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고등반점- 화석으로 남은 전설의 요리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이번에 먹은 음식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 음식들을 빌어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을 기록하기 위한 글이다.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아니면 정확한 시기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새로 건물을 지은 다음의 고등반점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서 언급하는 요리들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같은 요리가 아닐 것이다.
외식의 가족사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열 번에 아홉 번은 중국음식으로 외식을 했다. 수원은 갈비의 도시라고들 했지만, 밖에 나가서 갈비를 구워먹은 건 정말 세 번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솔직히 어릴 때부터 쭉 자란 사람으로서 수원의 갈비가 정말 맛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많이 안 먹어보기도 했지만, 수원이라는 도시의 식도락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그리 큰 점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열 번 가운데 나머지 한 번은 일식집 같은데에 가서 회도 아니고 김초밥이나 알탕 등을 먹는 정도로, 가족은 외식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기나 회를 먹기에는 형편이 아니어서 그랬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중국집에 자주 갔던 덕분에,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까지의 수원 중국집의 흥망성쇠는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음식이나 느낌만은 대강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직장 회식 덕분에 정보를 얻게 되어 그런 것일까? 어느 중국집을 한참동안 가다가, 어느 때가 되면 갑자기 그 집을 안 가고 다른 집을 가게 된다. 부모님으로부터 이유를 정확하게 들은 적은 없지만, 음식이 대부분 대답을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중국집들 가운데 그 실체라도 남아있는 것은 고등반점과 동해장밖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옛날에는 농촌진흥청이 있던 서둔동에도 화교 중국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1-2년에 한번씩 중국집을 바꿔가면서 외식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고등반점이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학교나 회사 회식이 잦아서 알게 된 집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건물이 아닌, 하얀 색의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물에 들어서면, 지난 번에 갔을 때 2005년에 돌아가셨다고 들은, 코가 좀 빨간 할아버지(1대)가 계산대에 계셨고, 정확하지는 않은데 2대의 큰아들이 주방을, 작은아들(이분은 나중에 닭구이집인가를 차려 독립하셨다고 들었다… 거기에 가보고 싶구나;;;)이 손님 접대를 큰며느리와 같이 맡았다. 이 집에는 맛이 변하고 내가 우리나라를 떠날 때까지 한 10년 정도 드나들었고, 지금 기억에 담고 있는 중국음식의 맛의 원형이 거의 비롯된 곳이다.
과거의 고등반점
지금은 건물을 크고 깔끔하게 바꿨지만, 그때는 그래도 평범한 화교 중국집의 모습을 담고 있었던 고등반점의 특색이라면, 정말 동네 중국집처럼 배달도 하고, 또 바로 앞에 여고가 있어 짜장면 한 그릇 먹고 가는 손님들이 많았음에도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깔끔하고 솜씨가 좋은 요리를 냈다는 점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을지로의 오구반점 같은 곳은 몇몇 음식들이 맛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투박하며 깔끔하지는 않은 분위기고, 또 목란 같은 집은 음식이 깔끔하고 솜씨도 좋은만큼 음식점의 분위기도 고급스러운 맛이 있는데 그때의 고등반점은 그 둘 모두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나 그 당시의 동네 중국집, 특히 서울도 아닌 수원이라면 음식이 고급스러워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거기에서 거기였는데, 여기에서는 메뉴판에 있는 대표 중국음식들을 거의 다 먹고 나서 메뉴에 없는 것들을 부탁해도 새로운 음식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런 음식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채친 죽순과 맑으면서도 걸쭉한 소스를 곁들인 돼지갈비찜이였는데, 압력솥에 쪘는지 뼈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거의 20년전의 기억으로는 굉장히 접하기 어려운 요리였다.
그리고 그 밖의 대표요리, 라기 보다는 가족들이 즐겨 먹었던 요리료는 새우케첩볶음(일종의 칠리새우, 새우를 튀겨서 케첩맛이 많이 나는 소스에 버무린), 경장유슬(이 집의 춘장은 늘 조미료맛이 없는, 깔끔하면서도 조금 쓴 맛이 돌았고, 물기가 하나도 없이 채친 돼지고기를 볶아 파채 위에 올려서 냈다. 경장유슬 먹기가 요즘은 쉬운데 춘장 때문에도 그렇고, 물기가 흥건하도록 볶아서 큰 감흥은 없다), 고추잡채 등등이 있다. 이렇게 그 당시에 지방 중국집에서 먹기는 힘든 요리들이 뛰어났던 가운데, 다른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요리며 식사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완벽했다. 일단 깐풍기는, 약간 바삭하게 튀겨 전혀 질척거리지 않도록 적당히 매운 양념에 마지막으로 살짝 버무려 그 바삭함의 키를 살짝 낮춘 것이 언제나 인상적이었고, 탕수육은 깨끗한 기름으로 튀겨 하얀 고기에 다른 재료를 전혀 넣지 않아 소스 밑의 튀김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투명한 소스가 기억에 남았다. 그 뒤로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하얗고 투명한 소스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3대 식사가 있었는데, 그건 삼선간짜장, 삼선볶음밥, 기스면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 집의 짜장은 절대 느끼하지 않아서 저런 요리들을 다 먹고 마지막에 먹으면 약간 과장을 보태 느끼한 속을 달래주는 효과마저 있었다. 삼선볶음밥은 사람들이 늘 생각하는 삼선볶음밥 그대로인, 불맛이 나며 밥알들이 알알이 잘 기름에 코팅되어 있으며 계란도 부드러운, 뭐 그런 이상사회적이면서도 해삼이 쫄깃하게 살아있는 볶음밥이었고(그래서 언제나 삼선볶음밥을 따로 포장해와 다음 날에 먹는 의식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닭육수가 개운한, 가는 면발의 기스면은 요리를 먹고 마무리를 하기에 정말 딱 좋은 시원함을 지니고 있었다. 뭐 그래서 이것저것 배터지게 먹으면서 한 10년 동안 고등반점에 드나들었다.
