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기

소파에서 자는 듯 깨는 듯, 나도 모르게 누워 있을 때에는 굉장히 따뜻하다고 생각해서 달리기를 하러 나갔지만,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마자 꽤 춥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째 속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나갔으니 뛰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 한 20분 정도는 좀 버겁다. 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참 만만치 않게들 쳐다본다. 뭘 쳐다보나. 좀 쉬어서 그런지 몸보다 마음이 달리기를 거부한다. 시간에도 좀 쫓겨서 5킬로미터 조금 넘게 뛰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언젠가의 잡담에서 써 놓았던 것처럼, 4월 4일의 무슨 반쪽마라톤을 신청해놓았다. 3월은 아직 좀 춥고, 4월이 딱 좋다고 생각하면서 뒤졌는데 마침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끝나는 코스가 있었다. 이왕이면 진짜 경기장에서 끝나는 걸로 뛰면 기분도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4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니까 고통스러운 달리기도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적어도 1년에 두 번씩은 이거나마 해줘야 한다. 그래야 지긋지긋해서 멈추게 되는 운동을 다시 본 궤도에 올려놓고, 또 술도 좀 덜 마시게 된다. 어쨌든 당분간은 금주까지는 아니어도 절주를 할 생각이다(여기에 이렇게 써 놓아야 이거라도 지켜볼라고 안 마시게 된다;;;). 자주 회식하는 직장인들만큼 마시는 건 아니지만, 어째 나이를 먹게 되니 음주습관에 고삐가 제대로 안 걸린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집에서야 마시다가 그냥 쓰러져 자면 그만이지만 밖에서는 무슨 엄한 짓을 하고 돌아다닐지 몰라서 술마시기가 두려워진다. 언제나 멀쩡하게 살기에는 사는 게 기본적으로 편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멀쩡하게 사는 것 자체를 회피하기 시작하면 더 불편해진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 때에는 웬만하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렇게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마셔도 즐겁지 않은 시기가 되면 이게 습관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사실 요즘에는 마시는 게 그렇게 즐겁지 않다. 그보다는 다른 것을 해서 즐거움을 찾고 싶다. 그나마 책이 조금씩 손에 들어오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붙박이장에서 꺼내 책상 옆에 쌓아두었다. 요즘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책을 읽는다. 전화기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꾸 편한 것만 찾으면 나아지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보는 게 책을 보는 것보다 편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채널들에서는 얻을 만한 정보는 주지 않는다. 아까는 무려 이#헌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보다가,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냐, 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텔레비전을 껐다. 옛날옛적에 서울로 두 시간 걸려 통학했을 때에는 언제나 책을 읽었다. 그거 아니면 할 게 없었으니까. 이제 그것도 자의반 타의반 하기가 참 어렵다. 사실 요즘은 책이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가방에 좀 많이 쑤셔담고 다녀야지.

이제 돌아온지도 10개월이 지났는데 이곳에서의 삶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썩 재미있지는 않다. 그러나 또 따지고 보니 어디에 가나 별로 재미가 없다. 어떤 것 한 가지가 삶을 계속해서 즐겁게 만들어주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재미를 따지는 것도 너무 배부른 소리가 되나.

 by bluexmas | 2010/02/14 02:57 | Life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at 2010/02/14 03: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4 14:12

시간 정말 빠르게 흘러가요. 조금 있으면 1년이잖아요. 몸과 마음의 건강은 역시 맞물리는 것 같아요. 어느 한쪽이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쪽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종종 블로그로 소식 들려주시구요. 너무 뜸해서 궁금해요.

 Commented at 2010/02/14 03: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4 14:13

어째 저도 그럴 것 같아요. 너무 내려가기도 싫지만 또 올라가기도 싫죠.

올림픽 중계를 잠깐 봤는데 중계하는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거 듣기 싫던데요. 오래 못 보겠어요 피곤해서.

 Commented by JuNe at 2010/02/14 03:20 

아 저도 운동이라도 좀 해야할텐데 말입니다;

전철을 타면 책한권이라도 넣고 다닌 적이 있는데 요즘은 dmb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해서 안넣고 다닌지도 좀 됐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4 14:13

저는 디엠비는 안보구요. 음악 들으면서 책을 읽게 되더라구요. 음악은 그냥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역할이구요. 역시 책을 읽으니까 마음이 좀 편하네요. 뭐라도 하는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momo at 2010/02/14 04:25 

한국에 있을때는 잡식으로 책을 읽었었는데, 여기선…ㅋㅋㅋ 아.. 책 펼치면 영어공부… … 공부를 해야니깐,,, 보구는 있어요… 한장한장 언제 끝나냐하다가도 읽혀진 두툼한 장수를 보면 뿌듯하기도 하구..ㅋㅋㅋ 전 BBC 역사채널 보구 있는데,, 요즘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걸 하는데,, 완전 멋짐… …우리나라 여의도순복음 교회가 갑자기 백그라운드인데,,, 곧있으면 iplayer에 뜬다니깐,, 봐야겠땅..ㅋㅋㅋㅋ

http://www.bbc.co.uk/iplayer/episode/b00p5wrk/A_History_of_Christianity_Protestantism_The_Evangelical_Explosion/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4 14:14

영어로 된 책을 읽으시면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좋지않을까요?^^;;;

친척이 옛날에 여의도에 살아서 자주 갔었는데, 이제 그 기억으로 여의도를 보면 정말 놀라요. 순복음섬같던데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0/02/14 13:46 

설을 맞아 bluexmas 님의 삶이 더 즐거워지기를 기원할게요-

블로그만 봐서는 충분히 보람차고 즐거운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4 14:15

당고님의 삶도 더 즐거워지기를 바랍니다~^^

흐흐 저는 제 삶에 불만이 좀 많아요. 더 즐거웠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2/15 15:46 

정신 놓고 뛰다보면 주변은 보이지 않던데^^

몸이 편해지니 뇌까지 편해지려고 해요 위험해요..ㅜ_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5 23:49

한 번 늘어지면 끝도 없이 늘어지려고 해서 쉬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_-;;;적당한 걸 찾기가 쉽지는 않네요.

 Commented at 2010/02/15 16: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15 23:50

풀코스는 차마 엄두가 안 나구요. 그냥 하프에 만족하고 있어요. 비공개님은 풀로 뛰세요? 대단하시네요… 저는 추워도 차라리 밖에 나가서 뛰니까 낫네요. 요즘은 그냥 10km안쪽으로 뛰고 있어요. 조금씩페이스를 다시 끌어올려야죠.

비공개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