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 Pho24- 소금+만원의 기회비용
30% 쯤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면, 베트남의 쌀국수인 ‘퍼’ 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맛을 보면, 쌀로 만든 국수를 기본으로 고기국물의 진함과 그 고명으로 얹는 고기의 고소함이 바탕을 잘 깔아주고, 그 위에 밋밋하지 말라고 고수나 바질과 같은 풀로 신선함을 더해준다. 그 고기와 향채의 조합은 냄새의 조화도 잘 이뤄주고, 또한 라임즙을 살짝 뿌려 신맛까지 더해 혹시 모를 느끼함도 잡아준다. 식감을 따져봐도, 쌀국수의 부드러움과 고기의 약간 뻣뻣한 느낌, 거기에 향채와 숙주의 아삭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게다가 밀이 아닌 쌀국수라 부담이 적고, 국물이 따뜻한 느낌도 준다. 이렇게 맛이나 냄새, 식감 모두를 따져보아도 쌀국수는 모든 재료들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 재료들 전부를 한데 합쳐 생각해보면 아마 영양도 그렇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 3년 동안, 정말 쌀국수를 매주 한 번씩은 먹었다. 살던 동네에는 도로 하나를 끼고 온갖 소수민족들의 식당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입에 가장 잘 맞는 쌀국수를 찾으러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가게를 찾아 맛을 보면서 다녔다. 어느 곳의 국물은 느끼하고, 또 어느 곳의 국물은 담백하며, 어디는 가는 쌀국수를, 또 어디는 굵은 쌀국수를 썼다. 그렇게 한참을 먹다가 회사 근처의 한 군데, 살던 집 근처의 한 군데를 잡아서 보통 한 번, 많게는 그 두 군데를 다 들러 두 번도 갔었다. 심지어는 북유럽 여행을 가서도 한국식당이 아닌 쌀국수집을 찾을 정도로 나는 쌀국수를 좋아했다.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한 번씩 먹었는데, 스톡홀름은 형편없었고, 오슬로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정말 웃기는 것은, 10년 전 처음 쌀국수를 먹었을 때에는 입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미국에 잠깐 놀러왔다가 어찌어찌해서 당시 막 잘 나가서(내 기억에는), 한국 사람들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쌀국수집에 여러번 갔었는데, 고수도 그렇고 그 전체적인 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그렇게 못먹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안산에 가면 진짜 쌀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데 아직 거기까지 갈 시간은 없어서, 원효료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다는 Pho 24에 가봤다. 가게를 찾아가면서, 내가 미국에서 먹었던 것이 물론 베트남 사람이 하는 것이기는 해도 고기가 그렇게 많다는 점에서는 베트남의 진짜 쌀국수와는 좀 달랐을 수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서 맛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쌀국수를 시키면 정말 고기를 너무 많이 줘서 다 못 먹을 정도까지 내온다. 그게 비정상이고 우리나라나 베트남에서 고기를 내 오는 정도가 딱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스를 좀 기다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찾아서, 도가니 쌀국수를 큰 것으로 주문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고기 조합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넣은 쌀국수로, 양지와 ‘eye-round’ 라고 불리는 기름기 별로 없는 부위(얇게 썰어서 날로 내오고, 국물에 의해 반쯤 익는다), 약간 씹는 맛이 있는 힘줄, 우리나라로 치면 불고기거리, 그리고 천엽까지 포함된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고기완자를 따로 시켜서 먹기도 했다. 양파와 숙주, 그리고 고수가 나왔는데, 바질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말린 바질 가루가 있으나, 이건 너무 향이 강했다). 고수만 넣거나 또 바질만 넣었을 때에는 그 향의 느낌이 사실 조금 못미친다. 고수와 바질이 함께 들어갔을때 레몬 또는 라임의 향이 극대화 되는 것이다. 뭐 그건 그래도 괜찮았지만, 국물이 정말 턱없이 싱거웠다. 내가 늘 음식을 먹고 글을 쓸 때 소금 타령을 해서 이번에도 또 그런가… 싶었는데, 나와 거의 같이 들어와 먹던 아저씨가 아예 소금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고 이게 나만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국물도 괜찮았고, 면에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소 힘줄을 넣지 못해서 도가니를 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도가니를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흐물흐물해서 그냥 넘어가는 수준의 도가니는 그 흐물거리는 식감이 국수와 어울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쌀국수가 이 음식에서 가장 무른 식감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쌀국수는 정말 빨리 불어 툭툭 끊어진다. 글루텐이 없어서 그런건가?), 그보다 더 흐물거리는 도가니는 그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7천 5백원을 내고 도가니 쌀국수를 먹었는데, 소금 간이 안 맞는 것이 이때만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격과 거리를 생각해 보면 명동칼국수나 잘 하는 삼선짬뽕이나 굴짬뽕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 먹으러 가려면 차비가 적어도 2천원 가까이 드는데, 그럼 기회비용이 만원이라는 것을 놓고 볼때 그 비용만큼의 음식은 아니었다. 물론 가까이 있으면 종종 가고 싶어질 정도는 됐다. 마포역에서 버스가 있지만, 용산 전자상가에서 오는 버스가 조금 더 자주 있는 것 같았다.
# by bluexmas | 2009/11/18 10:11 | Taste | 트랙백 | 덧글(12)
안산의 쌀국수집 [고향식당]은 가봤는데, 고기 건더기는 별로없이 ‘라이트’했습니다. 그런게 베트남 본토식일 순 있겠는데, 특별히 메리트있단 생각은 들지않더라구요. 그 가게는 글너 쌀국수보단 짜조(튀김만두)가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본토식이라는 쭈비론(오리알 부화하기 직전 삭힌 것)은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부화하기 전에 삭힌 오리알이라니, 그거 좀 무섭습니다;;; 곤계란과 같은 것이겠죠?
다 비슷하지만 국물의 맛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거든요
쌀국수 말고 ‘바미’라는 국수도 맛있는데
한국사람들이 엄청 좋아해서 한글메뉴도 생길정도로 인기가 많죠
우리나라 쌀로도 베트남 쌀면의 느낌을 낼 수 있다면 쌀 소비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우리나라 쌀로는 그런 면을 만들기 힘들다니 아쉬운 부분..
맛에 실망하셨다고 해도 배가 고프니 호로록한 쌀면의 질감..시원담백한 국물..맛의 상상력을 자극하네요ㅜㅜ
막상 제가 여기서 먹을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제가 싱거운걸 잘먹는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