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앞 나무 위의 빵, 집- 이념으로 포장된 맛있는 빵
지난 주에 떡볶이를 먹으려고 이대 앞에 오랜만에 갔다가 그 전부터 얘기를 들어왔던 나무위의 빵,집에 가보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대부분의 빵은 주문제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 주문까지 해서 빵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쓰레빠 끌고 갈 수 있는 동네 빵집도 아니고-그런 빵집으로 집 앞에 파리 바#트와 올리고당을 이용한 건강한 빵을 굽는다는 뚜레 #르가 있기는 하다…) 무턱대로 찾아가 보았다. 살만한 빵이 없다면 뭐, 안 먹고 마는거지.
어딘가의 골목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정말 골목에 있어서 의외로 찾는데 시간을 좀 보냈는데 찾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게가 작아서 사실 깜짝 놀랐다. 그냥 음식을 만드는 데에도 공간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빵을 만드는데는 생산 공간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오븐도 크고, 빵을 반죽하거나 모양을 빚는 공간도 충분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좁은 공간의 반 이상을 오븐이 차지해서 가게 주인인듯한 사람들 둘 말고 다른 사람은 서 있기도 좀 버거운 상황에서, 반으로 잘려 포장되어 있는 덩어리빵을 그 반만 잘라서 사 천원에 사왔다. 다른 빵이며 과자도 있기는 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가게 주인인 여자분들의 얘기-무엇인지는 내 글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굳이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가 어딘가 책에도 실렸다고 하고, 또 큰 회사에 조리법을 빼앗길까봐 걱정한다는 내용의 글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처럼 이런 빵집들에 들렀을때에 의례적으로 건네는 몇 가지 질문들(이를테면 밀가루나 효모의 종류나, 자연 발효빵에 등등에 관한 것들)을 건네보았는데 살짝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정말 어딘가에서 조리법을 빼앗을까봐 걱정한다는 낌새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남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쓴다면 지나친 과민 반응인걸까?
개인의 취향이며 생각 등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므로, 나도 그렇게 존중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말하자면, 다른 것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음식에 어떤 이념이나 종교적인 가르침 같은 것들이 바탕으로 깔려 있는 상황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런 이념이며 종교적인 가르침 등등을 존중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내가 음식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내가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 단순히 더 나은 음식을 위해서만 쓰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쓸데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빵이 좋아서 먹으려는 사람이지, 그 빵을 있게 만든 어떤 이념을 지지하기 때문에 빵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음식이 도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내가 지나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건 비단 내가 남자고, 누군가가 여자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그런 상황이나 이념 따위만을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단지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경계의 눈초리를 벌어들인다고 하면 마음이 편할리는 없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빵을 사는 그 짧은 기간에 아예 들지 않았다면 여기에 이런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빵은 그냥 빵일 뿐이니까;;;) 어쨌거나, 조금 과장을 보태서 빵 한 덩어리를 사면서 남자와 여자의 대립관계랄지, 그 쓸데없이 좁고 깊은, 남자와 여자를 놓고 벌어지는 그 많고많은 논쟁의 흔적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고민은 집에서 혼자 해도 실컷 하니까.
(빵을 구워, 절대 녹지 않은 브리치즈와 무화과 잼을 얹고 또 발라 먹었다. 브리치즈는 정말…-_-;;;)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고, 빵은 빵인데, 그 빵은 맛이 있었다. 똑같이 생긴 뺑 드 빱빠의 빵을 먹어본 기억이 나는데, 아직도 그쪽의 빵이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빵 가운데에는 가장 깊은 맛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의견을 바꿀 생각까지 들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간도 잘 맞고, 굉장히 담백한 느낌의, 분명 흰밀가루가 전부가 아닌, 다른 곡식이나 적어도 통밀은 들어간 빵이었는데(뭐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먹기만 해서 다 알아차리기는 좀 어렵지 않나;;;), 전부 다섯 시간에 걸쳐서 만든다니 그래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깊이가 있는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이 빵의 흠집을 잡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사실 뺑드빱빠의 빵은 발효의 한쪽 끝으로 거의 다다르는 느낌이어서. 그런 정도까지 발효된 빵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집의 빵을 더 맛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저 나는 왠지 모를 아마추어의 분위기를 빵의 맛에서 느꼈다는, 누군가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그런 왠지 모를 아마추어의 느낌은 다른 부분에서도 꽤 만만치 않게 느꼈다. 솔직히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까지 내가 신경써야 될 부분은 아니지만, 주문을 위해 나눠주는 듯한 빵의 목록을 보고 나니, 과연 이렇게 많은 종류의 빵을 만들면 그 하나하나의 질을 정말 다 신경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냉면을 파는 음식점도, 냉면 외에 열 다섯 가지를 더 하면 사람들이 덜 믿는다. 온갖 종류의 빵을 다 만든다면, 정말 빵집의 색깔은 무엇으로 내는지 알 수 없어지고, 그러면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로 꼭 집어서 뭘 하는 집이라고 말 할수 없어진다. ‘첨가물이 안 들어간, 유기농 밀가루 빵’ 이라고 얘기는 할 수 있지만, 그건 솔직히 재료에 쏠린 얘기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아마추어의 느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빵의 포장재나 비닐 봉투, 심지어는 명함에까지 이어진다. 포장재나 비닐 봉투에는 가게의 이름이 찍혀있지 않았고, 명함은 스티커가 대신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가게는 주로 인터넷 카페나 개별 주문을 받아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름을 알려서 손해를 볼 상황은 아닐텐데(이를테면 이제 주문이 밀려서 감당할 수 없어진다거나 한다면 더 이상 알릴 필요가 없겠지만…) 사업체가 왜 이런 것들에 소홀하다는 느낌을 풍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홍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걸까?
뭐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빵은 맛이 있었으니, 이 모든 쓸데없이 긴 얘기는 그래서 다시 빵을 사러 갈 것이냐는 그 한마디로 압축될 것이다. 글쎄…
# by bluexmas | 2009/11/04 09:55 | Taste | 트랙백 | 덧글(22)
저 브리치즈는 녹지도 않는 불멸의 치즈인가요? ㅋㅋ
글을 읽으니 갑자기 홍대에 폴앤폴리나가 생각나네요. ‘아마추어의 느낌’이라는 기준이 글에서 말씀해 주신 그런 것들이라면.. 거기는 프로에 가까웠거든요.
정말 폴 앤 폴리나는 프로같이 가게를 꾸려나가는 것 같아요. 좀 나쁘게 말해서 정말 정 반대의 느낌이좀 나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한 번 주문을 해서 먹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본문 중에 말씀하신 부분에 많은 공감이 갑니다.
아직까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느낀 것이어서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정말 ‘선택과 집중’을 해서 몇 가지 메뉴만 특화한 곳들이 음식의 맛도 일정 수준 이상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
익숙한 질감이예요. 크러스트나 안감이나.
왠지 저는 한번쯤 찾아가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