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낮술-뇨끼로 때운 끼니
언어유희를 하고 싶어서 제목을 저렇게 붙였지만, 사실 뇨끼는 끼니를 때우려고 만들기에는 좀 손이 많이 간다(물론, 한 번에 무더기로 만들어서 얼렸다가 먹으면 나중에는 끼니를 때우고자 할때 쓸 수 있다…). 어떻게든 감자를 익혀서, 으깨 밀가루랑 섞어 반죽을 만들고, 또 그걸 잘라 특유의 모양을 만들어줘야 하니까.
사실은 음식점에서 뇨끼를 먹어본 적도 없어서 어떤 뇨끼가 진짜 뇨끼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일단 책들을 뒤져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감자를 익히는 방법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왕마초처럼 생긴 이탈리아 조리사가 낸 책이나, 우리나라에서 잘 나간다는 기자출신 이탈리아 음식 조리사의 책을 보아도 감자를 삶아서 익힌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감자를 삶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정통성 따위는 솔직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정통성이나 전통도 중요하지만, 그게 비이성적, 비과학적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국물을 어떻게든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료를 물에 넣고 삶는 조리법은 거의 쓰지 않는다. 재료의 맛이나 영양이 다 그 국물로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뇨끼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으깬 감자는 또 감자를 삶아서 만들지 않나… 조금 헛갈린다. 그러나 으깬 감자의 경우에는, 특히 미국에서 선호하는 식감을 생각해 볼때 거의 수프에 가깝도록 부드러러워야 하므로 물에 삶아야 할 듯…)? 그래서 일단 정통 이탈리아 조리법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접고, 지극히 미국화된 America’s Test Kitchen의 ‘The Complete Book of Pasta and Noodles’를 들여다보았다. 서른 여섯 번을 시험해보아 이들이 뇨끼에 대해 내렸다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찌거나 삶는, 그러니까 물기를 감자에 더하는 조리법은 반죽을 만들때 밀가루를 더 많이 더해야 하고, 감자맛을 희석시킨다. 따라서 오븐에 감자를 굽는 것이 좋다(감자 무게가 삶으면 0.5퍼센트 늘고, 오븐에 구우면 15~20퍼센트 줄어든다). 오븐에 구우면 감자의 맛이 훨씬 더 진해진다. 정통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2.껍질은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벗기는 것이 좋다. 감자를 구우면 껍질이 살에서 뜨는데, 이때 벗기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달라붙기 때문인데, 뜨거운 갑자껍질을 벗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맛을 위해서라면 뭐…
3. 감자를 으깨는 데에는 ‘ricer’와 같이 작고 균일한 알갱이를 만드는 도구가 좋다. 왜 그런지 따져보려면 감자의 녹말 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하는데, 그건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글이 되고도 넘칠만큼 길어서 일단 오늘은 넘어가기로 하자.
4. 반죽을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를 섞을 때에는, 감자를 한 김 날아갈 정도 식혀야 한다. 안 그러면 끈적끈적해진다(이 끈적끈적함이 감자를 익혀 으깬 감자와 같은 음식을 만들때의 가장 큰 적이다. 역시 감자의 녹말세포와 관계가 있다…).
5. 솔직히 음식점에서 뇨끼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만, 뇨끼라는 것이 기본적이 가볍고 폭신폭신해야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반죽할 때 가급적이면 손을 많이 안 대는 편이 좋다. 믹서 등의 모터가 달린 공구 사용 금지.
6. 계란? 5를 생각해 볼때 계란은 넣지 않는 것이 좋다(인터넷을 보니 계란 넣는 조리법들이 돌아다니던데…).
7. 밀가루는 가능한 적게 넣어야 한다.
8. 감자도 녹말의 함유량이 다양하므로 보다 적합한 품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감자가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그냥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노란감자를 썼다.
재료
감자 900그램
밀가루 1 1/4컵
소금 1작은술(좀 부족한 것 같았다…)
만드는 법
1. 오븐을 200도로 예열한다.
2. 감자를 45분에서 1시간 정도 굽는다.
3. 꺼내자마자 바로 껍질을 벗긴다.
4. 큰 그릇에 담아 으깬다. 15분 정도 식힌다.
5. 소금과 밀가루를 감자 위에 뿌리고, 손으로 가볍게 반죽한다. 감자가 끈적거릴 경우에는 밀가루를 조금씩 더한다.
