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서양 골동 양과자점, 이스트와르 당쥬
지난 주에 청기와 주유소 뒷편에 새로 생겼다는 디저트 카페, ‘이스트와르 당쥬’ 에 가 보았다. 사람들에게 얘기들었던 것과는 달리 딱히 이탈리아식 디저트를 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어떤 음식을 하든지 상관없이 굉장히 솜씨가 좋은 디저트를 맛볼 수 있어서, 그게 딱히 무엇인가는 결과적으로 그다지 큰 상관이 없었다. 참고로 주방장님은 일본에서 15년 정도 일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 가게를 여신거라고 들었다.
일주일 동안 세 번에 걸쳐 가서 네 다섯 가지의 케이크며 무스 종류를 먹어 보았는데, 일단 가장 두드러지는 느낌은 디저트들이 전반적으로 달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금이나 설탕 모두 음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조미료지만, 특히 설탕이 과자나 케이크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단지 단맛 뿐 아니라 수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데에서 비롯된 조리법은 그게 뭐든 설탕이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 단맛을 좀 줄여보겠다고 설탕을 너무 많이 줄이면 결국 수분도 줄어들어 촉촉한 디저트를 만들 수 없게 된다(개인적으로는 25%이상 줄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설탕을 줄이는 것이 늘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한 번 가 보고 다시 가 보고 싶을만큼 흥미가 생기지 않는(늘 거기에 대한 글을 올리는 모 블로거에 의하면 바로 길 건너에 2호점이 생긴다던데, 그럼 한 번 가보고 싶어질까?), ‘비 스위트 온’ 에서 한다고 알려진 앙쥬. 2년 전 북해도 여행을 갔을 때 백화점 지하에서 먹었던 유키 푸딩이 생각났는데, 치즈의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두드러졌다. 나는 솔직히 왜 거즈로 이 디저트를 감싸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여기에서도 거즈로 싸려고 했으나 올이 자꾸 빠져서, 재봉질도 하고 크레이프나 다른 것으로도 싸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국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지금처럼 홀랑 벗겨놓은 채로 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콜렛 크림과 레몬 케이크. 초콜렛 크림이 여기에서 먹어본 것들 가운데 가장 맛있었는데(역시 달지 않고 초콜렛 향이 굉장히 두드러졌다), 레몬 케이크와는 환상적인 조합이지만 케이크가 조금 마른 느낌(냉장고에서 수분이 날아갔다는 설명을 들었다)이고 레몬향이 살짝 부족해서 아쉬웠다. 케이크의 레몬향이 조금 두드러지고, 겨울이니까 낼때 따뜻하게 데워서 초콜렛 크림과 케이크를 중간에서 이어줄 크림 같은 걸 곁들여 주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림새도 조금 아쉬웠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케이크 위에 올린 크림은, 나에게는 조금 덜 올린 느낌이었는데 이것도 나라마다 그 올리는 정도가 다른 듯? 아니면 케이크가 뻑뻑한 걸 상쇄하려고 조금 덜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Prince’ 라는 이름의 딸기 케이크. 겨울이라 케이크에 쓸 재료가 딸기 밖에 없어서 아쉽다는 얘기를 나눴다. 너무 시지도, 또 너무 달지도 않은 얌전한 케이크였다.
녹차 무스는, 위에는 폭신폭신한 무스가 그리고 밑에는 쫀득거리는 녹차 커스터드가 깔려 있었는데 장식으로 얹혀 있는 로즈마리의 향이 녹차향과 너무 잘 어울려서 인상적이었다. 밑에 깔린 커스터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나 좀 복잡해서 그런지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
티라미스는 사람을 만나 일 얘기를 하면서 먹느라 사실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의 영향이 깃든 디저트라면 닥치고 티라미스부터 먹어봐야 된다는 생각이 있는데, 다음에 한 번 더 먹어봐야 할 것 같다(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렌즈로 찍었더니 사진이 흔들렸다-_-;;;).
사실 케이크는 배가 불러서 못 먹는 경우는 드물고, 단맛이 너무 세서 질려서 많이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그렇지 않은 케이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실 굉장히 반가웠다(게다가 가격도 부담이 별로 없다. 케이크가 비싸봐야 4천원대-). 그러나 그렇게 단맛이 지나치지 않아서 반가운 가운데, 그 케이크의 중심이 되는 맛이나 향이 딱 한 발짝 정도 앞으로 더 나아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예를 들자면 레몬 케이크의 레몬향이 살짝 부족하다든지 등등…같은 맥락에서 커피도 살짝 액센트가 부족했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마셔보았다). 그러나 꼼꼼한 솜씨에 질리지 않는 맛이라서, 앞으로도 홍대 앞, 또는 뒤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싶어진다면 고민 없이 자주 가게 될 수 있는 집이다. 아직도 메뉴를 비롯한 전반적인 가게의 컨셉트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처음의 과도기를 지나서 완전히 정착되면 단품 케이크 뿐만 아니라 접시에 예쁘게 차려진 디저트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여름철에는 젤라토나 그라니타도 먹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게가 그렇게 크지는 않고, 겨울이라 공간이 조금 추운 감이 있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일행에 의하면 밖에 있는 화장실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고 들었다. 인테리어며 식기 등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냥 소박하다(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위기).
그리고 덧붙이자면 제목에서 서양 골동 양과자점을 들먹였는데, 같이 갔던 친구가 얘기해서 생각난 것처럼 이 집의 느낌은 어쩐지 좀 서양 골동 양과자점 만화책에 나오는 동네 케이크집의 분위기가 좀 난다. 솔직히 좀 뜬금없는 길가에 자리잡은 것도 그렇고, 또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도 전혀 동네 케이크집 분위기가 아닌 케이크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물론 일하시는 분들의 성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는 노파심에서라도 꼭 해야 되겠다-_-;;;).
# by bluexmas | 2009/12/21 10:16 | Taste | 트랙백 | 덧글(26)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비공개님 블로그는 (말씀 안 해 주셔도)두 개를 알고, 또 어떤 분들이 저를 추천하신지도 대강 아는데…그럼 제가 모르는 비공개님 블로그가 또 있다는 얘기군요 OTL 사실 저는 혜성처럼 나타난 맛집 블로그는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이죠. 글쓰기로 치자면.
서양 골동 양과자점 만화책 보면서 이런곳이 집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싸보이는 식기들만 있으면 딱 그런곳일까나요 ㅎ
한번 들려 맛봐야겠어요. 저번에 포스팅 해주신 가게도
추웠던 어느날엔가 아주 요긴하게 갔었거든요.
젠자이가 달지 않고 맛있었던 집이요 😀
까놀리 정도는 해주었으면 했는데 확실히 이탈리안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을까요.
그래도 오픈된 주방과,늘 손에 세정제를 뿌리는 모습만으로도 들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기본이 제일 어렵다는게 늘 하는 생각인지라^^);;.
덧:화장실은 정말 별로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꼭 가보고싶은데 홍대근처에 살지 않아서 청기와…라고해도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부연 설명좀^^;;;
너무 달면 맛의 진면목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모든 게 단순 단맛에 지배 당하는 느낌이랄까요^^;
가보고싶은곳 한곳 또 추가이군요. 집이 홍대근처가 되고나면 왠지 이런곳들을 이전보다 덜 가게 되더군요. 집근처니까 다음에가도돼. 라며미루고미뤄서 일까요. 흐음. 어찌되었건 전 앙쥬를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결심)
사진속에서 레몬케익이 제일 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냉장고 속에서 수분이 마르고 향이 날아갔다는 점에서는 아쉽지만 방금나온 레몬케익은 정말 상큼할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