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제과점과 식빵의 두 가지 참맛
김진환 제과점
나름 홍대앞과 지금은 땡땡거릴 일이 없어진 철로며 땡땡이집 근처를 나름 15년 넘게 드나들면서도, 13년인가 되었다는 김진환 제과점을 못 본 이유는 스스로 납득하기가 힘들다. 제과점의 유일한 선택인 식빵을 사면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관심이 없어서 안 보였을 거라는, 은근히 깨달은 사람 분위기가 나는 대답을 주인장으로부터 들었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졌다시피, 김진환 제과점에서는 식빵 단 한 종류만 만든다. 이 빵은, ‘Pain de Mie(Bread of Crumb)’나 ‘Pullman Bread’ 로 불리는 하얀 샌드위치나 토스트용 식빵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딱딱한 껍데기(crust)가 생기지 않도록 뚜껑까지 완전히 닫을 수 있는 틀에 반죽을 넣고 구워 빵이 반듯한 직육면체가 된다. 조리법을 찾아보면 계란을 넣거나 넣지 않는 차이가 있는데, 설탕과 지방을 다른 반죽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넣어 살짝 느껴질 정도의 단맛과 부드럽고 촘촘한 식감이 두드러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밀가루도 밀가루지만, 지방을 넣어 만드는 빵의 경우, 가격에 따라 지방의 질이 차이가 나고, 곧 거기에서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덩어리에 2,3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과연 어떤 정도 맛을 지닌 빵을 먹을 수 있을까 굉장히 궁금했다. 바꿔 말하면, 이 정도 가격의 빵이라면 현실적으로 버터를 넣어서 만들 수 없을 확률이 거의 100%이기 때문에 그걸 알고서 먹는 맛이 어떨까 궁금했다고나 할까(사실은 은근슬쩍 물어보았으나 만족할만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어쨌든,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주시는 걸 받아 갓 구운 걸 들고 와서 찌부러든 걸 그 다음날 아침에 먹었는데, 훌륭했다.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가격에서는 최고의 식빵이라고나 할까? 어떤 사람들은 닭가슴살처럼 결대로 쭉쭉 찢어지는 식빵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식빵의 딱 적당히 촘촘한 정도의 속살 식감과, 아주 살짝 바삭거리는 껍데기의 조화가 더 좋았다. 버터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지방의 달콤한 풍미가, 식빵을 베어물었을때 물씬 풍겼지만, 뒷맛은 깨끗했다. 아직도 버터가 들어갔을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 비밀은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이 빵만 15년 가까이 만든 사람의 노하우를 내가 어찌 캐낼 수 있을까…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기억은, 언젠가의 글에서도 썼지만 어린 시절 봉지를 열 개 모아 가져가면 빵 한 덩어리를 주던 바로 그 빵집의 빵맛이었다. 홍대 근처에 빵집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저 흰식빵이라면 다른 집 평범한 식빵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포스’ 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식빵이라고 그냥 좀 과장되고 방정맞게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 가지 빵만 오래 만든 분이 그 노하우를 가지고 보다 좋은 밀가루와 지방을 써서 격이 높은(뭐 식빵에도 하이엔드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식빵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다. 참, 나도 식빵을 길거리에 내놓고 식히는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 위치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덧붙이면, 홍대에서 신촌쪽으로 갈때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은, 산울림 소극장 앞에서 길을 건너 지금은 없어진 철길이 가로질러 갔던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철길 자리를 지나자 마자 바로 왼쪽에 있다.
식빵의 두 가지 참맛
나에게도 김이 채 나가지 않은 따뜻한 식빵을 주셨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랬다는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에게는 갓 구운 따뜻한 식빵이 가장 맛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뭐 굳이 따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생각은 정서적으로는 맞고 식도락적으로는 틀리다. 빵이라는 것이 물과 밀가루, 그리고 효모와 기타 다른 재료가 발효라는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을 통해 한데 어우러져 맛을 이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 빵의 진짜 맛이라는 것은 굽고 완전히 식을때까지 기다려야 나온다(이것은 사실 발효뿐만 아니라, 빵굽기의 과정인 녹말의 젤화나 수분의 증발 및 빵 내에서의 분배까지 고려했을 때 그런 것이 아닐까?). 따뜻한 빵을 좋아한다면, 굽거나 다시 데우면 된다. 얼마 전에 모 디저트카페의 주방장님하고 이 주제를 놓고 얘기를 잠깐 나눴는데, 일본에서도 갓 구운 빵을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실제로 빵맛은 식은 다음이 진짜라는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이 문제에 대해 한참 생각을 해 봤는데, 결국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을 맛 뿐 아닌 전체적인 경험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갓 구운 따뜻한 빵을 먹어서 정서적/감정적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뭐 그것도 결국은 빵의 참맛… 이 아니겠냐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뭐 별 것도 아니고, 먹어서 즐거우면 또 그만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빵을 굽더라도 오븐에서 갓 꺼내서 맛을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 by bluexmas | 2009/12/28 10:04 | Taste | 트랙백 | 덧글(41)
그냥 좀 덜 맛있는 라면 먹고 말죠 뭐. ;;; 하지만 저는 의지력이 빈약해서 집에서 빵을 구우면 오븐에서 막 나왔을 때 절반 정도는 먹어버리고 맙니다.
맛있으면 드셔도 됩니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선택이지요.
어디 납품하는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로군요 -_ ;;
몇년간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 사먹어 볼 생각은 안했는데
다음에 가게되면 먹어봐야겠네요 ㅎ
아직도 지방의 미스테리를 풀지 못하고 있고 어차피 저는 흰빵을 안 먹으니 그렇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선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왠지 식은 편이 더 맛있더라도 따뜻한 때 받아든 그 정서적인 느낌도 맛에 한방울 보태주지 않을까 싶어요.
집에서 빵은 딱 한번 구워봤는데, 굽자마자 확인해보려고 구석탱이 잘라서 맛보고 식은 후에도 맛은 봤는데.. 이 경우는 처음 구웠다는 뿌듯함에서인지 맛의 차이를 기억하지 못하겠네요^^; 말씀하신대로 어느쪽이거나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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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침에 갓 구운빵 사서 드시면 너무 좋지요^^ 정말 길에 내놓고 말리는 건 좀 재고해봤으면 좋겠어요.
좋은 건 갓구운빵의 냄새라기 보다는 빵이 구워지는 동안 오븐에서 풍겨나오는 냄새인 것 같습니다. 둘을 구별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미처 식지도 않은 빵에 달려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항상 후회하는 것으로 끝난답니다:)
사실 껍데기가 있는 빵은 흔히 ‘노래한다’ 는 표현이 있듯 오븐에서 꺼내고 빠직빠직 소리가 나면서 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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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식빵같은 건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지요-_-;;;
마들렌을 굽자마자 먹으면 그냥 포슬포슬한 빵맛인데 하루이틀 두었다 먹으면 정말 촉촉하고 맛있더라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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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하시면 안될텐데…-_-;;;
인상적인 글귀입니다
그럼 다음엔 반은 그 자리에서, 반은 다음날 아침에 데워서.
이렇게 해봐야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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