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 “웬만한 한국 여성들보다 아름다우시고.”
어제 밤에 잠깐 엠비씨 백분 토론인가를 보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이라고 해봐야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서양인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은 또 다르잖아-들에 대한 인권 문제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무슨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저런 분위기의 대사를 읊어주셨다. 하루 종일 저 말을 곱씹어 보았는데, 정말 그 양반은 자기가 무슨 말을 입에 담았는지 알고 있을까? 나에게는 마치 “아니 필리핀-화제의 대상이 필리핀 여자였다-여자들은 한국 여자들보다 못 생긴줄 알았는데, 당신 보니까 안 그렇네. 와 그 동네 여자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 여자보다 예쁜 사람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사람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법을 세운다는 사람이 저런 식으로 얘기를 해도 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비뚤어져서 그렇게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하루 종일 생각을 해 보았는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2. 밤에 이마트에서 장을 잠깐 보았는데, 거짓말이 아니고 물건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발렌타인 데이와 설이 겹쳐서 그런지 온갖 조악한 초콜릿과 선물 세트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마트는 평소보다 더 구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차를 가지고 장을 보러 갔을 때, 늘 마시던 삼다수 작은 병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때면 평소에 파는 물건들이 온갖 잡다구리한 선물세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이상한 구석탱이에 가서 찌그러져 있는데, 거기에서 큰 병들이는 찾아도 작은 병 들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서 만두를 굽는 아주머니에게 담당자를 불러갈라고 부탁했으나 이 아주머니는 머뭇거렸고, 내가 인상을 쓰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헤매다가 담당자인 또 다른 아주머니를 데려왔다. 내가 짜증을 적당히 섞어서 선물세트따위 파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사는 물건들을 꼭 이런 식으로 아무 데나 짱박아서 찾지 못하게 하면 되겠냐고 하자 미안해하면서 작은 병 들이 한 상자를 가져다 주겠다고 하고 사라져서는 한 5분 정도 있다가 되돌아와서는 주말 사이에 물이 다 나가버렸다고 대답했다. 월요일 저녁 시간이었는데 만만치 않게 북새통이었던지라 나는, 아예 매진이라고 써붙여 놓았으면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냐고 살짝 신경질을 냈다.
3. 파는 초콜릿들 가운데에는 정말 조악한 것들이 정말 많더라. 미니셸을 무슨 키보드처럼 늘어놓아 포장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꼭 그렇게 해야 되는 걸까…
4. 요즘 소녀시대에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셨다가 다른 때보다 더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은 모 대학 교수에 대한 생각을 했다. 뭐 내가 그 깊은 인문학의 속을 헤아릴 능력은 없고, 그냥 비평이나 문화에 대한, 뭐라고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는 뭐한 덩어리 같이 두서 없는 생각을 뒤죽박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 내내 읽었던 건축 비평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비평 자체의 의미에 대한 글을 읽고는 아 뭐 그런 것도 있구나, 와 비슷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려운 것을 억지로, 또는 강박적으로 쉽게 만들 필요는 없다. 쉽게 바꿔서 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어려운 채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것도 있다. 또 어려운 건 어렵게 재미있고, 쉬운 건 또 그 나름대로 쉽게 재미있어야만 한다(물론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겠지만…).문제는 그 어려운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적당히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아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그 아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인문학적인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적당히 보다 더한 별개의 사안이다.어떤 사람들의 글을 쓰면서 쓸데없는 표현이나 용어들에 가려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길이라라는 믿음을 가진 것 같다. 아니면 그것과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위에 그런 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쌓아서 다른 건 시도할 수 없게 되거나. 용어를 떠나서 나에게는 그냥 글 자체가 재미없었다. 논리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인간미가 없다고나 할까. 표현이 안되는 지식은 사람을 서글프게 만든다.
이게 그런 상황들과 정확하게 연결이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문과/이과 따위의 이분법과 거기에 인문학이나 기타 다른, 기본적으로는 사람으로서 더 잘 생각하기 위해 갖춰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소양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을 충실히 따르면 문과를 나왔다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다거나, 이과를 나왔다고 자연과학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건 기본적으로 그저 문제 해결 능력 아닌가. 생각의 힘이 중요한데, 그 생각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위한 생각인가.
아이고, 계속 생각나는대로 늘어놓았더니 밑천 떨어진다. 부족하다, 부족해…
# by bluexmas | 2010/02/13 01:15 | Life | 트랙백 | 덧글(12)
전 오히려 인문학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하고 살아서 요즘 놀라요. 비단 무슨 학자들이나 유명인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요. 왜 인문학을 한다면서 자기 인생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렇게 생각을 안 하지, 란 의문. 자기 인생에 대해 제가 질문을 해도 ‘모르겠어’로 답하길래 ‘왜 몰라? 생각을 안 해?’라고 물으니 ‘요즘은 생각하기 싫어. 땡기는 대로 할래’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진짜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고 흘러가는 것 같아요. 아흑ㅠ
어떻게 보면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는 것도 문/이과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일종의 생각하는 힘이 아닌가 싶은데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은 참 안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