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T]청담동 Grill H-좋은 기회, 부족한 음식
지난 주에 있었던 ‘Week&T’ 행사에 당첨되어 청담동 Grill H에서 공짜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 행사는 지난 봄 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음식점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게 또 양날의 칼인 것은, 그 가격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면 만족한 손님들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는 행사이기 때문에 성의없는 음식을 내놓았다는 나쁜 인상을 주게 되어, 손님을 안 불러들이는 것만도 못한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은 솔직히 말하자면, 후자였다.
음식이 맛이 없는 경우는 여러가지가 있다. 간이 맞지 않거나, 재료가 신선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또한 조리기술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거나 어떤 음식을 내놓겠다는 뚜렷한 개념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음식 자체가 뛰어나다고 해도 서비스를 잘 해야 하는 이런 종류의 식당과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분이 미흡해서 손님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서비스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Grill H의 음식은 행사이기 때문에, 아니면 그냥 얻어 먹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예약을 했다고 하자 식당 공간의 가운데 자리로 안내 받았는데, 예약을 이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왜 가운데 자리를 주었는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통 자리라는 것을 예약하는 순서대로 준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자리를 얻는게 당연하고, 그렇게 높은 건물의 윗층에 있는, 전망이라는 것이 나름 있는 식당이라면 당연히 창가쪽 자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밥을 먹는 한 시간 동안, 창가자리를 채우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행사를 위한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의 자리를 갈라놓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곧 직접 굽는다는 빵이 나왔는데, 굳이 지방을 넣어서 구울 필요가 없는 종류의 빵에서 버터 아닌 다른 지방의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몇 번 사다 먹은 롯데호텔 지하 델리카한스의 흑미식빵을 지배하던 진한 단내였는데, 분명히 버터라고는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전채는 안내를 따르자면 ‘허브향의 신선한 문어 카르파치오’ 였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문어는 한쪽이었고, 굴에 토마토 살사를 얹은 것과 오징어 먹물을 버무린 초밥만한 밥 한 덩어리가 함께 나왔다. 굴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싱싱하지 않으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물어보아서야 토마토 살사라는 것을 알게된 토마토 살사는 신맛을 너무 강조시켰던데, 고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넣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바질 정도라도 넣었으면 신선한 느낌이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쪽 나온 문어는 예상처럼 질긴 편이었는데, 문어다리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때, 내놓은 것을 적어도 두 조각 정도로 얇게 나눴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카르파치오는 얇아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세쪽까지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이름과는 달리 허브향은 느끼지 못했고, 같이 먹으라는 듯, 옆에 발사믹 식초를 졸여 만든듯한 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오징어 먹물을 버무린 밥 덩어리는, 리조토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뭉쳐지는 밥 알갱이를 리조토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징어 먹물의 비린내가 살짝 풍기는 것 말고는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맛만 보고 남겼다. 굴이 더 비싼지, 아니면 문어다리가 더 비싼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히 굴을 내놓는 것보다는 그 토마토 살사와 같이 신맛이 있는 소스에 얇게 썰은 문어다리 몇 쪽 정도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각각의 맛도 맛이지만, 이 세 가지를 먹었을 때에 한 데 뭉쳐 어떤 맛을 줄 수 있는지 생각을 하지 않고 각각의 요소를 늘어놓는 수준에 음식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온 양송이 수프. 우리나라는 크림이 비싸니까, 크림을 넉넉하게 넣어서 보다 부드러운 느낌의 수프를 바랬다면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이었을까? 수프는 묽고, 그것보다 간이 안 되어 있었다. 양송이의 향은 그럭저럭 느낄 수 있었다.
파마잔 치즈와 파르마햄 샐러드. 햄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파르마햄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어보았더니 ‘돼지요’ 라는 답을 들었다-_-;;;;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이탈리아에서 가져왔다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햄을 돼지고기로 만드는 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꼼꼼하게 대답하셨던 듯?)샐러드 드레싱의 맛은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린이가 아니다. 그리고 눈에 보일 정도로 넓게 썰어서 얹는 것이 눈에는 보기 좋겠지만, 그 정도의 양이라면 그냥 채쳐서 넣는 편이 샐러드를 먹기에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주요리인 스테이크. 두 사람이 미디엄 레어와 미디엄을 시켰는데, 평소에 미디엄 웰로 시키는 버릇이 있어서 그대로 시키려다가 말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 미디엄 레어가 미디엄이고, 미디엄은 미디엄 웰 정도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라는 것이 센 불에 짧게 조리해서 겉에는 바삭바삭하다고 말하면 좀 과장이기는 해도, 적당히 씹는 맛이 있는 크러스트가 생기고, 속은 즙이 풍부하게 만들어 식감의 대조를 돋보이게 하는 음식이라면 이 스테이크는 겉과 속 모두가 어떤 대조적인 느낌을 줄만큼 조리되었다는 느낌이 없었다. 미디엄 레어는 좀 덜했지만, 미디엄에서는 겉이 탄 냄새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것이, 카라멜화 되는 상태를 지나 태웠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곁들이 야채를 스테이트 밑에 쌓아서 내왔는데, 양파는 그렇다 치더라도, 토마토는 샐러드처럼 차게 식어 있었기 때문에, 스테이크의 온도를 내리는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었다. 차림새를 생각한다면 그런 식으로 쌓아서 내오는 것도 말이 되겠지만, 식은 야채라면 굳이 스테이크를 받쳐서 따뜻한 스테이크를 식힐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게다가 양파나 토마토나… 별 맛은 없었다. 거기에 통조림 양송이가 몇 조각 같이 나왔는데, 통조림으로 굳이 써야할 만큼 양송이가 비싼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스테이크를 받아보고 느낀 점은 무슨 재료를 써서 어떤 맛의 음식을 만들겠다는 정확한 개념이 없이, 고기를 굽고 야채를 적당히 곁들이면 스테이크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었다. 소금간에 대한 얘기는 굳이 더 할 필요가 없고. 피클?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사실 피클이라기 보다는 백김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배추는 아삭아삭하니 괜찮았다.
