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지린내
무슨 일이었는지 내 입으로 여기에 담고 싶지는 않은, 나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일-없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어,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이 어디에선가 벌어졌다. 나의 눈으로 보기에 그 일은 일종의 감정적인 덩어리 같은 것이고 또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 그러니까 나 따위의 사람이 아는 일 없이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처리해야만 되는 일 같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문제가 커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일단 그런 식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보기 딱한 문제는 그 문제를 둘러싸고 곰팡이가 피어나듯 더 많은 문제들이 퍼져나갔고, 그 가운데에는 이 지극히 감정적인 덩어리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지극히 이성적인 잣대인 철학을 빌어 해석하시려는 분들이 계셨다.
솔직히 나의 철학 수준은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와 그 뒤를 이은 1994년인가 5년의 ‘소피의 세계(무슨 작중 화자를 디밀어 철학사와 철학자를 읊기만 하면 되는거냐 #발! 이라고 스무살 먹은 비만 대학생이었던 뒤틀린 나는 책을 던져버리고 다시 읽지 않았다. 그렇게 안 읽고 버린 책은 그 책이 거의 처음이었다. 나는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 비만아동이었으니까)’ 1권 50쪽까지인가 밖에 되지 않아서, 대체 그 많고 또 긴 철학자들과 그들의 말씀을 빌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것인지 거의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 그래, 그게 무슨 사회현상이라는 식으로 보다 더 거창한 딱지를 붙여 나가려는 듯한 시도는 이 무식한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인 나의 감각으로도 두리뭉실하게 느낄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시도는 나에게 참 피곤해보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잣대나 도구 따위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해석해서 이해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것 같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유나 은유가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삶이나 그에 따르는 각종 현상이며 사건사고들을 무엇인가 그보다 작은 것에 빗대어 설명하려는 도구 따위로 쓰여왔다. 심지어 스핑크스 따위도 수수께기를 내서는 사람의 삶을 다리 갯수가 다른 동물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웃기는 게, 그렇게 삶을 어쩌면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잣대며 도구 따위가 무수히 많으니 어쩔 수 없이 그 말되는 또는 있어 보이는 정도로 사람들은 또 순위를 매기게 되는데, 블루칼라에서 시작해서 오르고 올라 맨 끝에 오르면 화이트 칼라 들이 나눠가지는 지적 유희의 도구 가운데에 철학이라는 것이 마치 그러한 잣대와 도구들 가운데에서 단연 가장 숭고하고 고매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 옮겼는지도 알 수 없는 온갖 ‘텍스트’ 들을 읽으시고 무슨 말이나 글을 하던지 간에 그걸 어떻게 단 한 줄이라도 더 못 우겨 넣어서 안달인 것일까? 뭐 솔직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런 시도를 얼마나 많이 하시든지 간에 나는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은데,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 자신의 지적 능력 성취도랄지 그 철학에 대한 남들보다 월등한 이해의 정도를 어떻게든 알리고 싶다는 안달이 나서 그런건지, 이 철학을 우겨넣은 말이나 글에서 심각하게 지린내가 풍긴다는 느낌을 정말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그게 어느 정도로 심각해지냐면, 지나치다가 그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보게 되면 보고 짜증내고 싶지 않아서 피해가는데, 그 판단의 기준이 개인의 아이디나 글의 제목 따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 지린내로 바뀐다는 것이다. 아직 냄새를 옮겨주는 매체는 개발이 안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마치 모니터에서 심하게 썩은 화장실 냄새가 나는 기분이랄까? 그런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시작하면 나는 얼른 웹 브라우저를 종료시켜버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 일단 환기부터 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창문을 열어둔채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복도에서 심호흡을 한 3분간 하고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다. 뭐든지 지나치게 쌓이면 썩나? 그렇다면 철학도 지적배설물이니 예외가 아닌가? 아니 뭐 그렇다고 철학 80년 공부한 백살짜리 석학 본 적도 없는데, 그정도도 아닌데 또 썩을 건덕지는 뭐가 있다고… 어쨌거나 그걸 알려면 나도 철학 공부좀 해봐야될 것 같은데, 뭘로 배울 수 있나? 그렇게 가르치려는 글 말고 다른 것도 있나? 알고 지린내 풍길거면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아, 그냥 이렇게 우매하게 살래. 상식이나 믿고 말지 뭐. 이제 가르침은 좀 그만 얻고 싶다. 지금까지 얻은 가르침만 애지중지 지키고 살아도 지금 산만큼은 사람은 못되어도 짐승아닌 걸로는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사람은 못 되어도 짐승 아닌 건 뭐가 있지? 중간계를 들먹이면 반지의 제왕 팬들이 싫어하니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음…
아니 뭐, 굳이 철학이 싫다는 얘기가 아니고, 왜 꼭 철학이어야 하냐는 것도 아닌데, 굳이 철학 말고 다른 건 없으냐는 거지, 거기 허리에 차고 다니는 칼집 속에는. 우리는 학교 다닐때 국영수과를 주입식 교육으로 배웠고, 대학에 가서는 공대생은 공업수학과 각종 역학을 주입식 교육으로 배우는데, 철학도 주입식 교육으로 가르치나? 공업 수학을 배워서 이런 공정을 통제할때 이런 방정식과 저런 함수를 쓰는 것처럼,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플라톤을, 저런 논쟁이 벌어지면 칸트를, 또 여기에서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발터 벤야민(정말 만인에게 사랑받나? 잘 모르는데 하도 이런저런 데에서 들먹이는 걸 많이 봐서… 사실 나는 월터 벤자민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독일 사람인가 뭐 그래서 발테 벤야민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안지 얼마 안 됐어-_-;;; 이렇게 말하면 지적으로 쪽팔리는건가)을… 뭐 이런 거 정말 있나? 난 맨날 가족 관계랄지, 관광학 개론 따위만 교양으로 들어서 그 동네 분위기는 전혀 모르거든. 아, 잘 알지도 못하는, 그저 주워들은 철학자 이름 들먹이려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그래도 그런거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알아. 그러면 철학적으로 다행인건가?
요즘 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있는데, 내가 뭐에든 좀 빈정거리는 글이라도 써 놓으면 그 다음 날 아침에 링크가 한 둘씩 끊겨 있던데, 이 글은 그것들보다 제대로 빈정거리는 거니까, 오늘 자고 일어나면 링크도 좀 제대로 끊겨 있을 듯? 🙂
# by bluexmas | 2009/10/30 01:08 | — | 덧글(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