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너머 짜파게티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런 날이 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짜파게티가 먹고 싶어진다. 그럼 먹는다. 먹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저녁에 이마트에서 사온 포도주를 마시며 찔끔찔끔 일을 하다가 오리털 파카를 뒤집어 쓰고 뛰쳐나가 문 닫기 직전인 가게에서 짜파게티 두 봉지를 집어왔다. 스물 다섯 이후로 내 라면 끓이는 기술은 계속해서 퇴화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열 아홉 이후로는 계속해서 퇴화되고만 있다. 어쨌든 먹는다. 나는 오늘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입맛이 너무나도 싸서, 이런 날 캐비어를 얹은 블리니 따위가 아닌 짜파게티 두 개만을 원한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또 슬프다. 때때로 산다는 건 너무 재수없다고 느껴진다. 오늘이 좀 그런 날이었다. 나는 사실 기분이 잘 나빠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또 종종 그러는 만큼 아주 깊은 곳까지 화가 나지는 않는 사람인 편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오늘은 아주 깊은 곳까지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오이는 초점을 잘 맞추기 위해서 넣은 것이지, 맛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저만큼 넣으면 짜파게티의 맛이 변한다. 나는 채를 예쁘게 썰지 못한다.

 by bluexmas | 2009/11/22 01:32 | Taste | 트랙백 | 덧글(30)

 Commented by FromNil at 2009/11/22 01:49 

힘내세요~ 살다보면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군침 질질~^^;;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1:31

그렇죠, 그런 날이 있죠~ 말씀 감사합니다^^ 물을 조금 더 넣고 비볐어야 되는데 너무 뭉쳤어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1/22 01:55 

에구 힘드셨겠어요. 정말 바닥까지 기분나쁜 날이 있죠.. 그럴땐 맛있는거 먹는게 최고예요 ^^; 힘내세요! 아.. 그런데 새벽에 진정한 테러사진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1:32

생각보다 사람들이 짜파게티를 좋아하나봐요. 저는 진짜 두 달에 한 번쯤 먹나봐요. 보통 라면은 한 일년에 두 번?

 Commented by 봄바스 at 2009/11/22 02:07 

헉 맛있겠는데요…게다가 신선한 오이까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6

아이고 맛있어 보이나요-_-;;; 오이는 솔직히 별로 신선하지 않았답니다. 사다놓고 먹지 않은지 오래 되었거든요-_-;;;;

 Commented at 2009/11/22 06: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7

아무래도 탄수화물이 뭐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모양이지요^^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다 있기 마련이니까요…

 Commented at 2009/11/22 09: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7

저도 그렇게 끓이는데, 막판에 물을 너무 많이 따라버려서 조금 실패작이었어요-_-;;;;

 Commented by basic at 2009/11/22 10:31 

짜파게티 맛이 변한다는 뜻은 안 좋아진다는 건가요 좋아진다는 건가요? ;;; 가끔 참…그렇게 기분나쁜 날이 있지요…? 제대로 안 풀고 지나가면 쌓여서 홧병이 날 것 같은 그런 기분나쁜 날들. 그래도 짜파게티 드시고 한층 나아지셨길 바랄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8

아, 오이를 너무 많이 넣으면 짜파게티의 맛이 좀 옅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잘 안 넣는데, 까만 음식은 초점이 잘 안 맞아서… 좀 밝은 색의 오이를 넣으면 초점이 잘 맞지 않을까 싶어 넣었죠^^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1/22 11:38 

저는 사천짜파게티를 좋아하는데 가격이 너무 쎄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8

그냥 고추기름을 넣으시면 사천짜파게티가 되니까 다음에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Commented by Meng♥ at 2009/11/22 11:46 

저는 어제 4시까지 제 좁은 방에서 하우스메이트 둘과 함께 소세지에 육포에 밀크티에 레몬소주를 함께 했어요. 생각해보니 짜파게티도 좋은 선택이었을 듯 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9

소세지에 육포에 레몬소주가 더 좋아보이는데요^^ 짜파게티는 먹고 바로 자야 제맛이죠-_-;;;

 Commented by catail at 2009/11/22 14:48 

저는 통후추를 가득 갈아넣어요. 그러면 또 그게 매우 괜찮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9

원래 느끼한 탄수화물에 후추가 잘 어울리죠.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1/22 16:01 

보통 라면은 국물이 있어서 그런지 하나로도 만족하는데 짜파게티는 하나로는 뭔가 부족해요..

