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이 싫어질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특정인에게 우회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데 이 블로그를 쓰고 있을 때, 그런 메시지가 담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그냥 블로그를 밀어버리고 어딘가로 잠수를 타고 싶어진다. 그런 시기가 찾아오면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 자신도 없어진다.
글이 짧은 게 싫어서 몇 가지 잡담이나 해 볼까. 솔직히 난 잡담 블로거가 되고 싶을만큼 잡담이 좋은데 왜 음식 블로거와 같이 된거지?-_-;;;;
1. 누군가는 보잘것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 단 하나의 외부 기고에 대해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쉽게 쓸 수도 없고 또 막 쓰지도 않으며 누군가 들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무엇보다 내가 오늘 죽더라도 그게 내 삶에서 처음 있는, 보수를 받고 쓰는 글이니까. 게다가 건축에 관련된 글이니까.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내 꿈을 디자인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것도 어려운 철학 따위는 배제해서 사람들이 짜증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축 관련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걸 얼마나 좋아하겠나… 능력이 원하는 만큼 받쳐주지 못해서 잘 못쓰면 내가 싫어지는 상황인거지. 아직도 매달 22일경에 책이 나오면 전전긍긍하면서 잘 들여다보지를 못한다. 왠지 민망하거든…
하여간, 얼마 전에 명절때면 늘 카드도 보내고 인사도 드리던 모 회사의 소장님-미국에서 일할때 회사에 찾아오셔서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께 귀국하고 처음으로 연락을 드려서는 이러저러해서 돌아왔는데 요즘은 이런 일을 합니다- 라고 잡지 기사를 보내드렸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씀을 안 하시고는 ‘아 진작 좀 연락을 하지 그러셨어요. 우리 그래도 아주 가끔 사람 뽑기는 하는데-‘ 라고만…
으음-_-;;;;
그래도 난 이게 더 좋기는 하다. 주제가 정해지면 나름 대상을 정해 혼자서 쏘다니는데 그 맛이 또 꽤 좋거든. 왜냐면 목적이 없어도 그러고 다니는 걸 대학교때부터도,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에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목적도 있으니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2. 철학…읽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무감에서 아무개씨의 ‘건축에게 #다’라는 책을 주문했다. 나중에 읽고 꼭 글을 쓰고 싶지만 이 양반, 사실 모교 교수님이다. 내가 졸업반일때 막 학교에 와서 바로 옆 스튜디오를 맡은 사람인데… 꽤 오랜만에 책을 냈다고 해서 조금은 기대를 하고 들춰보았는데 온통 철학얘기라서 사실 좀 실망했다. 왜 꼭 철학일까.
이렇게 말하면 철학따위 전혀 모르는 문외한으로서 반감이나 자격지심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할텐데, 사실 그게 맞기는 맞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조금 더 보태자면, 나는 현상이나 사물의 본질을 찾다 보면 결국에는 철학까지 당연히 그 사고의 깊이가 다다라야만 생각은 하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고 철학이라는 틀을 빌어 자신이 펼칠 주장에 권위를 불어넣기 위한다면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온갖 것들에 붙이는 철학 놀음이 싫지만 특히나 건축의 철학 놀음에는 참 정을 못준다. 그 요즘에 ‘드립’ 이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건축에서 철학드립을 궁극으로 맛보고 싶다면 ‘건축의 존재와 의미’ 라는 책을 찾아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건축가지고 철학드립치는 양반으로는 1인자인 분의 영어로 쓰인 박사논문을 우리말 책으로 낸건데… 이 양반이 내가 나온 학교를 나와서 나는 박사 논문까지 빌려 본 적은 있다. 빌려서 베고 잤다.
3. SBS 스페셜인가 뭔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출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너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큰 조직에서 사람들과 한데 섞여서 일하는 것도 참 굉장히 보람있는 일인데… 나는 왜 그런 쪽으로는 대체 진화가 되지 않은 것일까.
