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거대한 족발-대한각
며칠 전, 족발을 통으로 동파육처럼 조리한다는 이태원의 대한각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음식점의 내력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블로그가 잘 얘기해주고 있으니 나는 거듭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유기농 재료,특히 토마토로 음식을 만든다는 데에는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새로 꾸민 공간은 넓은 편이었고, 깔끔하며 쾌적했다. 화장실 역시 깨끗했다.
그다지 생각할 필요 없이, 통으로 조리한 족발인 원족(35,000)을 바로 주문했다. 사실은 하루 전 쯤에 미리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좀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설사 압력솥을 쓴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오랜 시간 조리해야만 먹을 수 있는 부위의 준비를 어떻게 미리 준비할 수 있는지 바로 머리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어보니, 소스와 고기를 따로 준비했다가 주문을 받으면 합친다는 식의, 간략한 설명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족발을 어느 정도 무를 때까지 삶아서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계속해서 끓여 따로 준비하고 있다는 소스와 합쳐 끓여서 내는 것인가? 하는 지레짐작을 했다.
그렇게 지레짐작을 오래 하지도 않았는데, 곧 거대한 족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앞다리인지 뒷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보통 족발집에서 먹을 수 있는 그 족발을 더 푹 무르게 조린 것이었다. 그 족발이 통으로 나온다는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맛이 있는데다가, 어떻게든지 오래 조려 가위를 대자마자 흩어지는 광경을 보는 것도 삼만 오천원짜리 구경거리치고는 훌륭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족은 재료가 족발일뿐, 그 느낌이 동파육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족발을 삼겹살처럼 통으로 튀겼는지, 아니면 튀길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기름기가 그렇게 많은 삼겹살을 굳이 튀긴다는 건, 사실 재료를 익히기 이해서라기 보다 겉면의 식감을 바삭바삭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스는 내가 아는 동파육의 그것에서 전분을 뺐는지 걸쭉하기 않은 국물의 느낌이었다. 거기에 기본으로 청경채가 둘러 나오고,추가로 배추가 들어있으며, 마른 고추로 매운맛을 살짝 보탰다.
맛을 보았는데, 가장 지배적인 느낌은, 너무 느끼하다는 것이었다. 족의 맨 바깥쪽 껍질과 그 안쪽의 비계에는 콜라겐이 많은데, 이 콜라겐에 열을 가해 조리를 하면 어느 시점에서 콜라겐이 녹았다가, 식히면 젤라틴으로 변하게 된다(이건 정말 너무나 많이 얘기해서 더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돼지 껍질을 조리고 난 국물을 식히면 굳어 짠슬이 된다거나, 적당히 삶은 족발을 식혀 썰면 쫄깃쫄깃함이 두드러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방의 느끼함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인데, 그 전 조리단계의 강도를 극대화한 상태에서 고기를 먹게 되면 지방이 거의 액체처럼 걸쭉하게 되어 느끼함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느끼함이 절정에 이르는 고기의 그 느끼함을 잡아주려면 딸려 나오는 야채며 소스가 제구실을 해줘야만 하는데, 이 원족에딸려 나온 것들은 집합적으로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단, 이런 종류의 요리에 늘 딸려 나오는 청경채는, 가지고 있는 쌉쌀한 맛과 아삭거리는 식감이 중요한데, 소금 간이 전혀 되지 않은 느낌으로 쌉쌀한 맛은 물론 청경채 자체의 맛 역시 살아나있지 못한 인상이었고, 아삭거리지 않고 질겨서 흐물거리는 껍데기와 비계, 그리고 그나마 조금 있던 지방이 다 녹아 빠진 그 안쪽의 푸석거리는 살 사이에서 겉돌았다. 그래서 차라리아삭거림이 잘 살아있는 배추가 더 좋은 짝이었으나, 청경채만큼 양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깔려있는 소스는, 전체적으로 맛의 윤곽이 희미했고 소금 간이 부족했으며, 들어간 굴소스의 역량 부족으로 그 맛이 한데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이어서, 푸석거리는 고기를 도와주는 국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어떤 굴소스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수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대부분의 중국산 굴소스가 국내산 굴을 썼다는 딱지를 달고 나오는 굴소스보다 그 맛의 느낌이 훨씬 밋밋하고 약하며 들척지근함이 강하기 때문에, 집에서 만들었던 음식에 썼던 결과는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한각은 메뉴에도 msg를 쓰지 않는다고 표기하고 있는, 깨끗하고 담백한 맛을 추구하는 음식점일텐데 굴소스에 들어있는 것이 분명한 화학조미료의 느낌은 음식의 맛을 반감시켰다.
