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e & Julia-음식이 부족한 음식 영화
음식과 너무 가까운 영화-그러나 음식이 어째 부족한 느낌인-이므로 영화밸리보다 음식밸리에 올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해야될 얘기도 영화 얘기는 아니고…
현지에서는 나온지가 벌써 몇 만년이라 DVD나 기타 다른 방법(물론 돈을 내고 보는-)으로도 볼 수 있는 걸 굳이 시간 날때까지 기다렸다가 극장에서 본 건 좀 큰 화면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봐야 광화문 시네큐브라면 뭐 큰 편도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감상적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분위기로만 일관하고 있어서 나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줄리아 차일드나 줄리 파월 모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기까지 고난이 없었을리가 없을텐데 감독은 마치 그런 것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 지극히 가볍게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 분위기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감독도 신경이 쓰였는지, 중간에 친구네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는 줄리아 차일드의 모습이 잠깐 나오지만 그 아무런 상황 설정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장면은 정말 뜬금없다고,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가려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가볍게만 가던가… 같은 맥락에서 줄리 파월의 기사가 신문에 나고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오다가 어떤 신문기자가 ‘줄리아 차일드 자신이 블로그의 존재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와 같은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도 쓸데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내 수준에서는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깊이의 갈등이며 고난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영화는 끝에서도 그저 밋밋하기만 하다.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줄리아 차일드며 줄리 파월의 얘기를 벌써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굳이 신경을 써서 보아야 할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히 고난과 갈등이 필요할텐데, 의도적으로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느꼈다면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본적으로 내가 줄리아 차일드의 업적을 미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이 영화는 아예 그것마저도 너무 가볍게 다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줄리아 차일드 그 특유의 말투며 분위기로 영화를 도배하기 위해 메릴 스트립을 최대한 그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연기하도록 만들었으면서 다른 여주인공(줄리 파월)은 에이미 아담스 같이 귀엽고 예쁜 배우를 써서 미화시켰기 때문이다. 아예 죽은 사람도 아니고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사람이면서, 또한 그 사람의 용모나 분위기가 블로그에도 묻어나고 결국 그것이 등장 인물이 되어야 할텐데(줄리아 차일드를 최대한 ‘재현’ 하는데 신경쓴 제작진이며 감독이라면), 마냥 예쁜 에이미 아담스를 보면서 저 사람이 자신의 어떤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는 어떤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미화’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지난 몇 년 동안 매년 봄이면 푸드 네트워크의 ‘Chefography’ 특집에서 줄리아 차일드의 모습이며 일대기를 지겹게 본 사람으로서는 이 영화 뿐만이 아니라 줄리아 차일드의 전체 업적이며 삶이 미국 중심적인 시각에서 미화 또는 과대평가 되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녀가 프랑스 요리의 대중화라는 업적을 이룬 것만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철저히 미국적인 시각-조금이라도 공이 들어가는 음식은 전혀 만들려고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았을때 그런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많은 미국화된 것들처럼 이 역시 하나의 ‘미국화된 프랑스 요리’ 정도로만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때만 해도 자국의 요리세계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법한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프랑스 음식이라는 점에서 느낄법한 자긍심이나 ‘레이첼 레이’와 같이 수퍼마켓에서 일하다가 발탁되어 거의 연예인에 가까운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스러나 만들어내는 음식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별로 없는), 말하자면 ‘원래는 우리 같았던 보통 사람’에게 동정표를 주는 미국 사람들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그녀의 이름을 따서 상까지 만든 바로 그 줄리아 차일드가 비단 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미국을 등에 업고 과대평가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치고 팔짝 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광고를 보니 줄리아 차일드를 ‘최고의 셰프’ 라는 식으로 일컫던데, 엄밀히 따지지 않더라도 줄리아 차일드는 주방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요리사 cook’와 ‘주방장 chef’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주방장을 비롯해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요리사’가 될 수 있고, 그 가운데 음식점 주방 같은 곳에서 그 요리사들을 지휘하는 요리사가 바로 ‘주방장’ 이 되는 것이다. 줄리아 차일드는 음식점에서 일해본 적도 없고 다른 요리사들을 지휘해본 적도 없으므로 주방장이라는 칭호를 붙힐 수가 없다(심지어 위키피디아에서도 그녀를 ‘셰프’라고 일컫고 있는데, 이는 맞는 정보가 아니다).
