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덮밥-가로수길 노다보울

여태껏 가로수길을 지나다니기만 했지, 뭘 먹거나 마셔본 적은 없었는데 대학후배를 만나기로 해서 일부러 그쪽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뭘 하게 되더라도 큰 기대는 안 하는게 낫지 않을까, 지레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가 세 군데의 음식점을 얘기해주었는데, 찾아보니 ‘노다 보울’ 이라는 곳이 언젠가 미국에 있을때 학교 체육관 트레드 밀에서 보았던 아리랑 텔레비젼의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김노다라는 사람의 음식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이지만 그 다큐멘타리를 재미있게 보았던 생각이 나서, 여기에서 밥을 한 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세 군데 가운데 어디를 가도 괜찮거나 혹은 별 기대를 하지 않던 상황이었지만,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 결국 노다보울을 가게 되었다.

뭐 특별한 느낌은 없는, 천장을 터서 높으나 좁은 공간에 식탁을 양 벽쪽으로 걸쳐 두 줄로 놓은 가운데, 메뉴는 나는 잘 모르고 관심도 그다지 없는 일본풍을 응용한 느낌이었다. 덮밥이 몇 종류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해물덮밥을 시켰다. 워낙 메뉴를 대강 보았던 터라 음식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덮밥이 낙지집 같은 데에서 파는 낙지 볶음 수준으로 맵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조금 당황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먹는 즐거움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운 맛이 유행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입맛에 따라 집에서 이 정도로 음식을 맵게 먹을 수도 있지만, 나는 너무 짜거나 달거나 신 음식이 싫은 것처럼, 아니 그것 보다 조금 더 너무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 매운 맛과 균형을 맞추려고 했는지 설탕도 지나치게 많이 넣어 음식의 맛은 기본적으로 분식집 떡볶이의 느낌이었다. 이렇게 맵게 되면 소금간은 늘 얘기하는 것처럼 안 맞을거라고 보는 것이 맞고, 그 예상은 거의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보통 정도로 물기가 있게 지은 밥은 덮밥의 바탕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걸쭉한 국물이 있도록 볶은 재료를 얹으려면, 그 밥은 평상시에 먹는 밥보다는 물기가 조금 적은, 된밥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너무 질척거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그냥 내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운 덮밥이 질척거리면 상대적으로 더 식감이 좋지 않게 느껴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습기 많은 저녁에 너무 맵고 너무 달며, 질척거리는 데다가 뜨겁기까지 한 덮밥을 먹는 건 사실 고역에 가깝다. 새끼손가락만한 새우가 두 마리 든 된장국이 나왔는데, 새우는 국물 맛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국물은 이런 매운 음식에 먹기에는 조금 짜고 된장맛이 강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덮밥이 매운데 딸려 나오는 무와 양배추 위주의 야채 절임도 고추기름으로 버무려 내놓아서 매운 맛을 가셔낼 무엇인가가 없었다.

이 모든 덮밥의 특징이 나에게 너무 아쉽게 다가왔던 이유는, 해물의 신선함이며 조리 상태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오징어며 새우 등등이 다 모두 딱 적당한 정도로 조리되어 부드럽고도 탱탱했고, 느낌 역시 굉장히 신선했다. 그런 해산물에 고추장이며 설탕을 압도할 정도로 덮어 놓아 그 맛을 가렸다니, 이렇게 저렇게 자기 자신을 상표화 하고 있는 이 김노다라는 사람의 상상력이 그렇게 뛰어난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볶이 맛의 맵고 단 덮밥을 만 원 내고 먹게 되면 역시 이 동네는 음식보다 부동산이구나,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쌀이며 해물이며, 재료의 상태는 다 좋았지만, 이 정도의 맛이라면 분식집에서 제육덮밥 정도를 시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식당을 하는 김노다라는 사람이 이 덮밥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그가 누구라도 그냥 분식집에서 제육덮밥을 만드는 박씨 아줌마는 아니니까.

 by bluexmas | 2009/10/18 12:38 | Taste | 트랙백 | 덧글(20)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0/18 13:38 

음식보단 부동산이란거 적절히 공감합니다

맛도 유행이라 그동네 입맛이 그런것은 아닐까도 싶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8 22:57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밥을 먹을때 저만 남자였는데, 여자들은 이런 입맛일까? 라는 생각도 좀 하기는했어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0/18 16:45 

해물찜이나 볶음우동같은 메뉴인 줄 알았는데 덮밥!

