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llations

오후에 잠시 청바지 한 벌과 스웨터 두 벌의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러 이마트에 나간 것 빼고는 줄곧 집에 있었다. 모두 조금 더 입었어야 하는 건데 다른 건 몰라도 냄새가 배는 상황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청바지는 사실 지난 주에 술을 좀 열심히 쳐먹고 토해서 더더욱 어쩔 수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청소를 마쳤다. 시작은 했지만 정말 여러번 끝을 못 맺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게으르다. 오늘도 먼지가 뭉쳐져 굴러다니는 책상 밑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하기 싫은데 꼭 해야하나 한참을 망설였다. 중간에 낮잠까지 곁들여가면서 무려 저녁먹기 전까지 청소를 했다.

자다깨다를 되풀이했다. 윗집은 가면 갈수록 시끄러워지고 있지만 이젠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서 괜찮은데, 정작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건 집안 곳곳에 놓인 감압기의 그 미세한 떨림에서 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소리이다. 110볼트 기본인 가전제품을 전부 가지고 들어와서 쓰려니 감압기를 달았고, 그러면 그냥 전자제품의 스위치를 켜기 전에 감압기의 스위치를 올려야 하는 한 단계를 더 거치는 것도 귀찮기는 하지만 전자제품을 쓰지 않을때 나는 그 아주 들릴락말락할 정도의 웅~하는 소리가 더 거슬린다. 특히나 텔레비전을 물려놓은 감압기는 용량이 커서 더 그렇다. 나는 언제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누운채로 잠드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그게 좀 어렵다. 텔레비전이야 콘트롤러로 끌 수 있겠지만 감압기는 그럴 수 없으니까, 자다말고 일어나 꼭 스위치를 꺼야만 한다. 안 그러면 가끔 나쁜 꿈을 꾼다.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주 작은 행복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꼭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언제나 그런 진동 또는 떨림 같은 걸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 실체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이 있고 또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일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를테면 무엇인가를 좇는 마음이나 설레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요즘은 그게 무엇이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아니면 내 능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루거나 바랄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레임을 품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by bluexmas | 2010/01/26 01:08 | Life | 트랙백 | 덧글(11)

 Commented by F모C™ at 2010/01/26 01:57 

예전에 110볼트인가 쓰다가 갑자기 전체적으로 승압공사를 했는데, 쓰던 가전제품이 모두 110볼트라 쓰게 됐던 그게 감압기였나봐요, 트랜스라고 불렀던것같아요. 집에 꽤 여러개가 있었는데 그때는 리모콘이 없는 TV를 쓰고 있어서 어차피 TV끄려면 일어나야했으니까 조금 귀찮을 뿐이지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들 그냥 켜놓고 암 생각없이 썼는데, 저 혼자 밤에 그거 빨간 불빛이 싫어서 끄란말이야!! 하고 버럭대면서 꺼댔더랬어요;;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 설레임, 그런 거라도 없으면 왠지 가뜩이나 삭막한 세상 더 심심하겠지 싶은데요( ”)a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9 01:31

옛날 집들은 다 110이었죠…

기대나 설레임이 있으면 좋은데 실망도 커서 그게 문제죠 뭐…

 Commented by F모C™ at 2010/01/29 13:17

물론 실망이야 뭐… 오호호호호홋orz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기는 하지만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1/26 10:01 

청바지도 드라이하시는군요 전 스웨터도 세탁기에 넣어버려요 ^^;

어느날 감압기를 전부다 꺼 놓으면 무지 조용할 것 같네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9 01:32

아, 모셔야 될 청바지가 몇 벌 있어서요.

감압기는 쓸 때만 켰다가 잽싸게 끄곤해요. 은근히 시끄러워서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1/26 15:21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리니 삶이 좀 지루해졌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9 01:32

삶은 종종 지루해져서 좀 문제죠…

 Commented by  at 2010/01/26 19:57 

저도 90년대 초반에 산 도란스;;를 아직 끼고 살아요. 감압이 필요한 게 딱 두 가지인데 하나가 며칠 전 고장났습니다-_-;;; 나머지 하나가 충전해야 하는 거라서 끼워 놓고는 까먹는 일이 드문드문 있어요. 자다 깨서 끄는 이 불필요한 예민함 ㅠ_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9 01:32

저도 자다 깨서 끄곤 합니다. 남는 게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필요하시면…

 Commented at 2010/01/26 21: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9 01:32

아이고 고쳤습니다. 민망하네요-_-;;;; 그 소리가 은근히 사람 신경 쓰기에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