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오향족발-들쩍지근하게 빛나는 과대평가
족발게이지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 골골거린지가 오래라,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합정족발을 다시 갈까 하다가 웬만하면 같은 집 두 번 안 간다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하고 시청역 근처에 그렇게 잘 나간다는 오향족발을 먹어보기로 했다. 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고 번호표 나눠주고 그래도 족발이 금방 떨어지고… 궁금해졌다.
찾아간 시간이 다섯시 반쯤이었는데, 바로 앞에 두 팀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고 곧 2층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기본 반찬이 쭉 깔렸는데 인상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무우채는 간이 안 되어 있었고, 단무지는 그냥 단무지일 뿐이고, 그 독특하다는 양배추 소스는 기본적으로 족발과 같이 먹기에는 단맛이 너무 강했다. 날씨가 추우니까 불에 올려놓은 떡만두국물이 나쁠 건 없지만, 두어개 들어있는 만두는 참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 그냥 평범한 정도였고 떡은 떡이었다(원래 기본반찬 같은 것들 사진은 귀찮아서라도 안 올리는데 얼마나 성의 없어보이는지 보여주고 싶어 올린다). 반찬부터 족발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소금간이 많이 부족했다.
족발을 썰어서 내오는 정도로 생각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려 중간크기 족발(25,000)이 나왔는데, 여태껏 먹어보았던 어느 족발보다도 까맣고 반질반질했다. 입에 넣어보니 많은 족발집의 족발이 그렇듯 살부분은 기름기가 많이 빠져 뻑뻑한 느낌이었는데, 껍데기 부분은 다른 곳에서 먹던 것들보다 꼬들꼬들한 느낌이 조금 더 강했다. 사람에 따라서 쫄깃쫄깃~질깃질깃으로 평가가 갈릴 정도의 쫄깃거림이었다. 그래서 고기와 껍데기를 다 합치면 족발치고 너무 기름기가 빠진 느낌이랄까? 게다가 씹으면 씹을 수록 계속해서 끈적끈적한 느낌이 남는데, 이건 콜라겐의 끈적끈적함이 아니라 물엿과 같이 끈적끈적한 당류를 넣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그런 끈적끈적함이어서 계속해서 먹을 수록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증폭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족발의 색깔이나 반질반질함이 그냥 간장만을 넣고 조려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장이 아무리 까맣다고 해도, 정말 물을 하나도 안 넣고 간장만으로 조리지 않는 한 식재료의 색이 간장색과 비슷할 정도로 까맣게 될 수는 없다. 손질이 된 돼지족의 색깔은 사람의 살색보다도 옅다. 게다가 정말 간장만으로 조림을 한다면, 아마 짜서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물과 간장을 적어도 1:1의 비율로 섞은 국물에 족발을 삶는다면, 화곡시장 족발집 같은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간에서 짙은 정도의 갈색을 띄는 족발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연 이 색깔이며 끈적거림이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이 집 족발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서 찾아보면 뭔지는 몰라도 오향을 썼다고들 하는데(이름처럼), 다른 건 몰라도 오향이라면 팔각은 기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향료보다 팔각이 훨씬 두드러지기 때문이다(가루가 아닌, 진짜 팔각을 사서 다른 향료들을 두는 찬장에 함께 넣어두면 곧 찬장이 팔각의 냄새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이 족발에서는 오향이든 뭐든 어떤 향료의 냄새로 두드러지지 않았다(그러나 돼지고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그 대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끈적하게 씹히는 껍질의 뒤로 계속해서 들쩍지근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 들쩍지근한 느낌은 갈수록 더해져서, 족발 한 접시를 두 사람이 다 나눠먹을때쯤에는 거슬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실 생각은 아니었지만 족발이 그래도 느끼할 거라는 생각에 막걸리를 한 병 시켰는데, 웬만한 막걸리에는 아스파탐과 같은 인공감미료가 들어있고, 이 인공감미료의 단맛은 설탕의 단맛보다도 금방 질린다(느낌이 다른 단맛인데 이러한 인공감미료는 설탕에 비해 기본적으로 아주 많이 달고, 따라서 희석을 시켜야만 한다). 족발의 들쩍지근한 뒷맛과 이 막걸리에 든 아스파탐의 뒷맛이 손을 잡자 둘을 다 먹을 때쯤에는 정말 질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 집 족발이 다른 데에서 먹는 것보다 양이 적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어디에서든 중간정도 족발이면 두 사람이 정말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 이 집의 족발은 그 정도의 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주방에 들어가서 뭘 넣고 족발을 삶는지 확인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섣불리 넘겨짚어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쓰는 것도 웃긴다. 그래, 나도 알고 있었다. 이건 카라멜 색소가 아니면 날 수 없는 색이나 맛이다. 어쨌든, 이 집의 족발은 내가 아는 한 그냥 향료든 한약재든, 그런 것들을 넣어서만 만든 족발의 맛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뭐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줄까지 서서 기다렸다가 먹게 만드는지 나도 알고 싶었는데, 솔직히 어떤 것에서도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없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종류가 뭐든, 그 정도로 성의없게 만든 반찬을 내놓는 집의 족발이 어느 수준 이상 되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반찬은 정말 뭐랄까, 손맛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늘소스? 모든 족발집에서 새우젓을 내놓으니까 우리는 다르게 가자-라는 의미에 충실하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울리지 않는 소스였다(게다가 마늘향은 왜 그렇게 강한가? 산에 마늘을 넣어두면 마늘의 매운맛이 죽는데, 아마 내오기 직전에 소스에다가 다진 마늘 한 숟갈 풍덩 넣은 듯 마늘이 숨죽을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추운 겨울날 부러 찾아가 기다려서 먹은 이 족발에게 과대평가의 진주반지를 끼워주고, 다음에는 그냥 이름없는 시장의 족발이나 홍대앞의 합정족발에 찾아가기로 했다. 같은 가격이면 제대로하는 중국집의 오향장육이나 장족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분위기인데 그 족발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다.
# by bluexmas | 2010/02/04 09:08 | Taste | 트랙백 | 덧글(18)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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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족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쵸큼 먹고싶으네요.
4대문 안 직장인들의 오아시스긴 하겠지만, 어째 그리 칭찬 일색이었는지.. 좀 허무하네요^^;;
앗… 맛이 변한건가요 저는 엄청 맛있게 먹었던 곳이라 🙂
1시간 기다려도 아깝지 않았거덩요 ㅠㅠㅠㅠㅠ
다시 한번가서 맛봐야 할듯 하네요
저도 여기 한시간 넘도록 기다려서 먹었는데 만두국은 그냥 참기름맛.단무지도그냥단무지.
생양파도 안주고.생체도 그냥 생체, 양배추는 그냥 쌩 양배추..족발..은..양재동이더맛있는듯.
아파트 단지 내에서 팔던 꼬들이 족발이 생각나는군여… 후룹~짤깃~
진한 색을 내기 위해 일부러 카라멜색소를 넣는 곳도 있다더라구요
팔각은 1개만 넣어도 그 향을 알수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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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었겠지요..라고 하기에는 서글픈 세상이네요. 제 입맛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요>3<;;
저 집 건너편 이층에서 작게 할 때와 맛이 많이 달라졌더군요. TV에 한 번 나오고 나서 몰려드는 손님들 덕에 근처에서 근무하던 사람들 맛집이 사라지고 그냥저냥 이름만 남은 가게가 되어 버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