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12)-돼지 목살 통구이

삼겹살로 몇 번,통구이를 하면서 아무래도 기름기 때문에 목살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이번엔 목살을 덩어리로 1kg 사서 무쇠솥 통구이를 했다.

조리법에는 특별히 설명할 게 없다. 예전에 구웠던 삽겹살처럼 가루양념을 만들어 골고루 주물러 발라 냉장고에 적어도 몇 시간, 아니면 하룻밤을 재워두었다가 뜨겁게 달군 무쇠솥에 겉으로 골고루 지지고 그대로 100 도를 조금 웃도는 오븐에 넣어 세 시간 정도 구운 뒤, 오븐을 끄고 솥을 그대로 둔다. 이 조리법의 핵심은 고기를 일단 구웠다가 완전히 식힌 다음 재가열을 하는 것이다.

사실 스테이크든 이런 식의 통구이든 고기를 정말 원하는 정도로 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건 고기를 많이 구워서 그 감을 익히는 것이겠지만, 그걸 직업으로 하지 않는한 그렇게 감을 익힐수 있을만큼 고기를 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열을 가하는 조리방법은 실패했을때 결과를 고치거나 되돌릴 수가 없다. 실제로 요리수업 같은데를 가면 다른 건 다 어떻게든 고칠 수 없지만 탄 음식은 예외라고 가르친다. 같은 이유에서 고기도 한 번 원하는 상태를 넘겨 익히게 되면 되돌릴 수가 없다(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는 건가 지금?;;;;)

그래서 감을 얻기 전에 고기를 가지고 요리하다가 생길 수 있는 실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온도계를 쓰는 것이다. 각 동물의 거기에는 익은 상태에 따라 온도의 범위가 있다. 예를 들면 쇠고기 스테이크의 경우 온도계를 찔렀을 때 미디엄이면 64도, 웰던이면 77도, 이런 식이다. 덩어리 고기를 구울 경우에는, 무게에 시간을 곱하는 식으로 굽는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돼지고기를 예로 들면, 파운드(454그램)에 부위에 따라 20-30분이다. 닭고기에도 온도 상한선이 있다. 무조건 오래 익히면 장땡 대신 말라 비틀어진 닭고기를 먹게 된다. 아파트단지 같은데에 대놓고 돌려가며 구워파는 트럭의 닭은, 껍질이 바삭바삭한 대신 가슴살은 말라 뻣뻣할 확률이 높다. 애초에 요즘 키우는 닭들은 지방을 많이 쟁여놓을 만큼 크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하룻밤 전에 구워놓은 목살을 두껍게 썰어, 스테이크처럼 그릴팬에 굽는다. 사실은 그냥 차갑게 먹어도 그렇게 느끼하지 않다. 우리나라 음식처럼 먹고 싶으면 고추장을 바탕으로 한 소스를 만들면 되는데, 굳이 매운 걸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사과소스를 만들었다. 사과나 파인애플은 그 단맛이며 신맛이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굉장히 잘 어울린다. 사과 몇 개를 썰어서 은박지로 싸서 고기 굽는 오븐에 넣어 같이 익힌 다음, 손 믹서로 갈아서 꿀과 크림, 그리고 카르다몸과 각종 향신료를 넣는다. 설탕보다는 꿀의 단맛이 조금 더 복합적이어서 잘 어울린다.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소스의 식감에 대조도 이룰 겸, 마늘을 얇게 썰어 튀겨 뿌린다. 어차피 돼지고기에는 마늘이 잘 어울린다. 파채를 깔고, 느끼함을 덜어내기 위해 쓴 야채 겸 장식으로 무순을 조금 뿌려준다. 중국식 꽃빵을 만들까 하다가 펴서 말기가 귀찮아서 통밀로 대강 찐빵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반주로는 미디엄 바디 이상의 적포도주면 토요일의 낮술치고는 제법 격이 있어보인다.

 by bluexmas | 2009/12/03 15:52 | Taste | 트랙백 | 덧글(30)

 Commented at 2009/12/03 16: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4

네^^ 자주 놀러오시면 좋죠~

고기가 싼 미국이라면 더 열심히 해 드셔도 될 것 같아요. 무쇠솥이 없으시다면 은박지에 싸서 구우셔도 될거에요.

 Commented by Gony at 2009/12/03 16:51 

완전 최고네요 진짜 맛나겠어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5

앗 그런가요^^;;;

 Commented by deathe at 2009/12/03 19:24 

사진이 좀 블루톤이라서 그런지 한번 더 굽고난 고기사진이 시각적으로 약간 퍽퍽해보여요(약간…). 수분이 있고 부드럽다면 꽤 맛있겠네요. 맛이 어떨지 궁금해요. 어렸을때 필라델피아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동네식당에서 맥주마시다가 안주로 드셨는지 사과소스 올린 립스테이크 같은걸 도기백에(..) 싸들고 오곤 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맛일까. 궁금해요.

갓 만들어냈을땐 좋겠지만 분량이 많거나 파티용이라면 고기가 좀 마르는 경우도 있을텐데 소스로 보완될까요?…. 굽는 요령만 받쳐주면 여럿이서 고기먹고 싶을때 이런 시각적으로 호쾌한 요리를 내놓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예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6

돼지의 많은 부위는 기름기가 많아서 웬만해서는 마르는 일이 없더라구요. 보기에는 좀 퍽퍽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기름이 많이 있었어요. 사과소스 올린 립이라면 맛이 비슷하기는 하겠네요. 파티 같은데서 쓴다면 하룻동안 두지 않고, 손님이 모일 때까지 솥에서 구웠다가 20분 정도 휴식시키고 썰어서 내면 될거에요.