6. 반죽덩어리를 넷으로 나눠, 하나를 두께 2센티미터 정도의 가래떡 모양으로 길게 늘린다.
7. 6을 2센티미터 정도로 토막내어 포크나 뇨끼 만드는 나무판에 대고 굴린다. 표면에 골이 져 있는 다른 파스타처럼 뇨끼에도 골을 넣어줘야 소스가 잘 달라붙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나무판이 없으니 포크에 굴려봤는데, 감자로 만든 반죽이 부드럽지만 약간의 반발력이 있어 꽉 누르면 부서지고, 살짝 누르면 골이 생기지 않았다. 궁리 끝에 과자 구울때 쓰는 식힘망위에 뇨끼를 올려 손바닥으로 살짝 굴렸다. 이러면 정통 뇨끼와는 거리가 멀지만 애초에 정통 따위는 내가 찾는 게 아니었으므로…
8. 물을 넉넉히 불에 올리고, 역시 소금을 넉넉하게 넣어 뇨끼가 떠오를 때까지 삶는다. 3분 정도 걸린다.
9. 소스는 토마토 바탕으로 한 것도 괜찮고, 주로 녹인 버터와 세이지 등의 허브로 만드는 소스도 많이 쓰는데 나는 세이지 대신 로즈마리를 썼다. 위의 조리법을 바탕으로 만든 분량의 뇨끼면 버터 6큰술을 녹여, 로즈마리를 적당하게 넣고 향이 배어들도록 한 다음, 삶은 뇨끼를 접시에 담고 소스를 뿌린 뒤, 치즈를 적당히 갈아서 얹어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든 뇨끼의 식감은, 좀 기묘했다. 탱글탱글하면서도 약간 쫄깃거리기는 하지만 또 입에 넣으면 폭신폭신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감자수제비도 결국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손이 좀 많이 가서 자주 만들어보고 싶지는 않다. 버터소스로 만들 경우, 샤르도네이랑 잘 어울린다. 신세계 본점에서 산, 샤르도네이와 무엇인가(그레카니코?)를 섞은 걸 같이 마셨는데(싸구려), 샤르도네이로 body를 더하고 다른 포도로 액센트를 준, 뭐 그런 느낌이었다.
# by bluexmas | 2009/12/30 10:58 | Taste | 트랙백 | 덧글(54)
저도 뇨끼 정말 좋아하는데, 맛있는 집 찾기가 좀 힘들더라구요~
나중에 기회되면 저도 한 번 도전해봐야겠어요^^
근데 사진에서는 고구마도 같이 삶으셨네요. 그걸로는 또 다른 요리를 만드신 거에요?
아 고구마뇨끼는 괜찮을라나요?
맛있겠당~~냠냠~
(오늘의 덧글상인데요!)
날도 추운데 그냥 감자수제비나 해먹어야겠어요 -_ ….;;;
손이 가지만 시도해보고 싶은데… 어려워 보여요 ㅠㅠ
감자를 그냥 갈아넣지 않고 한번 찌거나 굽거나 해서 넣는건 폭신폭신한 식감을 위해서겠죠? 나름 감자수제비 같이 생감자를 갈아넣고 쫄깃하게 먹는 것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사실 어떤게 ‘정통’의 뇨끼 맛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수제비 같이 집집마다 각자 알아서 해먹는 음식일텐데 정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것도 같고…. 그래도 궁금하긴 해요 정석이랄까 기본의 맛이라는게 어떨지ㅎㅎ
비공개 덧글입니다.
저는 만들어볼까 하다가 매일 그냥 감자만 삶고 말아요. ^^::: (귀찮음이란 무서운 병인듯 합니다!!!)
뇨끼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조리과정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니 맛이 상상되는군요: )
특히 버터와 감자는 환상의 궁합!
요즘 시간나면 bluexmas님 레시피 정독하면서 그 내공에 감탄하고 있어요. 나중에 정말 charcuterie 자료 좀 빌려주세요.
&.. 마초처럼 생긴 이탈리아 요리사라면 마리오 바탈리인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사실 책입니다. Michael Ruhlman이 누군가와 함께 쓴 것인데 내용이 충실해요. 저온 저장고가 시골에 있으시다니 제대로 만들 수 있으시겠어요. 언제 한 번 같이 대량 만들어보실까요? 🙂
개인적으로는 지난번에 하루 한정판이었던 글에 너무 감명받아
후기를 남기러 왔더니 싹 사라지고 없네요.정말 한정판이었군요.^^
잘 보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