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지난 카레와 만화 ‘심야식당’
최근에 심야식당을 4권까지 보았고, 또 카레도 한 번 해 먹었길래 두 가지를 묶어서 글을 써야겠다… 라고 생각했더니 며칠 전에 같은 소재로 다른 분이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심야식당에 나온 많은 음식들이 그래도 꽤 일본스러운 가운데, 그나마 카레는 덜 일본스러워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카레가 덜 일본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먹는 카레는 인도카레가 일본에 넘어와서 입맛에 맞게 어느 정도 바뀌는 과정을 겪은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따라서 덜 일본스러운 것이라기 보다는, 일본스럽지만 만화책에 나오는 음식들 가운데에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이라고 하면 될까(뭐 비엔나 소시지 이런 것도 충분히 익숙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만화책이니만큼 따로 많은 의견을 더하고 싶지는 않은데, 3권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4권에서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 조금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심야식당에서, (모든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것처럼) 음식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사람과 얽혀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매개체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사실 어떤 종류의 음식이 이야기에 소개되는가보다는, 그 음식과 얽혀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이야기로써 매력, 또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나처럼 일본 음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앞의 2권 정도까지는 음식 그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지만, 거듭할 수록 그 음식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눈에 잘 안 들어오게 된다고나 할까… 그게 4권에 이르자 아예 음식은 눈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사람의 이야기만을 보았는데,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떨어져서 재미가 없다기 보다는, 그냥 같은 형식이 계속 반복되면서 슬슬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도 작가가 생각해가면서 가끔 이런저런 구석으로 이야기를 틀어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조금 무리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재미를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게 되는 건, 주인공인 주방장의 이야기가 아직까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주방장, 눈에 칼자국도 있는데 그 칼자국은 물론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얘기도 거의 하지 않도록 설정한 것으로 보아, 작가가 어느 시점쯤에 이르러 지금처럼 읽는 사람들이 신선함을 더 이상 찾지 못할때 이야기를 크게 터뜨려 다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 나는 일본말도 모르고 그쪽의 소식에는 전혀 무지한 사람이라, 그런쪽에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벌써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알고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보다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 좀 재미를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더 쓰고 싶었다. 어쨌거나 음식을 소재로 한, 그리고 그 음식이 사람과 얽히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니까. 하여간 심야식당 읽느라 ‘리틀 포레스트’ 는 다 끝내지 못했다. 겨우 두 권 밖에 안 되는데…
어쨌든, 카레를 만들었는데, 이 카레는 처음으로 가루, 또는 초콜렛과 같은 형태로 나오는 인스턴트 카레를 쓰지 않고, 향신료만으로 만든 카레가루로 끓인 것이었다. 결국 카레가루라는 것이 향신료의 결합인지라, 끓인 야채와 고기에 가루를 붓는 것보다는, 기름으로 살짝 볶아서 그 향을 완전히 살려준 다음에 넣는 것이 좋다(향신료는 보통 기름에 녹고, 열에 반응해서 진짜 향을 낸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넣으면 어느 향은 너무 강할지도). 아니면 아예 처음에 고기를 볶을때 그 기름으로 밀가루와 함께 루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어차피 오래 두고 먹을려고 한 냄비 끓였던 거라, 하루는 물론 이틀, 그리고 사흘 지나고서도 먹었지만 따뜻한 밥에 녹혀서 먹지는 않았다. 그냥 밥도 새로 하고, 카레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합쳐 먹었다. 책을 따라 굳은 카레를 더운 밥에 식혀 먹는 뭐 그런 것까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따라 한다는 얘기를 하다보니, 한 달도 더 전에 친구를 만나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책을 따라한 심야식당이 어디엔가 생겼는데 정말 고양이 맘마 등등을 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심야식당을 내는 아이디어는 좋은 반면, 음식까지 따라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음식은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시간에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음식이지,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정확하게 비슷한 논리는 아니겠지만, 영화 ‘카모메 식당’ 보고 ‘카모메’ 라는 이름의 삼각김밥집을 내는 것 역시 조금은 ‘나이브’ 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 장사는 잘 되나…). 그래서 친구와, 우리나라에서 그런 심야식당을 연다면, 일단 기본으로는 된장찌개를 큰 솥에 보글보글 끓여놓고, 그 옆에는 기름을 잘 먹은 번철을 하나 둬서 계란부침이나 동그랑땡, 아니면 도시락반찬으로 먹던 소세지계란부침 같은 걸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번철이 있다면 막말로 아침나절에 손님이 와서 엉뚱하게 팬케이크 같은 걸 해달라고 해도 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거기에 만화에서처럼 손님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되는 만큼 해 주면 좋을 듯… 그런데 생각하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근히 그런 곳에 가서 옆에 있는 사람하고 얘기를 잘 안하니까(바 같은데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잘 안하지 않나?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말을 걸면 일단 경계하는듯한 반응을 보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만화에서 나오는 식당과 같은 공간의 존재 의미가 정확하게 성립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식당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주인한테 원하는 음식을 해달라다가는 왠지 쫓겨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하여간 가게의 분위기는 옛날 대포집처럼 하면 좋겠다, 라고 쓰려다가 생각해보니 벌써 새마을 식당이 그런 분위기 아닌가?
# by bluexmas | 2009/11/20 09:42 | Taste | 트랙백 | 덧글(22)
카모메식당은 갈 때마다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장사는 잘되는 모양입니다. 주변에 이런 주먹밥 파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 학원이 밀집해있다는 것도 성공 요인이겠지요.
그런 번철이 있다면 옆에 난로 하나 두고 겨울에는 김치밥 해먹는 것도 별미겠네요.-ㅠ- 김치밥 위에는 번철에서 갓 부쳐낸 달걀후라이 하나!
길 잘 든 번철에 김치볶음밥해서 계란 노른자는 살짝만 익혀서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히겠네요. 김치는 반드시 집에서 담근 신김치… 저는 포기김치는 잘 못 담그겠더라구요. 손맛이 영,…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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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프라이팬을 하나 사야하는데…
부침개가 눌러붙어서 성질나네요 ㅠㅠ
어릴 땐 국처럼 된 초라한 카레를 김치와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는데 요즘은 조리법도 다양하고 내용물도 풍성
확실히 기름에 함께 볶는 쪽이 향이 더 할 듯..요즘엔 물에 개지 않아도 뭉치지 않는 것들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니 괜찮겠어요..저도 조만간 시도를 해봐야 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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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아저씨도 멋있어. 지난주까지 7편까지 나온듯.. 방송도 심야에 해 ^^ (매주 수요일T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