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이 샛노란 튀김
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퍼마켓이 하나 있는데, 순대나 튀김, 떡볶이 등도 내놓고 판다. 이곳의 튀김은 노점에서 파는 것들이 다 그렇듯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노란색을 띄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본 숭어의 알 색깔처럼 샛노랗다. 여름철에 지나가면서 볼 때에는 그 색깔이 그래도 그럭저럭 참아줄만 한데, 이런 겨울날에는 때로 도저히 참을 수 없을만큼 짜증이 나게 만든다. 아예 바람이 쌩쌩 불고 추운 날이면 그래도 낫다. 그러나 오늘처럼 날이 살짝 풀려서 그동안 쌓인 눈이 녹아 질퍽질퍽해진 거리를 간신히 중심 잡으면서 걸어가다가 그렇게 생뚱맞도록 샛노란 튀김이 쌓여 있는 걸 보면 짜증이 스스로가 싫어질만큼 치밀어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눈치 없는 여자애를 소개팅에서 만났는데 쉬지 않고 옆에서 떠들어대는 걸 참을 수 없으면서도 예의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서 그냥 참고 참고 또 참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거참 뭐 별걸 다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네…라고 스스로를 비웃으면서 지나가는데 조금 더 밑에 있는 야식집의 유리창에는 새우’젖’ 찌개를 판다고 붙여놓았다. 새우도 포유동물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냉장고에서 열흘도 넘게 있다가 결국 먹고 싶지 않아 어제 버리고 만 홍새우찌개가 생각났다. 차라리 상했다면 버리면서도 아깝지는 않았을텐데 의외로 멀쩡했다. 그들이 포유동물인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버리려고 봉지에 담을 때 보았던 그들의 눈은 포유동물의 그것처럼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새우도 포유동물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포유동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뜩이나 쉽지 않은 세상만사가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좀 난감했다. 다음 번에는 야식집에 들러 새우’젖’찌개를 시켜 먹어보면서 물어봐야되겠다.
또 한 가지의 아주 귀찮은 일을 끝냈는데 하루 종일 짜게 먹어서 그런지 물을 연신 들이키다가, 코크 제로를 마시게 되었다. 다이어트 청량음료는 종류에 상관없이 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듯한 그 특유의 느글거림을 가지고 있어서, 탄산의 시원한 느낌 덕분에 속을 좀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계속 마시면 결국 마시기 전보다 속이 더 느글거리게 된다. 삶 자체가 귀찮은 건 아닌데 귀찮은 일들이 삶도 귀찮은 것처럼 느끼게 만들때에는 정말 너무 귀찮아진다. 귀찮아지는 것마져 귀찮을 정도로 귀찮아진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었으면 좋겠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것도 귀찮다. 하물며 화장실 가는 건 오죽하겠나. 누워서 먹을 수는 있어도 카테테르를 꼽지 않는 한 누워서는 쌀 수 없다는 건 먹기보다 싸기가 더 중요하다는 반증인걸까.
# by bluexmas | 2010/01/19 00:34 | Life | 트랙백 | 덧글(20)
다양하게 튀긴 음식을 즐기는 아시아와는 달리 여기선 굽는게 대세인 나라라서..
감자튀김, 생선튀김, 돈까스 이런거 말고는 흔하지가 않네요.. 여기선 샛노란 튀김보다는 샛갈색 튀김이..ㅎㅎ
비공개 덧글입니다.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헌데 엄마붙들고 숭어알이 노랗냐고 여쭤봤더니 숭어알은 노랗지 않고 주홍빛이 돈다고 하시던데.. 숭어알의 색은 왠지 미궁속으로..( ..)
그렇게요 이상하게 제가 텔레비젼에서 본 숭어알은 잡자마자 배를 갈라서 나온건데 너무 노란 색이어서 기억에 생생하거든요.
그가 말하길 “My grandma’s kimchi tastes specially good, my mom says, ’cause she she uses many chopsticks.”
나 “Chopsticks?”
그 ” Yeah, when other people usually use hands, I guess…”
나 ” I don’t get it…”
그 ” Mom says 할머니 킴치 젓갈 마니 써서 맛잍타구…”
약 3초뒤에 모두 뒤집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