어쨌든, 내가 정확하게 어느 만큼의 기대를 하고 이 영화를 보러 갔었는지 보고 나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만으로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감독의 이름만 낯익다고 생각했지 무슨 영화를 찍었는지는 몰랐는데, 나중에 찾아보고 뭐 그랬구나… 싶었다.
# by bluexmas | 2010/01/20 09:31 | Taste | 트랙백 | 덧글(28)
cook과 chef는 정말 다른가봐요. 그게 그거라 생각했는데 블루마스님 글 보니 구분이 되어야 할것같네요^^;
그래서 책도 샀지요. 책이 너무 두꺼운데다 영어라 몇 페이지 읽는데 반나절이 걸리긴 하지만, 나도 프랑스요리책이 하나 있다. 라는 기분을 들게 하기엔 딱 좋은.
전 줄리아 차일드의 자서전이나 줄리 파월의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흥미롭게 봤거든요. 제가 보기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겨넣느라 영화가 밋밋해지지 않았나 해요. 거기다 음식도 별로 안나오고… 차라리 줄리아 차일드 일대기를 그려서 그 인생의 음영을 잘 살렸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줄리는 – 제아무리 귀여운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했지만! – 너무 짜증나고 속좁은 인물이더군요. 별로 그담에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지가 않아요. 뭐 감독이 너무나 잘 알려진 줄리아 차일드의 일생을 적당히 생략하고 줄리를 끼워넣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요.
저는 저의 의견을 글로 쓰기에는 표현력 부족이라던지 하여간 두서없이 쓰게되던데..ㅠ
Bluexmas님도 그렇고 루아님도 그렇고..아..진짜
어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메릴 여사가 상타는 걸 보고
좀 멀지만 한번 가서 볼까 고민하다가…메릴 여사의 이미지 변신이 언제부터인가 잘 되지 않은 관계로,약간 졸기는 싫어서 딴 영화 봤는데.
블루마스님 글 보니 영화 하나 다 본셈 칠랍니다.흐흐
저도 블루마스님처럼 읽는 재미가 있는 포스팅을 하고 싶은데^^;
줄리 & 줄리아 둘 다 잘 모르는 분이고 영화도 아직 덜봐서 내용에 대한 댓글은 못하겠지만 왠지 이 글 읽다보니 bluexmas님 주방”장” 하시면 완전 무셔울거 같아요. 크크크
그래도 한 번 보세요.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설마 제가 파스타에 나오는 이선균만 할라구요?^^
요리 영상은 확실히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치만, 캐릭터들도 사랑스럽고..뭐랄까, 전 영화에서만큼은 낭만이 있었으면 해요.
다큐영화도 물론 좋지만, 현실에서 조금 붕뜬, 꿈꾸게하는 영화도 행복하지 않나요?
호호호
에이. 블루님도 재밌었으면 좋았을걸! 아쉽네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음식이 많이 나올줄 알았는데 음식도 그닥 나오지 않고, 전 줄리아 차일드를 잘 몰라서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는데 보고나니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에 ‘chef’가 아니라 동네에 요리잘하기로 소문난 어머니들이 나와서 하던 요리프로그램이 생각나더라구요. 뭐 그 점에선 미국에서의 줄리아 차일드의 위상을 잘 모르니 뭐라 말하지는 못하겠네용..
그래도 부부애 하나만큼은 잘 표현한 듯-_)a 끝까지 남편이 바람이라도 피우는게 아닐까,하고 조마조마 했습니다만 그런 일은 안일어나더라구요 ㅎㅎ 같이 본 남자친구가 줄리아의 남편이 참으로 부럽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도 그런 능력있는 남편이 되고 싶다고. ㅎㅎ 감독이 조금만 설을 잘 풀었으면 좋았을텐데- 두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인 건 맞는거 같긴 합니다 ㅎㅎ
부부애가 너무 강조되어서 영화가 구려졌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요리하는 부분을 더 강조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