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키다/가르치다

어제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옆 식탁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린 듯한 여자들 둘이 있었다. 식탁이 아주 가까이 놓여 있지도 않았고 그 두 사람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공간의 특성 때문인지 듣고 싶지 않았는데도 나누는 이야기들이 거의 다 들렸다. 나는 혼자 먹고 있어서 중간중간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는 더더욱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전화기만 안되는 아이폰으로 웹서핑을 했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상황은 아니다.

독실한 사람들인지 하나님이며 은혜와 같은 말들이 계속해서 나왔는데 사실 그건 뭐 내가 여기에다가 대놓고 할 얘기는 아니니까 그렇고, 그렇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여자가 계속해서 “잘못을 했을 때에는 그냥 두지 말고 계속해서 ‘가리켜’야지”라고 말했다. 그것도 틀렸잖아, 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굉장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는데 계속해서 가리킨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본의 아니게) 듣고 있으려니 어째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만약 비아냥거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아니 가리키다와 가르치다도 구별 못 하는 사람이 뭘 가르쳐요?”라고 말하면 그만일텐데 정확하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가르치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닌데 사람들이 가르친다는 말을 쓰는 맥락이 그래서 그런지 부정적인 느낌일 때가 많다. 원래 좋은 상태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하나를 더 얹어주려 하는 상황이 아니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그걸 즐겁게 까발리며, 가르침을 주는 자신이 받는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절차와 같다고나 할까. 기억 속에 나에게 가르친다는 표현을 쓴다는 많이 썼던 사람을 떠올려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은 그게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 글도 갑자기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려고 쓴 것 같아서 좀 민망해졌다. 훈계하는 기성세대 역할은 맡고 싶지 않은데,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by bluexmas | 2010/02/21 00:25 | Lif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아리난 at 2010/02/21 00:11 

저도 둘의 정확한 차이는 잘 모르고 왠지 미묘한 뉘앙스로 구분해서 쓰고 있는데;; 이기회에 정확히 숙지해야겠어요ㅋㅋㅋ 저도 맞춤법이나 정확한 낱말 같은거 잘 모르는거 많다는걸 은근히 느끼고 있어요. 꼰대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도 작년쯤엔가 알았던것 같아요. 제법 많이 들리는 말인데도 말이죠-_;; <-의외로 바보일지도

 Commented at 2010/02/21 00: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F_GIRL at 2010/02/21 00:31 

저도 맞춤법 틀리는 거에 쉽게 분개하는 성격이라 그 상황이 너무너무너무 이해가 가요. 블로고스피어에서도 굉장히 심각한 글을 틀린 맞춤법으로 게속 쓰는 (그래서 단지 오타가 아니라 맞춤법에서 무지한) 사람들을 보면 저는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스팅 내용으로 돌아가면, 초등교육만 제대로 받으면 가리키다는 point out인 걸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덧붙여서 제 어머니가 직장생활 때문에 집안일에 시간을 못내는 바쁜 어머니였지만 최소한 저한테 뭘 “가리킬”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게 참 뒤늦게 고맙습니다.

너무 공감해서 좀 흥분했네요.

 Commented by iris at 2010/02/21 01:02 

제 주변에도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는 친구가 한명 있는 데, 그 친구에게 지적당했을 경우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래 너 잘났다 !! 라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지요. 저는 오히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지던걸요 ^^ bluexmas님의 포스팅을 보면서 제가 잘 몰랐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공부하고 있어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0/02/21 01:03 

저도 꼰대가 되어가요 이히히-

나이가 들면 다 그런가 봐요- 퍽!

저는 사실 편집자 출신치고는 맞춤법에 관대합니다- (나는 관대하다- 퍽!)

 Commented by 히라케 at 2010/02/21 01:47 

요샌 이런거 지적하면 선생질한다고 비웃는 세상이라서요.

 Commented by 레일린 at 2010/02/21 01:56 

다르다/틀리다

가르치다/가리키다

전 이 두개가 유난히 눈에 거슬리더라구요 저도 솔직히 언어파괴에 일조하는 몸이라 당당하게 비난할 수는..없지만. 근데 주변에서 다르다 틀리다를 구별 못해서 마이 짜증이…ㅠㅠ;

 Commented by 초이 at 2010/02/21 03:31 

혼동하기 쉬운 말. 구어에서는 나도 잘못 “가르키다”고 하는지도 모른체로 말하고 있는지도. 어ㅉ면 잘못된 서울사투리일지도….

 Commented by momo at 2010/02/21 07:02 

다르다와 틀리다와 개념도 저렇게 많이 쓰이죠… 전 남 가르치는걸 잘 못하고 저와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를 잘 못합니다.

 Commented by 하니픽 at 2010/02/21 09:15 

그 둘의 차이는 알고있는데 쓸대 무의식 적으로 바꿔쓰게되서 저도 흠짓하고 다시 말을 고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말과 글은 다르다고 하나봐요^^ 글이 틀리면 고치면 되는데 이미 뱉은 말은… 말은 생각을 많이 하고 해야 할 듯해요~

 Commented at 2010/02/21 09: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2/21 11:04 

언뜻 상상해보니 그 ‘가리키’는 걸 좋아하는 여인은 아마 경상도 출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억양이 좀 강하잖아요.

말씀하는 내용이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겠는데요.ㅋㅋ

목소리 크기도 적지는 않았죠??

 Commented by ra at 2010/02/21 23:40 

맞춤법에 대해서는 남말 할 처지가 아니라. 전 한동안 오랜만을 계속 오랫만이라고 쓰고 다녔는데, 그걸 깨달은 이후로 훈장질 끊었어요.

 Commented by JuNe at 2010/02/22 12:19 

맞춤법 얘기해드리면 ‘어차피 알아들으면 그만 아닌가요’하는 반응이 있고, ‘어머 몰랐어요’하는 반응이 있고, ‘그거 언제 다 찾아서 맞춰쓰나요’하는 반응이 있습니다.

가장 황당했던 반응은 ‘말이 뭐라고 그런 권위에 복종해야하나요 난 자유롭게 살거라능’이었으니… 한번 맞춤법 얘기해서 부드럽게 받아들여주시면 고마운 분이고 아니면 뭐.. 별수없지 하고 말기로 했습니다; 저도 어차피 잘 맞추는 편은 아니니까요( ..)

아는 분이 어떤 말을 계속 틀리게 쓰시기에 얘기했더니.. 이제 알았다고 고친다고 하시더니 더 틀리게 쓰시는 걸 보고는 그냥… 말기로 한 적도 있고요;

 Commented by 봄이와 at 2010/02/22 13:19 

저도 맞춤법이나 단어뜻에 자신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범위를 벗어나는 걸 종종 지적해주곤 하는데, 제 말투 때문인지 대다수가 불쾌해하더라구요. 그래도 전 지적해요 큭

 Commented by 달에 at 2010/02/23 13:51 

한국인은 꼭 한국어를 제대로 써야해! 라고 생각치는 않지만 가르키다와 가르치다같이 뜻 자체가 다른 경우 정도는 인식들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모르는게 있는 이에게 그걸 아는 사람이 알려주는게 가르치다이긴 한데 가르침을 알려주는게 아닌, 내뜻대로 상대방을 바꾸는데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서 부정적인 늬앙스를 띄게 된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나이 들면서 점점 몸에 베더군요;;; 정말 꼰대는 되면 안되는데요…ㅠㅜ 저도 제 동생에게 어느 순간엔가 ‘가르치’고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