 Commented by JUICY at 2009/12/03 20:06 

꺄, 이건 음식점보다 훨씬 나은걸요 //ㅁ//

예전에는 이런음식 사진보면 먹다고 달라들텐데, 요새는 이상하게 아무생각이 없어요. 아무래도 득도했나봐요=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6

앗 그럼 곧 사리가 나오는 건가요…?-_-;;;; 어린 나이에 득도하셨네요-_-;;;

 Commented by googler at 2009/12/03 20:49 

마늘을 튀길땐 끓는 기름에 넣었다 얼른 건져야 하는가요? 마늘을 껍질 안 까고 통째로 튀겨 나오는 레스토랑도 있던데, 그런 것도 이담에 한번 시도해 보시면 좋겠어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8

기름에 넣고 좀 시간을 두셔야 물기가 빠지더라구요. 마늘을 껍질째로 튀기는 건 또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 시도해봐야겠어요^^

 Commented by turtle at 2009/12/03 22:13 

이 목살 사진을 보고 오늘 점심에 고추장 목살구이를 먹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8

늦게 올렸는데, 점심을 늦게 드셨나봐요. 시간에 맞춰서 꼭 드세요^^

 Commented at 2009/12/03 23: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9

아, 저 롯지 무쇠솥은 25불 정도밖에 안 주고 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싼 것 같으니 그것보다 좀 비싸더라도 에나멜 코팅 된 걸 사시는게 쓰시기 편할 것 같아요. 저건 국물을 끓이면 그 다음에 좀 처리하기가 귀찮더라구요. 저도 르 크루제 하나 가지고 싶던데요-_-;;;

 Commented by 고선생 at 2009/12/04 00:20 

목살 통구이까지만 보면 독일의 돼지고기 통구이햄이 연상되네요^^ 정말 먹고싶습니다.

요리실력도 뛰어나시지만 우월한 다양한 요리도구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2:59

도구는 몇 년 동안 모은 건데, 대부분은 그냥 싼 걸 사서 쓴답니다. 거기에도 돈을 쓰려면 정말 한 없이쓸 수 있으니 아껴 써야죠-_-;;;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2/04 00:52 

흑흑; 진심으로 모니터로 빨려들어가고 싶어요. 지금 시간이 시간인지라 -_-;;;

진짜 낮술이 아니라 저녁 만찬같네요^^ 그릴팬이 진짜 크고 멋있어요 갖고 싶어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0

그릴팬은 옛날에 집들이하면서 햄버거 굽느라고 큰 맘 먹고 산 것이었어요. 꽤 요긴하게 쓰고 있지요^^

 Commented by 봄이와 at 2009/12/04 01:53 

아..고기굽기도 과학이군요. 온도범위가 있었다니…흠.

토요일낮에 저런 요리와 함께라면 완벽한 주말이 될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1

먹고 바로 뻗어서 자면 토요일이 좀 아까운 경우가 있지요T_T 온도계로 참조해가면서 구우면 감이 없어도 실패할 확률이 적더라구요.

 Commented by SF_GIRL at 2009/12/04 10:10 

기름기 있는 음식 별로 즐기지는 않는데 왠지 먹고싶으네요. 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1

그래도 기름기는 많이 빠졌어요. 삼겹살보다는 목살이 훨씬 낫더라구요. 고기 자체의 맛도 그렇구요…

 Commented by 하니픽 at 2009/12/04 10:41 

아…….저 침 다섯번은 더 삼키면서 마우스 휠을 내렸어요…

내리다가 창이 끝까지 다 내려간것도 모르고 멍~때렸답니다 ㅠ_ㅠ

너무너무너무너무 맛있어 보이잖아요!! 처음에 사과소스가 아니라 된장소스인줄 알고 이것도 맛있겠다 했는데 사과소스인걸 보고 상큼함이 배가 된것 같았어요~ 제가 사과를 상당히 사랑한답니다!!

고기가 기름기가 쏵 빠져서 알레르기가 있는 제가 먹어도 부담이 없을 것 같네요!! 으헝~ 한점만 먹고싶어요 ㅠ_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3

된장소스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어째 색깔은 좀 비슷하네요-_-;;; 고기에 알레르기가 있으신가봐요-_-;;;

 Commented at 2009/12/04 12: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5

사과소스를 만들 때 설탕을 좀 넣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설탕보다는 꿀이 훨씬 더 잘 어울리더라구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2/04 15:51 

고품격 낮술 요리

길거리 트럭에서 닭을 사면 항상 실망해요..가뜩이나 가슴살을 좋아하지 않는데ㅜ.ㅜ

싸다고 생각해서 산 것인데 결국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적으니 싸게 산 느낌이 아니구…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5

그렇죠. 가슴살이 보통 너무 말라서 먹기가 좀…T_T 딱 맞게 익히면 가슴살도 부드럽고 맛있는데 아쉬워요.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2/04 21:50 

고기를 구웠다가 완전히 식혀서 재가열

우선 손이 많이가는 조리법이네요

기름기가 많이 빠져서 느끼하진 않아도 살짝 뻑뻑해지진 않나요?

물론 본문의 사과소스가 그것을 잡아주긴 하겠지만

가끔은 기름기없는 고기가 땡길때가 있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6 13:06

사실 손이 많이 가지는 않아요. 그냥 오븐에 넣어두고 시간 맞춰서 끄기만 하면 되니까요. 돼지고기야 뭐 워낙 기름이 많아서 잘 뻑뻑해지지는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