그리고 디저트, 초콜렛 케이크냐고 물어보았더니, ‘브라우니 케이크’ 라는 대답을 들었다. 브라우니 케이크라… 굳이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크기에 대한 불평은 전혀 없는 가운데, 브라우니는 차고 딱딱했다. 슬슬 찬바람이 부는 계절인데, 따뜻한 브라우니가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밑에는 수박과 초콜렛 소스 같은 것을 살짝 입힌 과일이 깔렸는데, 그것들도 당연히 차서 디저트의 느낌은 꽤나 썰렁했다. 그리고 거품을 내 얹은 크림은, 사진에서도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거품을 내서 굳었다-curdle-고 해야 되나… 하여간 표현하기가 좀 어려운데, 뭐 그랬다. 굳이 ‘생’크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그 열린 주방에서 조리사 한 사람이 크림 한 팩을 뜯어서 거품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내가 알기로 100% 우유크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휘핑크림’ 이라는 이름이 붙은 크림은 거의 대부분 거품이 잘 나도록 하기 위해서 첨가물을 넣는다). 크림을 많이 올려 케이크에 바른다면 모를까, 디저트에 한 숟가락씩도 채 안 나오는 크림을 굳이 이런 음식점에서 이런 것으로 쓸 필요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디저트 역시, 상상력 부족이라고나 할까… 스테이크처럼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맛을 내겠다는 고민이 없이 재료를 합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철이 아니니 수박도 싸지는 않았을텐데, 차라리 작은 브라우니를 따뜻하게 데워서 초콜렛 소스와 내고, 그 옆이나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작게 한 숟갈 얹었다면 어땠을까? 접시는 보다 작은 것으로 바꾸면 양이 적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브라우니와 과일의 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커피는… 분명히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예 원두커피와 같은 맛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글은 쓰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공짜로 먹었으니 불평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짜 음식을 먹었어도 배는 마찬가지로 부르기 때문에, 배를 부르게 한 음식에 대해서는 느낀대로 정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역시도 행사고, 또 공짜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청담동의 잘 알려진 음식점이 이 정도의 음식밖에 내놓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음식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간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조리가 조금 덜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재료도 다른 날보다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언급했다시피 이 음식점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떤 개념-그래, ‘컨셉트’-으로 어떤 음식을 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당에 가기 전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한식당과 같은 사업체던데, 만약 우리나라 음식의 요소를 곁들이고 싶었다면 스테이크에도 불고기 소스를 얹어 낸다던지, 하는 무궁무진한 대안들이 있을 것이다. 청담동의 식당이라면 막말로 우리나라의 고급외식문화를 이끌어나가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나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리고 공짜였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가진 기회로는 이 식당의 색깔을 정확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쉬움이 아예 가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하루 세 끼만 밥을 먹기 때문이다.
# by bluexmas | 2009/11/10 17:17 | Taste | 트랙백 | 덧글(22)
행사고 공짜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서 가는건데 너무하네요 ㅠㅠ
보기 좋게 음식을 내어 놓 위해 알록달록하게, 또 한편으로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해서 음식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듯 하는 듯 하네요. 한번에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올 때 중요한 것은 각 음식의 밸런스라고 생각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점원은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네요. 요리셔틀도 아니고. 🙁
사실 점원은 파르마햄이 어디에서 온 줄은 아닌데, 그냥 제가 아예 모를까봐 너무 친절했던 것이더라구요^^;;; 오해가 없을까봐 그 부분의 설명은 다시 곁들였습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뭐랄까; 이벤트까지 할 사람들은 돈 내고는 안올거란 생각을 한건가;;
테이블을 나눈거 보니까 음식도 대충한건 아닐까 그런생각도 드네요
가격은… 청담동에 있으니 당연히 비싸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