아쉬운 부분을 좀 더 개선하면 멋진 요리로 거듭날 수 있겠군요

전 음식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맛을 느낌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뜨거운 국물이 있을 땐 일부러 찬밥으로 만들어 먹기도 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8 22:57

저도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건 뜨겁고 바삭바삭하게 구운 삼겹살에 찬밥 싸먹는거요… 그 느낌이 좋더라구요.

 Commented at 2009/10/18 17: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8 22:58

거기 보니까 홍대앞에 까페 열었다고 뭔가 붙여놨더라구요. 비공개님하고 저는 뭔가 별로라고 느끼는 데에서는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요즘 홍대앞에 케잌 먹을만한 곳 있으면 좀 알려주시겠어요? snob 같은데는 괜찮을지… 케잌 안 먹어본지가 오래 되어서요.

 Commented by Gony at 2009/10/18 20:41 

요기 썬더버거 옆인가요? 아주 바깥까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더군요. 일본풍 컨셉의 식당이나 주점들이 언제까지 성공할지 궁금하네요. 분명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진부함을 느끼는 시기가 올텐데.. 그때 몇집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8 22:58

네, 썬더버거 옆이에요. 줄서서 먹을 음식은 절대 아니던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Gony at 2009/10/18 23:06

ㅎㅎ 적어도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는 ‘맛’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난 듯 합니다. 이집이야 그래도 신기하니까 가보는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스쿨푸드의 인기는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테니 내 맘에 안들어 보인다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 보다 한번쯤 체험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해요 ^^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스쿨푸드를 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ㅎ

 Commented by 아리난 at 2009/10/19 07:19

스쿨푸드ㅎㅎ 하도 예전에가보고 안가봐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메뉴구성을 아기자기하게 잘 해놨었던것 같고.. 간판 메뉴중에 몇개는 괜찮은게 있어서 인기있을것 같긴해요.

그래도 스쿨푸드의 날치알짱아치 김밥은 되게 좋아했었어요ㅋㅋ 뭔가 그리운맛?ㅎㅎㅎ

김밥이라고 해도 안에 들어있는것도 별거없고 김에 밥에 날치알이랑 무순이랑 무짱아치가 다인데 뭐랄까;; 집에서 엄마가 남은반찬으로 슥슥 만들어주는 자투리 김밥같기도 하고;; 진짜 별거 없고 빈약한데 왠지 자꾸 먹게되는 그런맛있잖아요ㅋㅋ 스쿨푸드 가시게되면 한번 드셔보시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요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9 11:04

아 스쿨푸드… 맨날 지나다니면서 뭐길래 줄까지 서나 궁금하게는 생각하지만 굳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guss at 2009/10/18 23:44 

저건 그냥 해물 찜으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9 11:02

그냥 좀 질척질척하더라구요. 굳이 열심히 먹으려 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Commented at 2009/10/19 00: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9 11:05

아아… 비공개님 정말 많이 다녀보셨나봐요. 참고삼아서 한 번 시도해볼께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10/19 02: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9 11:05

아니에요. 거기도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텔레비젼 봤던 기억이 나서 한 번 시도해보고 싶더라구요. 재료는 정말 좋던데… ^^

 Commented by shortly at 2009/10/19 09:09 

유명한 식당들 중 많은 곳이 시즈닝의 포인트를 단맛에 두고있다는건 참 슬픈일 같아요..(전 단맛이 필요한 음식, 예를들면 케이크 같은 녀석들만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맛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음식들을 가끔 만나면 참 슬퍼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9 11:06

그렇죠? 단맛이라는 게 깊이가 없기가 쉽상이라서, 저런 음식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으면 정말 재료의맛을 느끼기가 힘들더라구요.

 Commented by ra at 2010/02/21 23:49 

아 저 오늘 잡지 보다가 노다보울 사전검색 하려고 (대전에서 무엇을 먹으러 서울에 가는건 보기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이글루스에서 검색했는데 블루마스님 글이 있네요. 오오 이런 적나라한 리뷰라니 감사합니다. 온통 칭찬일색이라 좀 의외였거든요. 인터뷰 된 김노다씨 음식은 모든 사람이 좋아할 음식은 아닌거 같아 보였는데. 어떤 맛인지 대충 알 것 같아졌어요.