솔직히 나는, 그런 쪽으로 내가 완전히 진화가 되지 않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문제는, 나는 연장자들과의 관계가 늘 좋지 않았다. 대부분 나의 말투나, 별 보잘 것 없는 내 생활태도 등등을 싫어했다. 그들은 내가 진지하기 않고, 비아냥거리며 건들거린다고 말했다. 사실 비아냥거리는 걸 빼놓고는 나머지 둘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속성이기는 한데, 다들 그렇게 말하니 그런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은 참 재미있기는 한데 현실 속에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 좀 불현하기는 하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어쩔 수 없이 조직의 맛을 보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선임병들에게 병신취급받고 후임병들에게는 개 아닌 사람취급받는 뭐 그런 종류였다. 솔직히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거에 대해서 나는 별 미련이 없다. 그건 너무 반복된 패턴이라서 이젠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고 있는터라…
나도 어디든 회사 들어가서 한 10년만 꾹 참고 일해서 과장 정도만 되어도 부하직원들 사랑받는 직장 선배가 될 수 있었을텐데… 그 전에 인격분열이 있어났던지 전전긍긍 일하다 말고 양복바지에 피똥싸고 울면서 퇴직했겠지만… 가장 부러운 사람을 뽑으라면 때로 무신경하게 회사 생활 잘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그래도 무신경하지만 ‘아 내가 조직생활에는 잘 맞는 것 같지 않아여’ 라고 말하는 것도 상처다. 나도 중급관리자정도만 되면 좋은 상사가 될 자신이 있는데, 거기에 올라가기 전에 홧병으로 죽을테니까…
4. 너구리나 끓여먹어야 겠다. 농심에서 새로 가져다 붙인 너구리 마스코트 꽤 귀엽던데.
# by bluexmas | 2010/01/26 02:12 | Life | 트랙백 | 덧글(32)
사실 어떤 블로그든 고정된 객이 있고, 또 으레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알기에 블로그에 징징(…)대거나, 누구를 은근히 비난하는 글을 쓰고싶어지게 마련인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었는데, 어찌 이 뛰어난 예지력 폭풍…
참 그 유혹이 만만치는 않지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글쓰기가 생활이라 웬만하면 절대 잠수 안탑니다.
이번달 책을 아직도 못 받았어요 사실은…저도 서점에서 보았는데 다른 사진으로 나왔더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제 사진들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이걸 쓰게 될까 했는데… 🙂 보고 피드백 주시면 감사드릴께요~
조직사회에 대해 쓰신 글에 대해 많이 공감되네요. 주변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느냐에 대해서는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나? 싶을 때가 있어요.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렵다는게 인간관계라는데 저도 걱정이 되네요…
저 같은 사람 빼놓고 대부분은 다 잘 사니까 걱정마세요 히히히.
비공개 덧글입니다.
부하사원은 안생겨요…..ㅠㅠ;;;
그래도 좋아하시는 글을 쓰시고 계시니 화이팅~~!!!
전 블로그를 잡담 정도만으로만 이용하고 있어서…^^;;
잡념이 많을 땐 역시 먹고 자면서 잊는 게 좋아요..-_-;
짜파게티+너구리 조합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블루님도 한 번 시도를…
글이란게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가장한 특정인ㅋㅋ)를 향한 넋두리나 푸념을 하고싶을 때도 남기기도 하잖아요…
다들 그런 거 아닐까요? 🙂
일단은 조용히 비공개로……-ㅅ-;;
조직 속에서는 아주 작은 이유만으로도 너무 쉽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같이 일하기로 했던 선배에게 뒷통수 제대로 맞은 후(그 선배는 그게 뒤통수 때린건줄도 모를거예요, 제 기준으로는 충분한 뒷통수여서 그후로 오는 연락 안받았던거라..=3=)로는 더더욱 직장생활은 머리가 아파져서.. 그 선배 회사 아주 잘되고 있는 것 볼때는 더요, 그냥 편하게 나 혼자 대충 벌어 살자~ 하고 대충대충 생활비만 벌고있네요=3=;;
음…제가 그림을 대충 그려 올리는 것을 꺼려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