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 굽는 새벽 마시는 위스키

어제 일을 하나 끝내고 오늘까지 해야 될 다른 일이 있었다. 원래는 12일까지 하겠다고 얘기가 된 것이었는데, 집에 와서 달력을 보니 12일이 토요일… 그러면 결국 월요일까지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내가 약속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점심때쯤 일어나서 부랴부랴 해서 결국 여섯시가 되기 전에 끝낼 수 있었다. 휴, 적어도 오늘 저녁과 내일 하루 정도는 조금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노닥거리다가 가기 싫은 몸을 일으켜 운동하러 갔다. 아직 허리는 뭐 그저 그런데,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당한 강도의 운동을 했다. 아무래도 계속 앉아만 있으니 근육이 약해져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아프더라도 계속 운동을 해야 될 것 같았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늦은 저녁을 대강 먹고 차를 가지러 부모님 댁에 갔다. 장을 봐야만 했다. 집에 먹을 게 정말 똑 떨어져서 어제 오늘은 밥을 해서는 참치캔과 계란찜, 삶은 계란 등등으로 대강 끼니를 때웠더니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한참동안 장을 안 봤더니 살 건 정말 많았는데 너무 졸려서, 장을 보기가 귀찮았다. 사람들이 앱솔루트 보드카 한정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서 나도 그걸 잠깐 들여다보고, 살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봐야 앱솔루튼데 그건 집에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 가죽 껍데기가 보기에 멋기지는 해도 결국은 쓸데 없는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자 사고 싶은 마음이 가셨다. 대신 조니 워커 검정 딱지를 작은 걸로 한 병 샀는데, 솔직히 뭐 이런 술을 마시고 싶어서 산 건 아니었다. 독주를 마시고 싶기는 했지만 이마트에서 파는 술이 다 그렇고, 사람들이 다 마시는 건 사기 싫지만 그렇다고 또 딴 걸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드카만 서른 종류가 넘었던 단골 술가게가 그리웠다. 늘 좋은 포도주 골라주던 레이몬드 할아버지는 잘 있을까?  나중에야 그가 은퇴한 소방관이라는 걸 알았는데… 어쨌든 단골 술가게가 그립다. 개같이 지루한 나날들을 꾸역꾸역 스쳐 지나 보내면서도 수요일쯤에 주말에 해 먹을 음식과 거기에 맞는 술을 생각하는 건 참 즐거웠는데.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장 이른 조조를 보고 두세시쯤 집에 들어와 여덟 아홉 열 시까지 음식을 만들며 술을 마시던 생각이 가끔은 난다. 원한다면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감상에 젖어 살 것 같아서 언제나 적당한 수준에서 자른다. 모든 면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은 없다, 라고 그냥 생각한다. 나는 또 살아가야 한다.

장본 것들과 어머니가 주신 약간의 반찬을 들여놓고, 핏물을 빼기 위해 갈비를 담궈놓고 다시 부모님댁에 차를 가져다 놓고 돌아와서는 갈비를 양념해서 오븐에 쳐넣는다. 굳이 오늘 구워야 하는 건 아닌데, 구워서 바로 먹으면 식혔다가 다시 데워 먹는 것보다 맛이 덜하다. 그래서 그냥 오늘 좀 수고를 하기로 한다. 그래도 오늘 저녁과 내일은 좀 느긋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갈비를 굽는 동안은 또 다른 일을 꺼내서 그냥 설렁설렁 한다. 뭐 블랙라벨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별로 맛은 없구나(아는 게 별로 없는데, 조니 워커는 블랙-그린-블루-골드 뭐 이런 식인가?). 갈비가 다 구워지면 한 쪽 정도 먹을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아, 다 구워졌나보다.

 by bluexmas | 2009/12/12 03:20 | Lif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고선생 at 2009/12/12 04:01 

저는 딴건 모르겠고 앱솔루트보드카는 병모으는 재미로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있습니다. 워낙 버전이 여러가지고.. 외형도 이쁜것이.. 근데 지금 사정으론 사모은다 해도 둘 데도 없는 처지죠.

