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의 피색깔이 나는 내 좌절
누군가와 만나서 그야말로 환담을 나누다가, 아주 뜬금없이 지난 여름에 낳아 내보낸 두 번째 새끼 생각이 났다. 아무에게도 거둬지지 못하고 버려져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버려지는 과정이 갑자기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강남 교보에 들러서 잠시 확인사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냥 확인사살하는 순간에는 똑같은 생각을 한다. 나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세상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어떤 공통분모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인정하자니 스스로 다른 누구와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격이 되고, 그건 결국 세상에서 자신을 자발적으로 격리시키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공통분모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물론 내 문제다. 세상을 아주 탓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그 너무나도 겹치지 않는 것에 대한 지극히 원초적인 호기심이 넘쳐난다.
밑창이 물렁물렁한 신발을 신었던 탓에, 강남대로의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걷기가 조금 버거웠다. 집으로 오는 버스는 만원이었고 가장 오래되고 좁은, 닭장 느낌의 버스여서 오랫동안 옷장속에 쳐박아 두었던 내 미약한 폐소공포증이 스멀스멀 육신을 뒤집어 쓰고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된 버스여서 다행스럽게도 내가 앉았던 맨 뒤 바로 앞의 자리에서는 창문을 열고 있었다. 뱃속에서 무엇인가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다가, 창문을 여니 다행스럽게도 사그라들었다. 창문을 열 수 없었다면 나는 서울인터체인지를 벗어나는 순간쯤에 알을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얀 껍데기에 피칠갑이 된 알을. 물론 깨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무정란이다. 나는 언제나 내 알이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떼곤 한다.
양재역에서 타서 내 옆에 앉은 남자는 무려 세 종류의 다른 패턴을 가진 옷을 껴입어서 불을 다 끈 버스 안에서도 얼굴은 못 볼지언정 패턴은 느낄 수 있어서 어지러웠는데, 곧 잠에 빠져서는 내 자리로 슬금슬금 넘어와, 어느 순간 나의 왼쪽 어깨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올라앉아 있었다. 문득 토하고 싶어졌는데, 그랬다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얼굴에 토했을 것이다. 한때 시뻘건 핏빛이었던 내 좌절은 이제 색깔도 남아있지 않아 조개의 피처럼 그 존재를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액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출혈은 계속된다. 아주 가끔은 현기증도 느낀다.
# by bluexmas | 2009/10/18 22:52 | —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