그래서 전 사리라면 하나 사서 반 잘라 추가해먹곤 하죠^^

채를 예쁘게 썰줄 몰라도 대신 예쁘게 썰어주는 것들이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지 뭐랍니까~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29

짜파게티는 한 개로 절대 안 되죠… 두 개는 먹어야 되더라구요. 채칼을 하나 사야 할까봐요 귀찮아서 늘 대강 채를 썰어서…

 Commented by JUICY at 2009/11/22 20:50 

아, 짜파게티 맛있겠어요 🙂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짜파게티를 잘 안먹게 됐어요. 짜파게티 대신 후루룩 국수라던가 둥지냉면이라던가를 먹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ㅅ’

친구가 전에 생일선물로 짜파게티랑 이것저것 줬는데 그게 몇년 만에 먹었던 짜파게티….

근데 이 포스팅 보니까 이번 주 안에 꼭 저도 사다 먹어야겠어요 +ㅁ+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30

후루룩국수와 둥지냉면 둘 다 안 먹어봤어요. 워낙 라면은 잘 안 먹거든요… 언제 한 번 먹어봐야겠네요 ‘ㅅ’

 Commented by 밀납인형 at 2009/11/22 20:55 

저에겐 아이스크림이 그런것 같아요.그래서 요며칠 계속 비오는날 정신줄 놓은 여자처럼 “그건 별일도 아냐.걱정도 안돼”이러고 있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오늘은 파인트 두통을 집어들고 집에와서 저녁먹기 전까지 열심히 퍼먹었어요.먹는 순간만은 행복하더라구여:)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31

저도 한때 일주일에 딱 한 번, 파인트 한 두통을 막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잘 안 땡기나 아이스크림을 잔뜩 만들어놓고도 안 먹은지가 꽤 오래 되었네요-_-;;;

 Commented by Amelie at 2009/11/22 21:44 

기분이 나빠지면 왜 입 속에 무언가(몸엔 썩 좋지 않은)를 넣고 싶은 걸까요.

절대 배가 고픈것도 아닌데.. 먹고 나서도 기분이 좀 나아지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전 일주일에 두세번씩 기분이 나빠져서 걱정이에요.

전 채를 참 잘 썹니다. … 그냥 자랑하고 싶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31

앗 채를 잘 써신다니 부러워요… 저는 무채 썰어서 김장김치도 담가봤는데 채써는 솜씨가 나아지지는 않더라구요T_T

 Commented by ibrik at 2009/11/23 15:32 

아, 짜파게티의 핵심은 바로 저 송송 썬 오이인 듯합니다.

점심을 애매하게 먹어서 그런지 사진 보고 있으려니 더 먹고 싶어집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24 16:32

그러나 너무 오이를 많이 넣으면 오이맛에 짜파게티 본래의 맛이 옅어지는지라… 점심을 잘 드셔야 오후 시간이 덜 힘든데, 앞으로는 잘 챙겨드세요^^

 Commented by absentia at 2009/11/28 03:34 

저도 찬장에 짜파게티는 항상 구비하는데요. 확실히 기분이 안 좋을 땐, 몸에 독이 되는 음식을 좀 먹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렇더군요. 양파를 다져서 넣으면 식감도 좋고 풍미가 더해져서 보통 오이보다는 양파를 넣어서 먹어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02 10:04

아이고, 이제서야 덧글을 다네요. 제가 요즘 덧글을 잘 못 달아서….-_-;;; 생각해보면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에도 양파가 들어가니까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푸드프로세서 같은 걸로 갈면 즙도 나오는데, 다음에 그렇게 양파를 살짝 갈아서 비벼먹어봐야 되겠어요^^ 맛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자주 안 먹는게 좋아서 당분간은 자제하려구요. 한 달에 한 번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