 때문에 마이바라에 가는 기차가 늦어지거나 기타가타행 기차가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그러나 일본말을 비롯한 문화에 무지한 나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이 정도 거리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하룻동안 다녀오겠다고 계획했던 것 그 자체는 정말 엄연한 삽질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런 여행인줄 알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어딘지도 잘 모르면서 기타가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세지마 가즈요의 아파트 때문이었다. 세지마 가즈요는 찬찬히 뜯어보거나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냥 끌려서 좋아했는데, 그 가운데에 이 날 찾아가려고 했던 아파트가 있었다. (아마도 했던 이야기라고 기억하고 있는데)10년 전, 나는 졸업”작품”을 시작한 건축과 4학년생이었고 그때 지도교수에게 이 아파트의 사진을 내밀면서, 이런 느낌의 집합주택을 디자인하고 이야기했었다. 학교 근처, 그러니까 중앙선 왕십리에서 용산 방향의 철로 오른쪽으로 다세대 주택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동네를 부지 삼아, 바로 그 주택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조직을 계승한 다세대 주택을 디자인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도교수는 세지마 가즈요를 모르는지, 이 아파트의 사진을 내밀자 ‘후지네’라는 반응을 보인뒤, 프랭크 게리와 같은 느낌의 디자인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글로 한 번 쓴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므로 그냥 결론만 말하자면, 내 졸업”작품(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내 작업물을 “작품”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적이 없었다. 건축물이 작품이 될 수 있나?)” 은 이도저도 안 되어서 막말로 #되었고, 나는 정말 졸업하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전시에 디밀었으며, 지도교수에게 방장이 학생들 챙겨서 전시회장 지키게 안 한다고 욕을 들어먹은 뒤 의무적으로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간 것을 빼놓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추진도 못해본 것에 한이 맺혀, 부지 모형을 미국에까지 가져가는 등 무려 9년 동안이나 끼고 있다가 작년에 돌아오기 위해 이삿짐을 싸는 날, 이제 미련을 버리자는 생각에 무릎으로 반을 꺾어 부숴서 내버렸다(그러나 이 부지에 지난 달 잡지 기사 쓰려고 취재차 또 들렀었다…여전히 교차하는 만감).
자꾸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제자리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자. 기후현 모토쓰라는 동네에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이소자키 아라타가 코디네이션을 해서 일본은 물론 외국의 건축가들이 디자인을 한 아파트를 앉힌, 일종의 시범단지이다. 이 건축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글을 써서 언급할테니 넘어가고, 그냥 여행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가는 날까지도 이곳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을 머릿속에 넣지 못한 상태였다. 이 단지의 홈페이지에는 아주 간단하게 나고야에서 한 시간, 기후에서 20분이라고 나와있지만 대체 어디를 경유해서 어디로 갈지는 불분명했다. 가장 쉽게 나고야까지 신칸센을 한 시간 정도에 걸쳐서 타고 간 다음, 거기에서 기후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건 일단 운임이 너무 비쌌고(9,000엔에 육박), 지도를 보아도 알겠지만 돌아서 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야후 맵에서 정보를 찾으면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두 시간 반 정도에 걸쳐서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럴 경우 기차를 서너번은 갈아타야 되는데, 그 기차편들이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에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와지 섬에 갈때와 마찬가지로 호텔의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얼굴이나 이름 모두 중국계로 짐작되는 이 여직원은 하루 동안 인터넷을 뒤져 내가 찾았던 야후 맵의 여정과 거의 같은 여정을 뽑아, 한자로 된 역 이름 모두에 영어로 독음을 달아주는 수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이 독음이 여정이 계속되면서 약간의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JR을 타러 우메다 역까지 미도스지센을 타고 간 것까지는 괜찮았다. 여정은 우선 교토쪽으로 열차를 타고 ‘光原’ 이라는 역까지 가서(1시간 20분 소요), 거기에서 또 오오자키까지 가는 열차를 타고(34분), 거기에서 다시 ‘타루미 선’이라는 노선의 열차를 바꿔 타고 십 몇 분인가를 타고 가서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저’ 광원’이라는 역 이름의 독음이었다. 호텔 직원은 이걸 ‘요네하라’라고 적어줬는데 가보니 같은 한자로 된 역의 이름이 ‘마이바라’였던 것. 일본말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야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일본말을 몰라서 바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냥 가보기로 하고 표를 샀으나, 한 번 멍청해지면 끝없이 멍청해지는지, ‘原’자가 들어가지만 운임이 같은 다른 동네의 표를 사버린 것이다. 결국 다시 자잘한 패닉에 빠져 안절부절하다가 옆의 안내 창구에서 역시 영어를 잘 못하는 일본사람의 도움으로 환불을 받고, 다시 마이바란지 요네하란지 하는 동네로 가는 신쾌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같은 가격의 표이니 그냥 탈까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표를 안바꿨다면 더 큰 곤경에 빠질 뻔했기 때문에 이때 표를 바꾼 건 잘 한 짓이었다). 시간대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아주 이른 시간대여서 이대로 순조롭게 여행을 한다면 저녁때에 고베에 들러 여유있게 저녁이며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겠다는, 나중에는 언감생심으로 판가름난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채 열 시가 안 된 시간이었으니, 열 한 시 정도에는 마이바라에 도착했어야 되는데 또 기차사고가 발목을 붙들었다. 그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사고가 있었고, 내가 잠든 사이 열차는 가다서다를 되풀이했다. 결국 마이바라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이 더 걸렸고, 거의 막판 나는 미칠 듯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죽을 뻔했다.