그런 음식이 언제까지 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건물을 다시 짓느라고 고등반점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정말 한참을 기다리다가 문을 열고 바로 가족들이 찾아갔는데 정말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 깐풍기를 시켜서 먹었을 때 가족들의 그 얼굴 표정을… 뭐 단골이 워낙 많은 집이었겠지만, 우리집도 나름 열혈단골이었는데 마지막에 계산을 하면서 큰며느리한테 ‘음식 하는 분이 바뀌셨나요?’ 라고 물어보았을때 그 ‘아뇨, 맛이 변했나요?’ 라고 말하던 그 큰며느리 아주머니의 반응은 기억에 선하다.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음식맛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나서 나는 거의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다가, 어찌해서 한 8년 쯤 전에 할머니의 생신 가족 모임을 해서 미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보게 되었는데, 그때는 정말 음식이 가관이었다. 동네 배달집 수준의 음식을 내오는데, 시간이 오래 되었으니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가지고 나온 ‘팔보밥’ 이라는 음식은 잊을 수가 없다. 그냥 과일 칵테일 통조림에 버무린 밥이었거든. 나는 그때 완전히 학을 떼서 간간히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도 고등반점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회식을 거기에서 가끔 하시는 아버지가 그래도 맛이 많이 돌아왔다고 해서, 지난 주에 정말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다.
오늘날의 고등반점
꼴랑 두 사람인지라, 생각할 필요도 없이 깐풍기와 탕수육, 그리고 기스면을 차례로 시켰다. 옛날에 먹던 갈비는 메뉴에 올라 있는데 중국산 갈비로 만든다고 표기하고 있었으며, 예전과는 메뉴가 많이 바뀌어 굴짬뽕과 같이, 다른 집에서 많이 하는 음식들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건물 자체는 깔끔하게 짓고 관리를 잘 하고 있어서, 손님들은 여전히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였다.
닥치고 깐풍기. 일단 양념은 옛날과 느낌이 조금 비슷하기는 했으나, 두껍게 튀김옷을 입힌 닭이 물기가 많은 소스에 완전히 퉁퉁 불어서, 튀김으로서는 완전히 자격 상실이었다. 거의 튀김우동의 튀김 수준…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그나마 간도 맞고, 전체적으로 맛의 균형은 잘 잡혀 있는 편이었다. 식감은 빵점.
그리고 탕수육. 하얀 튀김과 투명한 소스는 어느 정도 옛날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과일칵테일을 넣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튀김이 아주 바삭해서, 소스와 함께 먹어야 균형이 좀 맞았다. 불만은 별로 없었다.
마지막은 기스면이었는데, 요즘 대세가 ‘둘이 식사 하나 시키면 나눠주기’ 일텐데 그냥 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국물은 여전했으나 면은 옛날보다 조금 가는 걸 쓰는지 금방 불어서 먹는 맛이 없었다. 그것만 빼놓고는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후식은… 뭐 딱히 인상적일 것도 인상적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배가 좀 더 남아있었다면 짜장을 먹었을텐데, 거기까지는 여건이 안 되어서 이것만 먹었는데 정말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옛날의 맛은 어느 정도 돌아온 편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옛날의 맛을 되찾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옛날과는 좀 다른 손맛이 그냥저냥 균형이 맞는 음식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저 음식들이 드러내는 맛은, 옛날에 내가 10년 동안 드나들면서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그 맛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이제는 아예 다른 사람이 주방에서 웍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깐풍기의 식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처음 가게 문을 새로 열었을때 느꼈던 그 진한 실망감에 비하면, 이번에 먹은 고등반점의 음식은 크게 질적으로 아쉬운 편은 아니었다. 4월에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괜찮은 중국집들도 많이 갔지만 어이없는 음식(그래, 나는 이 목록의 1위에 대가방을 자랑스럽게 올려 놓을 수 있다)도 많이 먹은터라, 가격까지 생각해 보았을 때 정말 이 정도면 상위 10%에 들랑말랑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지금의 고등반점은 아쉽게도 옛날의 고등반점은 아니다. 억지로 표현하자면, 옛날의 화석이 아직도 요리를 만든다고나 할까? 이름이며 존재는 그대로지만, 화석이 된 본인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할, 뭐 그런 존재가 옛날의 고등반점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계산대에 3대라고 생각되는 젊은 사람들이 있던데,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옛날에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그 아이들이 큰 것인지도;;;; 듣기로는 동해장도 좀 위태위태해보인다던데, 한 번 가봐야겠다.
# by bluexmas | 2009/12/15 10:04 | Taste | 트랙백 | 덧글(14)
다녀오셨군요. 말씀대로 일반 중국집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먹을만은 했습니다. 역시 예전의 명성은 추억이 된 것이군요~
감정이입을 심하게해서그런가 안타까운마음까지 들어요.
튀김의 상태에 따라 소스에 담가놓는 시간을 달리해요
튀김옷이 너무 맛있으면 소스로 눅눅해지는 것이 어쩐지 아깝잖아요:9
어릴 때 처음 먹어본 고급스러운 투명한 소스..콧물탕수육이라면서 굉장히 맛있게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