그 모든 음식에 대한 느낌 가장 위에 올라서는 것은, 어떤 음식을 먹어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금간이었다. 이 요리는 하나로 뭉뚱그려 싱거운 느낌이었는데, 소스와 족을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둘 다 어느 정도 이하로 싱거워서 그 전체도 그만큼 싱거웠다(어느 한 요소가 싱겁고 다른 요소가 짜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고). 사실, 족발 같이 뼈도 있는 고깃덩어리의 간을 소금만으로 한다거나, 아니면 같이 조리는 것도 아닌 미리 준비하기 위해 따로 조리는 방식으로 준비한다면, 간이 완전히 배기를 기대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식으로 준비한, 통째로 처음부터 간이 된 국물에 넣어 삶는 족도 먹어보면 껍질과 그 안쪽 비계는 짜고 맨 안쪽의 고기는 싱거우니만큼, 어떻게 조리했든 접시 바닥에 깔려 나오는 소스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조리하지 않았음에 분명한 이 요리의 간이 적당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는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덩어리진 고기를 소금물에 일정시간 담궈두는 brine(우리나라에서는 ‘염지’ 라고 한다고 알고 있다)이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서양식의 조리법이다 보니 우리나라 족발집이나 이런 식의 중국조리법에서 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밋밋함과 느끼함을 가슴, 아니 뱃속 싶이 남긴채 족은 사라지고, 가볍게 마무리 하려고 시킨 토마토 쇠고기 탕면이 그 뒤를 이었다. 사실은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으나, 족의 흐물거리는 껍질과 비계를 후루룩 마시고 나니 도저히 짜장면을 먹을 수가 없어져서 이 집의 대표메뉴라는 탕면을 먹게 된 것이다. 일단 직접 가꿔서 쓴다는 유기농 토마토의 단맛이 훌륭해서, 느끼함의 한계와 이길 수 없는 씨름을 하고 있던 속에 해장과 비슷한 느낌의 단비를 내려주었다. 좋은 토마토는 절대 시지 않고 달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기는 하지만, 이 익힌 토마토의 흐물흐물한 질감이라는 게 또 익숙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면 그다지 매력이 없는 것이라서 한 그릇 쭉 들이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국물이 훌륭했던 가운데, 막 나왔을때에는 너무 딱딱해서 국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했던 면은 좀 아쉬웠다. 반 정도 먹고 나니까 딱 맞게 익힌 정도로 풀어지고 국물의 맛도 배어서 먹기 괜찮았지만, 그때는 벌써 해일처럼 밀려오는 포만감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는 훌륭했지만 정작 맛은 약간 기대이하였던 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깨끗한데다가 재료며 조리한 상태는 정갈해서,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들러 보통의 요리나 식사도 한 번 시도해볼 계획이다.
# by bluexmas | 2009/10/20 10:50 | Taste | 트랙백 | 덧글(16)
독일에선 족발을 튀긴 슈바이네 학세가 있는데, 잘 조리한다는 가정 하에선 그런 것도 먹을 만하죠. 사실 학세도 삶은 아이스바인도 엄청 느끼합니다^^;
먹고싶단 생각보단.. 어떻게 저렇게 설명을 세세히 잘해주실까에 놀랐습니다. ^^;
멋지십니다.ㅋㅋ
사진으로 보기엔 족이 훌륭해보이네요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데 그 비계의 설명이 자세해서 갑자기 어지러워지는 느낌입니다
가끔 비계 많이먹으면 느끼하면서 어지럽더라구요
마지막의 토마토탕면은 과연 어떠한 맛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토마토탕면은 적당히 단 맛도 있고 시원하더라구요.
해일처럼 밀려오는 포만감이 ㅋㅋㅋ 너무 와닿아요 ㅋㅋㅋㅋㅋ
고기는 아무래도 씹는 맛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 맛의 즐거움을 더해주지 않나 싶어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화룡점정이죠^//^
전 소금없인 못 살아요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