그렇게 마이바라에 도착하니 바로 옆 플랫폼에서 오오자키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또 다시 삼십 여 분… 기차 사고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나는 슬슬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열차를 많이 갈아타면 탈 수록 변수가 많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군데에서 늦어지면 다른 곳에서도 도미노처럼 늦어질 확률이 꽤 높기 때문이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그러니까 서울까지 가는 교통편이 전철이나 사당행 고속버스 밖에 없던 그 시절에 바로 눈 앞에서 건널목 하나를 못 건너서 1분이 늦어 결국 수업시간에 30분 지각해본 상황이 생각났다. 수업에 늦으면 차라리 낫겠지만 이건 낯선 땅에서…
기차는 산이 멀리에 듬성듬성 보이기는 하지만 그저 너른 평야 지역을 달려 곧 오오자키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자마자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 올라가 대체 어디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타루미 선을 탈 수 있나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타루미 선을 탈 수 있는 플랫폼은 찾을 수 없었고, 엉겁결에 눈 앞에 보이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곧 출발했고, 나는 근처에 서 있던 20대 여자 둘에게 행선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이밀며 물었지만 그들도 몰랐는지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다시 물었고 그는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그 기차가 기타가타로 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주었다. 나는 곧 얼굴이 노랗게 변하며 아와지 섬에서의 삽질비극을 재현하는 것 아닌가 잠시 패닉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고맙게도 열차는 바로’ 호즈미’라는 다음 역에 섰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오오자키 역으로 돌아왔다(이 기차는 기후를 거쳐 나고야로 가는 것이었다).
그때 시간은 벌써 열두 시를 훌쩍 넘겨 있었고, 나는 다시 찬찬히 타루미 선을 탈 수 있는 플랫폼을 찾기 시작했다. 한자를 안 쓴지가 오랜 천년이니 사실 한자만 써 있는 표지판을 빨리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곧 나는 ‘타루미’라고 발음되는 글자를 찾을 수 있었다. 6번 플랫폼. 내가 엉겁결에 잡아탔던 기차의 플랫폼에서 윗쪽이었다. 표지판을 쭉 따라 올라가보니…맙소사, 임시 막사 같은 건물에 또 다른 작은 역사가 있었고, 거기에 걸려있는 각종 사진들을 보니 이게 한 칸 짜리 관광열차였다.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소래 가는 기차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 소래가는 기차가 두 칸짜리였음을 생각한다면 이건… 게다가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이 열차는 정말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데, 그나마도 점심 시간에는 거의 두 시간을 비워놓고 한 대가 오는 상황인데 나는 한 30분 전에 전 열차를 놓친 상황이었다(시간표를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1시 2분 차를 놓친 상황이었다). 아침에 사고를 겪지 않고 왔다면 모를까, 다른 열차를 타고 어이없이 갔다오지 않았더라도 꼼짝없이 한 시간은 기다렸어야 할 상황인 것이었다. 다음 기차는 그래서 한 시간 쯤 뒤인 2시 32분 차였으니,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오사카를 떠난 것이 채 아홉 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두 시 반에 오는 기차를 타서 기타가타 역에 도착하면 거의 세 시, 또 걸어서 목적지까지 20분… 시간 여유를 두고 돌아갈 생각을 하고 나오는 기차를 확인하니 4시 46분… 이래서 결국 잘 해봐야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건물을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자 허무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하나의 큰 삽질인 셈이었다. 다섯 시간 걸려 가서 목적지를 찍고 다시 오는 수준에 불과하니까. ‘아 나 이 건물도 보았어’ 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는 건 아닌데, 왠지 내가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 속으로 자꾸 쓴물이 올라왔다.
더 웃긴 건, 대체 이 기차를 타기 위해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정확하게 기타가타로 가는 표를 산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벌써 운임을 초과하는 기차여행을 하는 셈이었다. 마이바라까지 표를 끊었으나 오오자키까지 와 있었고, 여기에서 나갔다가 표를 사서 다시 들어와야 되는 건지, 일본말을 모르니 대체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답답했다. 그 간이 역사에서는 표도 파는 듯 했지만, 절차를 모르니 살 수도 없고 역 밖에는 나갔다가 어떻게 들어오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결국 역 안을 계속해서 맴돌기만 했다. 점심시간은 벌써 지나있었지만 대체 건물을 어떻게 보고 다시 먼 길을 돌아 오사카까지 갈 생각을 하니 솔직히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흘러, 곧 기차(‘레일버스’라고 부르고 있었다)가 왔는데, 이건 내부가 양쪽 가장자리에 한 줄씩 쭉 자리가 붙어 있는 구닥다리였다. 지금은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열차 가운데에 식탁을 놓고 벤토를 먹는 관광상품도 한때는 있던 것 같았다. 가격은 5천엔대. 나는 잠시 열차에 앉아 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갔다가 또 다시 열차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교복을 아름담게 차려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길고 긴 시간이 흘려 기차는 출발했고, 정말 일본 만화에나 나올법한 들판 위에 난 철로를 꾸물꾸물 달렸다. 기타가타까지는 고작 17분이 걸리므로, 나는 철길을 따라 그냥 걸어서도 갈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했다. 역시 저 먼 곳에 산이 간간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저 너른 평야에 키가 낮은 집들만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곧 눈 앞에 내가 찾던 그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벽이 들어왔다. 아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그걸 보려고 이만큼의 삽질을 또 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서. 열차가 간이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1. 오늘 4일차를 다 쓰려 했으나 스스로 주절거리는데 지쳐 2회로 나누어 싫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2. 올 때 들었던 음악은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데, 갈때는 뭘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잠들어 있기는 했지만… 따라서 오늘은 배경음악이 없다.
# by bluexmas | 2010/03/26 01:04 | Travel | 트랙백 | 덧글(14)
읽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