2007년에 분데스리가 기념으로 코카콜라캔이 분데스리가 클럽팀 하나하나 특징을 딴 디자인으로 나온걸 모았었는데 이사 가면서 처참하게 대처분…-_-

술의 맛을 잘 알고 지식도 있으며 맛있게 즐기시는 분들과는 달리 전 술엔 큰 매력을 못 느끼고 개인적으로 즐기지도 않다보니 술값은 안 나가 좋네요. 가끔은 스스로 ‘너무 멋없는거 아냐’ 라고 느끼기도 하긴 합니다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3

병 모으는 재미도 나름 괜찮겠죠. 그래도 나중에는 전부 쓸모가 없어질 것 같아요. 모으는 건 이제 좀 지겹더라구요. 씨디도 껍데기는 거의 다 버리고 알맹이만 가지고 있게 되었어요. 독일에도 맛있는 술이 많잖아요. 무엇보다 야거마이스터가…^^

 Commented by deathe at 2009/12/12 05:27 

블랙-골드-그린-블루 순이예요. (골드와 그린이 바뀐건가 불확실하군요) 블랙도 골드보다 못한 맛이 아니라 진하고 ‘죠니워커네!’ 하는 개성있는 국민양주 맛이라 좋은 술이예요. 양념갈비는 식혔다 데워야 뼈와 골막도 쏙쏙 잘 떨어지고 양념과 고기가 잘 어우러든다는게 확실히 느껴져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것은 찜인데, 오븐갈비도 뼈와 골막이 쏙 분리되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4

사실 갈비는 오븐에 조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에요. 가스불로는 남비의 밑만 데우지만, 오븐으로는 같은 온도의 공기를 만들어주니까요.

블루까지는 아니어도, 그린 정도는 한 번 마셔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googler at 2009/12/12 07:30 

앱솔루트 보드카 병 디자인을 금나라 사람이 만든 거라는… 그나저나 갈비……. 양념은 어케 하시는지… 물론 간장도 넣겠지요? 여기 간장은 정말 널쿨째 줘도 갖고싶지 않을 만큼 맛없는 간장이랍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5

간장이 맛이 없군요;;; 당연히 간장도 넣어야지요. 국산이 아니더라도 일본 간장은 있지 않나요? 정말 북유럽에서는 아시아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스며들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2/12 16:09 

맛있게 드셨나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5

호주 갈비는 이제 먹지 않기로 했어요. 기름기가 너무 적어서 조리면 결국 푸석푸석해지더라구요 🙁

 Commented by 아리난 at 2009/12/12 19:22 

사실 흔히 먹는 발렌타인,조니워커,JnB,잭다니엘 뭐 이런애들 급이 아주 높은게 아닌 이상은 거기서 거기인것 같아요. 딱히 되게 맛있지도 않고;;; 그냥 일단은 ‘양주’라는 것 정도?-_;;

그래도 앱솔루트보드카 한정판 껍데기는 참 예쁘더라구여-_;; 그치만 이젠 한정판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정말 한정스럽게 구하기 힘든것도 아니고-_;; 다만 원래 제품보다 가격이 조금더 비싸게 나올뿐인 이벤트상품이라는 의미밖에는 쩜쩜..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6

그거말고 다른 이벤트 상품도 있더라구요. 보다보니까 결국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사지 않았어요. 그런게 이제는 귀찮더라구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2/13 10:40 

옛날에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한잔 얻어먹어봤는데 무지 맛있더라고요 ^^; 맛은….향기로운 양주맛? -_-;;

갈비 사진도 나중에 올려주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6

양주가 오래 되면 달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나중에 돈 벌어서 블루라벨을 한 번 도전해봐야겠네요-_-;;;

 Commented at 2009/12/13 19: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6

갈비는 실패작이었어요. 어째 마블링이 너무 없다 싶었는데 조리면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서 굉장히 푸석거리더라구요.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2/13 20:21 

전 술맛을 솔찬히 좋아하고 그렇게 막혀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양주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그냥 비싸면 비싼맛에 더 맛있게 먹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ㅋㅋ

바쁜것이 지나가고 여유가 생기셔서 태국에 놀러오시면 야동한잔 사드리고 싶군요

야동은 태국 전통술이에요 한국말의 그 뜻이 아닙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7 13:57 

뭐 한국말의 그 뜻이라도 딱히 꺼리지는 않;;;-_-;;;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